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말 일자리를 늘리고 싶다면

개마두리 2011. 12. 21. 13:03

 

- 건강한 경제생태계의 한 축인 소비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복원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

 

- <세상 읽기>

 

- 윤석천(경제평론가)

 

세밑의 거리를 걷는다. 허전하다. 연말의 기분 좋은 흥청거림이 없다. 사람들은 그저 바쁘게 움직일 뿐, 좀처럼 웃지 않는다. 날까지 흐리니 고담시가 따로 없다. 하긴, 가구주의 절반이 스스로를(자신을 - 옮긴이)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밝을 수는 없을 거다.

 

가계대출이 11개월 만에 최고로 늘었단다. 그 양상이 기분 나쁘다. 주택담보대출은 줄고 마이너스 통장과 예/적금 담보대출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단다. 뭘 의미하는 걸까. 예금으로 소득 감소분을 메우고 있다는 소리다. 벌지 못하니 예금을 헐고 적금을 깨 먹고산다는 소리나 진배없다. 모두 변변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엠비노믹스’는 태산명동서일필(큰 산이 울릴 만큼 난리를 떨더니, 나타난 건 겨우 작은 쥐 한 마리 뿐이라는 이야기.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일을 가리킬 때에 쓰는 말이다 - 옮긴이)이었다. 그런데 큰소리 만큼은 여전하다. 대통령은 내년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를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한다. 4년 내내 일자리 타령이다. 4대강 공사를 시작할 때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도 일자리는 한결같이 전가의 보도로 쓰였다. 말대로 됐다면 우린 이미 일자리 걱정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쓸만한 일자리가 늘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정말 대통령은 엠비노믹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 걸까. 여전히 재벌에 압력을 가하면 일자리가 뚝딱하고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걸까. 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층전쟁’의 원인이 바로 그 ‘적하주의’에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그들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거라는 그 허황한 논리를 여전히 믿고 있는 한 희망은 없다. 일자리는 건강한 경제생태계만이 만들어낸다. 기업가와 자본가는 그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일자리 창출의 절대 상수는 언제나 충분한 가처분소득을 가진 다수의 고객(소비자)이다. 경제학을 몰라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삼성의 ‘갤럭시’나 현대의 ‘쏘나타’도 그것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을 가진 소비자가 없다면 한순간에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수많은 일자리도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지금처럼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본가가 자신의 몫을 최대한 많이 챙기기 위해 노동자에게 가능한 한 적은 임금을 주려고 하면 어찌될까. 공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줄어든 임금만큼 저축을 깨거나 부채(빚 - 옮긴이)를 얻어 생활하게 된다. 그마저도 끊기면? 당사자는 물론 기업도 망하게 된다. (물건을 살 - 옮긴이) 여력이 있는 잠재 소비자가 점점 주는데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아서 그 이익으로 먹고사는 - 옮긴이) 기업이 생존할 수는 없다. 경제 생태계의 붕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건강한 경제생태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한 축인 소비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자본가만 살찌고 있다. 경제생태계의 불균형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번 망가진 생태계는 그 회복에 몇 배의 힘이 들기 마련이다. 지금 그것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생태계 복원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

 

희망을 앗아가는 것만큼 큰 죄악은 없다. 스스로 하층민이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은 이미 반(半)지옥이다. 계층 이동의 통로가 막힌 세상은 또다른 중세다. 신분 이동이 불가능한 중세나 계층 이동의 희망이 없는 현대나 다른 점은 없다. 계층 이동은 질 높은 일자리로만 가능하다. 지금 당장 중산층을 살려내야 한다. 그들의 구매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간단하다. 공정한 부의 분배에 집중하면 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인, 우리나라 국민 - 옮긴이) 1%의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으니 강제로라도 소득이전을 시켜야 한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배당/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도 강화해야 한다.

 

건강한 일자리를 늘리고 싶은 게 진정이라면, 자본가와 기업가의 몫을 줄여야 한다. 주 소비자인 노동자의 몫을 늘려야 한다. 그게 공생의 필수조건이다.

 

―『한겨레』서기 2011년 12월 20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