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다른 자세를 취하는 까닭
일본과 독일(‘독일과 일본’이라고 말해야 한다 - 옮긴이)은 우리 시대의 전범 국가들이다. 두 나라와 관련한 여러 이미지 중에는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데 반해, 독일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게 있다. 그래서 독일은 괜찮은 나라고 일본은 파렴치한 나라라는 게 우리가 가진 인상이다.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독일은 반성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반성하는데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은 전범 국가인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에 대한 전후처리가 달랐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은(그 전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가장 힘센 나라였다 - 옮긴이) 독일과 일본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했다. 독일은 범죄자로 다루었지만, 일본은 그렇게 다루지 않았다. 독일은 동과 서로 분단됐지만, 일본은 그렇게 분단되지 않았다. 또 독일에서는 기존의 정치체제(나치당이 만든 정부 - 옮긴이)가 와해됐지만,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제(메이지 유신 때 확립되어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까지 유지되었던 전제군주제 - 옮긴이)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패전을 계기로 일본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일왕(이름은 ‘히로히토’.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범죄자다. 무솔리니나 히틀러와는 달리 전혀 처벌받지 않고 왕위를 유지했고, 서기 1989년에 병으로 죽었다. 오늘날의 일왕 ‘아키히토’는 이 사람의 아들이다 - 옮긴이)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1946년 1월 1일 이른바 ‘인간 선언’을 했다는 점뿐이다. 일왕이 자기는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점만 빼면,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전이나 후나 일본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바로 여기에,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장개석(蔣介石.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를 격파하고 중국대륙을 석권했다면, 대전(제 2차 세계대전 - 옮긴이) 후에 일본의 처지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에 미국은 국민당 정권을 자국의 동아시아 파트너로 삼으려 했다. 국민당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하지만 미국의 희망사항과 달리 국민당은 (부정부패와 인민에 대한 수탈로 한족들의 민심을 잃어 - 옮긴이) 공산당에게 밀렸다. 국민당이 패배할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미국은 중국을 포기했다.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패전국 일본을 자신들의 동아시아 파트너로 삼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일본은 독일처럼 가혹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됐을 뿐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으로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승전국 못지않은 중요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전범으로서 처벌을 받은 게 아니라, 전전(戰前. 전쟁이 일어나기 전 - 옮긴이) 못지않은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독일은 범행(침략과 전쟁범죄 - 옮긴이)을 저지른 뒤 감옥신세(나치 간부를 처형하고 내쫓고 감옥에 보내는 등 연합국이 취한 조치 - 옮긴이)를 진 데 반해, 일본은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감옥에 안 갔음은 물론이고, 도리어 미국의 대리인이 되어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모범 시민상’ 표창까지 받은 셈이다. 감시를 받아야 할 나라가 감시를 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 입장에서는 굳이 독일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독일은 반성하고 일본은 반성을 안 하는 것은, 양국의 국민성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일본이 자국의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김종성,「정당방위로 포장된 일본의 침략 전쟁」,『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251 ~ 253쪽.
* 출처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김종성 지음, (주)위즈덤하우스 펴냄, 서기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