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늦었다.’ 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펜을 들어 몇 자 적는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소설 『 프랑켄슈타인 』 의 완역본을 다 읽었다.
예전부터, 그러니까 소년 시절부터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20대 후반에는 그 소설을 알려주고 파헤친 어느 대학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그때 호기심이 생겨서 ‘ 언젠가는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어. ’ 하고 마음먹었고, 마침 그 소설의 완역본이 우리 동네 도서관에 있어서, 그걸 빌려다가 며칠 동안 붙든 뒤 겨우겨우 다 읽은 것이다(그게 벌써 일곱 해 전, 또는 여덟 해 전의 일이다).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착잡함과 씁쓸함이었다.
정말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만들고 나서 그를 버리고 달아난, 무책임한 ‘아버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 ‘괴물’이 아직 타락하기 전, 그러니까 속마음은 착하고 순수했을 때 ‘괴물’의 흉측한 겉모습만 보고 화를 내며 ‘괴물’에게 욕을 하며 그를 죽이려고 든 세상 사람들(유일한 예외는 눈먼 남자 노인뿐이었다)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어른이 되고 난 뒤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삐딱해졌기’ 때문일까?
다른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 과연 과학의 발전이 좋기만 한가? 위험한 게 아니고? ’ 하고 생각하는데, 나는 ( 물론 그런 생각도 하지만 ) ‘ 어쩌면 “괴물”보다 더 비난받아야 하는 건, 겉모습만 보고 “괴물”을 판단한 인간들인지도 몰라. ’ 하고 생각하니, 확실히 그들과 나는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런 나의 ‘풀이’를 의아하게 여긴다면, 부디 내 풀이(이자 느낀 점)를 ‘ 잘못된 것 ’ 이나 ‘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 대신 내 풀이를 ‘보충설명’ 이자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로 받아들여 주시길 바란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 음력 12월 5일에, 유튜브로 국악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그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잉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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