논평

▩그들의 미래, 우리의 미래 : 나프타와 한 - 미 FTA

개마두리 2011. 12. 11. 15:51

- 최용혁(전국전력노동조합 대외협력실장)

 

- 미국과의 FTA는 최대한 미루다가 가장 늦게 맺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이 13년간의 나프타 체제 아래에서 캐나다가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22일 한나라당의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를 보면서 2004년부터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 한 - 미 에프티에이가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하는 허탈한 생각과 함께 문득 5년 전의 일들이 머릿속을 관통해 지나갔다.

 

한 - 미 에프티에이의 뜨거운 논쟁이 한창이던 2006년 봄, <한겨레> 기자 몇 명과 함께 미국/캐나다/멕시코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에프티에이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이 발효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이들의 현실을 보면서 한 - 미 에프티에이 체결 후 우리의 미래를 예측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에서 평범한 교사이던 래리 쿤을 만나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캐나다의 주州 - 옮긴이)의 교육 주권은 미국한테 넘어갔다고 했다. 2000년부터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공교육 평가시스템을 토플로 유명한 미국의 이티에스(ETS)가 설계한다고 하면서, 교육에서 핵심은 시험제도인데 그 시험 출제를 미국인들이 하게 되면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교육의 모든 내용은 미국인들의 출제 경향에 맞춰서 짜게 된다며 교육 주권 상실을 한탄했다. 이것이 캐나다인이 미처 몰랐던 나프타의 함정 가운데 하나라면서.

 

토론토로 이동한 뒤 만난 캐나다 변호사협회의 켄 트레이너는 당시 우리에게는 생소했던 미국 택배회사 유피에스(UPS)와 캐나다 연방정부 사이의 소송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피에스가 1990년대 말부터 나프타에 따라 캐나다에서 택배 소매업을 시작했지만 100년 전통을 가진 캐나다 연방 우체국의 자회사이던 택배회사와의 경쟁을 이기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렇게 되자 유피에스는 그 유명한 투자자 - 국가 소송제(ISD)를 들고나와 캐나다 연방정부가 미국 기업의 영업을 방해한다는 명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캐나다 연방정부를 대변하던 변호사 스티븐 슈리브먼과 전화를 연결해 줬다.

 

수화기 너머로 슈리브먼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캐나다가 반드시 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신이 대리하는 의뢰인, 그것도 자기 나라 정부가 반드시 진다는 그의 예상은 명쾌했다. 이 소송의 재판소는 워싱턴에 있고 재판관들 모두가 미국인이며 당시까지 미국, 아니 미국 기업이 이런 법률 분쟁에서 지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결국 유피에스는 그해 9월 캐나다 정부에 승소했고 캐나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한편 캐나다 연방우체국에서 택배사업을 독립시켰다.

 

오타와에서 만난 시민단체 활동가 스티븐 베네딕트는 당시까지 미국과 에프티에이를 맺은 7개 나라들이 주로 미주 대륙에 위치한, 원래부터 미국의 영향권 아래 놓인 식민지 수준의 국가들이라서 에프티에이를 맺으나 맺지 않으나 미국에 대한 종속은 어차피 똑같은 처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서둘러서 미국과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려는 움직임은 자신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마치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줄에서 왜 굳이 새치기를 해서 먼저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미국과의 에프티에이 체결은 최대한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미루다가 전세계 모든 나라가 다 한 뒤에 가장 늦게 하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13년간의 나프타 체제 아래에서 캐나다가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시민단체에서 에프티에이를 오래 연구했던 토드 터커를 만났다. 그는 미국이 한국과의 에프티에이를 원하는 진정한 이유는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을 능가할 중국에 대한 정치적 포위를 위한 포석이지 절대 한국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한 - 미 에프티에이 체결 후 미국은 한국을 완전히 예속시킨 뒤 다시 일본을 에프티에이로 묶음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막는 결정적인 방파제를 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투표권을 가진 한국 국민들이 미국의 식민지화를 통한 중국과의 대결구도에서 희생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이득을 챙길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미국노총(AFL - CIO)의 국제국장 시아 리는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한 - 미 에프티에이를 왜 반대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단호한 목소리로 미국노총은 모든 에프티에이를 반대한다고 했다. 즉 모든 에프티에이는 극소수의 지배층에게만 이익이 될 뿐 민중들의 생활은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노동조합이라도 모든 에프티에이는 반대하는 것이 노조 본연의 입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 전을 되돌아보다 1993년 나프타가 체결될 당시, 미국의 어느 강의실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사람 좋기로 유명했던 그 거시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역설했다. “세상 모든 나라가 불공정한 과세의 벽을 쌓고 있다. 나프타는 세계 최고인 미국의 경쟁력을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모든 나라와 에프티에이를 체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일자리는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나한테도 A학점을 주며 평소 칭찬을 많이 했던 그는 아끼던 제자와 그 후손들이 식민지 한국에서 어떤 고통을 겪을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 좋은 그도 말이다.

 

―『한겨레』서기 2011년 12월 10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