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수출 늘면 잘살게 될까

개마두리 2012. 1. 29. 17:35

 

- <야! 한국사회>

 

흔히 한국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가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출대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사로 포장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아래로 추진된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의 명분도 여기에서 나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니 다른 나라와 무역을 확대해 성장하도록 마치 운명지어진 나라처럼 묘사됐다. 정부가 각종 에프티에이를 추진하면서 ‘경제영토 극대화, 개방이익 선점’등을 홍보용 구호로 내건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입 규모를 나타내는 무역의존도는 2010년 기준 102%로 매우 높다. 일본과 미국의 무역의존도가 20% 전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35~40% 전후, 중국이 45%, 독일이 6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물론 홍콩,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등 국제적인 상품 및 서비스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보다는 낮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인구 300만 ~ 600만 정도의 도시국가들로 내수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한국처럼 웬만한 경제규모를 갖춘 나라 가운데 무역의존도가 이 정도로 높은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도 높은 무역의존도를 막무가내로 더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 말대로 수출을 늘리면, 즉 무역의존도를 높이면 더 잘 살게 될까. 무역의존도 추이를 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물론 경제개발 초기에 이른바 수출드라이브를 통해 경제성장을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성장과 함께 무역의존도가 함께 높아졌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이후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소득이 늘자 내수도 성장하기 시작해 수출입 규모가 계속 늘었음에도 무역의존도는 60% 수준에서 거의 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민주화가 맞물리던 시절에는 무역의존도가 50%대까지 떨어졌다. 이때가 어쩌면 성장과 분배 양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재벌대기업의 수출을 중심으로 무역의존도가 50%대에서 102%까지 급상승했지만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내수는 위축됐으며 가계는 늘 불경기에 시달렸다.

 

오히려 국민소득 가운데 가계가 급여 등으로 챙기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악하돼왔다. 수출이 늘어나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져도 일반 가계의 소득으로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무역의존도가 낮아졌던 1987~96년 10년 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은 오히려 더 가파르게 올랐다. 크게 보면 수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일반 가계의 몫은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다. 인위적인 고환율 등으로 일반국민의 부를 수출대기업에 이전해주면서까지 수출을 비대화하고 내수를 극도로 위축시킨 탓이다. 그렇게 해서 국내총생산에서 내수, 즉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70%, 일본과 유럽국가들은 60%대에 이르는데 한국은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수출만 극도로 배대해진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한국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라는 쌍발 엔진 가운데 수출이라는 엔진 하나만 주로 사용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질적 성장은 고사하고 양적 성장조차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이제는 내수를 키우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저임금 근로자 중심의 임금 상승을 유도해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쌍발 엔진으로 날 때 훨씬 더 안정적이고 멀리 날 수 있다.

 

- 선대인(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

 

-『한겨레』서기 2012년 1월 19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