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혁명은 민중들에게도 명예로웠나
-『걸리버 여행기』와 영국의 의회정치
(지금으로부터 290년 전인 - 옮긴이) 1726년에 간행되어 당시 영국에서, 특히 아일랜드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아일랜드’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알려진 나라인 ‘에이레Eire'는 서기 17세기 후반부터 서기 20세기 초까지 23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 옮긴이)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걸리버 여행기(Travels into Several Remote Nations of the World)』는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에서도 1960년대 이래 동화로 번안(飜案. 안건[案]을 엎다[飜].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땅 이름/사람 이름 등을 자기 나라의 것으로 바꾸어 고침 - 옮긴이)되어 어린이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영국의 의회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 성인용 풍자소설이다. 실제로 어린이들에게 원본 소설을 읽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 버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안된 동화『걸리버 여행기』는 원작의 줄기는 다 빼 버리고 곁가지만 남겨놓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번안동화다. 아마도 1960년대의 풍토에서 일본판 번안물을 무조건 베끼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서기 1979년에 태어나 서기 1990년에『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다. 물론 동화로 번안된 것을 읽었다. 나는 그 책에서 소인국 이야기와 거인국 이야기는 읽었지만, 원작에 실려 있는 제 3부인 ‘라푸타’ 이야기와 제 4부인 ‘야후와 휘넘들의 나라’ 이야기는 전혀 읽지 못했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대학교의 서점에서『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읽을 수 있었고, 그제야 그 책에 3부와 4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3부는 ‘왕이 한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광주항쟁을 탄압하고 들어선 제 5 공화국의 분노를 사서 번역되지 못했고, 4부는 서기 20세기 후반의 한국이 아니라 서기 18세기의 영국에서 ‘신성모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성직자들에게 비난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걸리버 여행기』완역본은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 옮긴이)
『걸리버 여행기』의 정치풍자가 얼마나 지독했는가는 출판 당시 출판인이 자진해서 상당 부분을 삭제하고 개작해 넣어 작가(스위프트 - 옮긴이)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은 해프닝이 있을 정도였다. 스위프트가 비판의 표적으로 겨냥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당시의 (영국 - 옮긴이) 집권층인 앤 여왕과 휘그당 내각이지만, 좀더 넓게 보면 산업혁명기의 유럽 사회 전체였다.
소설에서 걸리버는 첫 번째로 소인국 릴리퍼트를 여행하게 되는데, 이 소인국에 대한 묘사는 다름 아닌 영국 사회를 비유하고 있다. 15cm도 채 안 되는 작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릴리퍼트에서도 귀족들이 파를 나누어 정치투쟁에 여념이 없다. 거인 걸리버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하찮다.
이를테면 높은 구두굽을 신는 ‘트리멕산’파와 낮은 굽을 신는 ‘슬라멕산’파가 서로 자기네 구두를 신어야 한다고 우기며 싸우는데, 걸리버가 보기에 그들의 구두굽 높이 차이는 2mm도 채 안 된다. 이것은 당시 영국 정계가 휘그당과 토리당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는 행태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스위프트가 살았던 18세기 초반의 영국은 이제 산업혁명이 폭발적 분출을 눈앞에 두고 사회 도처에서 변화의 조짐이 꿈틀대던 시기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동하는 힘은 이미 상공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신흥계층들로부터 나오고 있었고, 자연히 전통적 기득권자들은 그들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려고 했다.
종교적으로 보면 신흥 상공업자들은 종교개혁의 세례를 받아 이른바 ‘프로테스탄트’(청교도 - 옮긴이)를 형성하고 있었고, 구세력은 주로 전통적인 지주층으로 처음에는 가톨릭(천주교 - 옮긴이)을 옹호했으나, 국왕과 결탁하면서 영국국교회(성공회라고도 한다 - 옮긴이)를 지지해 왔다. 신흥세력은 의회를 세력기반으로 삼아 사사건건 국왕의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이 두 파의 파쟁은 급기야 1642년부터 1648년까지 피비린내나는 내란을 초래하게 된다. 의회파는 크롬웰이라는 뛰어난 지도자의 통솔력에 힘입어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한다.
이러한 정국변동을 통해서, 영국 정계는 영국국교회를 지지하며 지주층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파가 토리당으로, 프로테스탄트를 지지하며 의회정치를 주장하는 신흥세력이 휘그당으로 양분되었다.
한편 크롬웰의 내란 이후, 국왕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는 어리석게도 영국 상황에서는 시대착오적인 가톨릭을 복구하려고 시도했다가, 양파(兩派. 여기서는 토리당과 휘그당 - 옮긴이)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몰리고 만다. 이렇게 해서 제임스 2세는 쫓겨나고, 양 파는 네덜란드에서 윌리엄을 초빙하여 자기들 말을 잘 듣는 왕으로 옹립한다. 이것이 1688년의 명예혁명이다.
의회에서 다수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휘그당은 다시는 국왕의 독재가 불가능하도록 문서로서 “국왕은 법의 집행을 정지시키지 못하며, 의회의 동의 없는 조세 징수는 안 된다.”는 <권리장전>을 발표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의회의 입법권, 의원의 면책특권, 언론의 자유 등이 모두 이때 영국의 의회가 국왕과의 투쟁 속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러나 휘그당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은 국민 일반의 이해를 대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신흥 상공업자들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지배층의 지위에 오른 자들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국왕의 임의적인 세금징수를 가장 크게 문제 삼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돈 많은 자신들의 이해와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농촌에서 쫓겨난 몰락 농민들, 도시의 하층민들의 눈으로 보면 휘그당이나 토리당이나 다 가진 자들의 정파고 서로 자기 몫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무리에 불과했다. 구두굽 높이 2mm의 차이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거인 걸리버의 눈을 통해 풍자한 것이다.
걸리버가 두 번째로 찾아간 나라는 거인국 ‘브롭딩내그’인데, 이 나라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비추어 그의 모국인 아일랜드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소인국에서와는 반대로, 걸리버가 보기에 이 거인국 사람들은 비록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은 걸리버가 전해 주는 영국의 타락한 정치와 다른 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정확히는 침략 - 옮긴이) 등에 대해 걸리버가 소인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일랜드는 영국 서쪽의 섬으로(지금은 독립국가인 에이레와 영국의 지배를 받는 북北에이레로 나뉘어져 있다 - 옮긴이), 전통적으로 많은 교황과 성직자를 배출한 가톨릭 국가였다. 그러나 스위프트가 살던 1691년에 영국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다. 그 결과 아일랜드 인구의 10분의 1에 불과한 영국국교회 세력이 다수의 가톨릭교인들을 지배하는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반발한 - 옮긴이) 아일랜드인들의 독립운동이 이후 줄기차게 전개된다. (영국의 에이레 식민 지배는 서기 19세기 중엽에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불리는 참사를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겠다 - 옮긴이) 이 독립운동은 1921년에 가서야 비로소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북부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 영토로 남겨둔 채여서 오늘날까지도 북아일랜드인들의 독립군인 아일랜드 공화군(IRA)은 폭탄 테러를 일삼는 공포의 조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아일랜드인들의 독립열기를 부추기는데『걸리버 여행기』가 지주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아마도『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 브롭딩내그가 평화롭고 소박한 조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 나라는 하늘에 떠다니는 나라, 라푸타다. 땅에서 붕 떠서 하늘에 떠다닌다는 것이 상징하듯이, 현실생활과 무관한 연구만 하는 과학자들과 이론가들에 대한 풍자의 장이다.
이곳에서 학자들은 사색에 몰두하느라 다른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서, 이들을 사색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만 하는 사람이 필요할 정도다. 그들은 질산칼륨을 추출하여 공기 속의 물기를 여과시킨 다음 그것을 건조하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공기를 연구하는가 하면, 대리석을 부드럽게 해서 그것으로 베개와 바늘꽂이를 만들겠다고 장담하기도 한다.
이렇게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당시의 엄청난 과학 발달이 인간의 도덕적 삶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천문학과 수학의 발달이 두드러졌는데, 이미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그러니까 지동설 - 옮긴이)을 발표했고, 1687년에는 뉴턴이 중력법칙(만유인력의 법칙 - 옮긴이)을 발표해 절정에 이르렀다. 데카르트는 1637년「해석 기하학」을 발표해, 모든 도형을 숫자계산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수학의 논증방법을 철학과 신학에까지도 적용시킬 수 있다며『방법서설』에서는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발달이 신 중심의 유럽사를 대격변시키고, 합리성이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고통받고 있던 일반 민중들의 눈에는 이러한 변화가 그들의 고단한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비친 것도 사실이다. 걸리버의 눈에 비친 라푸타의 황당무계한 학자들이 그런 모습니다.
마지막 나라는 이성과 도덕이 충만한 나라 휘넘이다. 이 곳의 주민은 인간이 아니라 말이며, 인간과 유사한 ‘야후’는 아주 추한 야만 동물로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골치 아픈 존재다. 물론 휘넘은 스위프트가 바라는 이상사회다. 휘넘의 말들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들은 인간을 향해 아무것도 물어뜯을 수 없는, 얼굴 아래 납작하게 붙어 있는 입과 연약한 손톱과 발톱만 가진 주제에 무슨 전쟁을 그렇게 많이 벌이느냐고 묻는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그러한 부자는 가난한 사람 1000명당 1명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한다. 휘넘에서는 무엇이든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누구나 균등하게 이성을 최고조로 계발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사회는 비록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가 태초부터 꾸어온, 저버릴 수 없는 꿈이다. 스위프트는 18세기 초반의 영국 사회(교과서에는 산업혁명, 과학발달과 의회민주주의가 꽃핀 황금기로 나와 있는 시대)가 이러한 꿈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책(『걸리버 여행기』- 옮긴이)의 끝부분에서 “모든 작가들이 자기의 책을 출판하기 전에 대법관 앞에 가서, 전적으로 자기가 아는 사실에 입각해서 쓸 것을 서약하도록 법을 제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속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몇몇 저술가들은 대중들에게 더 잘 먹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위선적인 저술가들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지은이인 김성환 선생 - 옮긴이)의 가슴도 뜨끔해지는 대목이다.
- 김성환,『교실 밖 세계사 여행』, 159 ~ 165쪽
* 출처 :『교실 밖 세계사 여행』(김성환 지음, (주)사계절출판사 펴냄, 서기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