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회에서 확인한 아나톨리아의 역사와 튀르크인의 역사

개마두리 2016. 12. 2. 20:37


내가 몇 해 전,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튀르키예(‘터키’의 정식 국호)의 유물 전시회에서 확인한 사실들을 - 그 때 적어둔 것을 바탕으로 - 간략하게 소개한다. ‘아나톨리아’는 땅의 이름이고,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튀르크’는 흔히 ‘투르크’라고 불리는 민족의 정확한 이름이다.


※아나톨리아의 역사(땅의 역사/튀르크인이 쳐들어오기 전에 펼쳐진 역사) :


- 서기전 6500년(지금으로부터 8516년 전) : 차탈휘육 문화(신석기 시대)가 꽃피다.


- ‘알라자휘육’ 왕(王) : 서기전 3000년(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아나톨리아를 다스린 왕.


- 서기전 1900년(지금으로부터 3916년 전) : 히타이트 사람들이 쇠를 만들어서 쓰다.


- 서기전 1650년 ~ 1380년(지금으로부터 3666년 전 ~ 지금으로부터 3396년 전) : 히타이트 고(古)왕국 시대(이 나라는 270년 동안 유지되었다)


- 서기전 1380년 ~ 서기전 1200년(지금으로부터 3396년 전 ~ 지금으로부터 3216년 전) : 히타이트 제국(이 나라는 180년 동안 유지되었다)


- 서기전 1200년 :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하다.


- 히타이트 제국의 후속국가는 아나톨리아 남부와 수리야(영어 이름 ‘시리아’)북부에 도시국가 형태로 남았다.


- 서기전 800년 경(지금으로부터 2816년 전) : 아나톨리아에 (헬라스 신화에도 나오는) ‘미다스’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르디온’ 고분이 만들어지다.


- 서기전 730년(지금으로부터 2746년 전) : ‘바라캅(Barrakab)’ 왕이 히타이트 제국의 도시였던 ‘사말’을 다스리다(이 무렵 연꽃은 히타이트 왕권의 상징이었다). 이 왕은 아람어 명문(銘文. [돌이나 쇠붙이나 그릇 따위에] 새긴[銘] 글[文])에서 자신이 사말에 풍족함을 가져왔음을 과시하였다.


- 서기전 1세기(지금으로부터 2050~2060년 전) : 아나톨리아가 로마군에게 점령당하고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다.


※튀르크인의 역사(사람의 역사) :


- 서기 552년 : 몽골초원에서 괵튀르크 제국(중국 사서에는 ‘돌궐’로 나온다)이 세워지다.


- 서기 960년 :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튀르크인의 한 갈래인 ‘셀주크’ 족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다.


- 서기 11세기(서기 1000년 ~ 서기 1099년) : 튀르크 족이 중앙아시아를 떠나 아나톨리아 반도로 쳐들어오다.


- 마르코 폴로는 튀르키예의 양탄자에 나타나는 기하학 무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 서기 1369년 :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특수부대인 ‘예니체리’(튀르크 말로 ‘새로운 사람’/‘신병[新兵]’이라는 뜻)를 만들다.


- 오스만 1세(서기 1299년에 즉위)의 이름에서 ‘오스만 튀르크’라는 제국의 이름이 비롯되었다(이 제국은 ‘오토만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이라고도 불린다).


- 오스만 제국은 ‘무라드 1세’(서기 1324년 ~ 1362년 재위) 때부터 ‘술탄’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그 뒤로도 튀르크 제국에서 군주를 일컫는 칭호는 ‘칸’과 ‘술탄’이 함께 쓰이다가, 나중에는 ‘술탄’이라는 칭호만 쓰이게 되었다).


- 튀르키예 사람들은 연꽃을 ‘가문의 영광’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긴다.


- 서기 14세기(서기 1300년 ~ 서기 1399년 사이)에 만들어진 오스만 제국의 놋쇠 등잔은 맘루크 왕조(중세 말기에 맘루크들이 미스르[영어 이름 ‘이집트’]에 세운 왕조. 프랑크인[서아시아에서 십자군을 일컫는 말]과 몽골 군사의 침략을 무찔렀으며, 미스르에 번영을 불러왔고,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세계의 이슬람 문화와 문명을 지켰다. 맘루크는 ‘맘룩’이나 ‘마멜루크’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유된 자’라는 뜻이다. 원래는 용병으로 부리려고 사들인 튀르크인 종들을 일컫는 말이었다)의 술탄 ‘샤반 2세’(서기 1313년 ~ 1373년 재위)를 위해 만든 것이다.


- 서기 14~15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쓰인 청자 금속장식 성수병은 청자 편병(扁甁. 납작한[扁] 병[甁]. 몸통이 납작하고 둥글며 짧은 목이 달린 병을 일컫는 말이다. 순우리말로는 ‘납작병’이나 ‘자라병’이라고 부른다)에 금도금한 은으로 만든 뚜껑과 두 개의 주둥이를 덧붙여서 만들어졌다.


-『자페르 나메』: ‘승리의 책’이라는 뜻. 티무르 제국을 연 티무르 아마르(‘티무르 영주’라는 뜻)[서기 1370년 ~ 서기 1450년]의 전쟁과 승리의 역사를 쓴 책이다.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의 학자 ‘샤라프 앗 딘’(‘[정의로운] 신앙인 샤라프’라는 뜻) 알리 야즈디가 서술하였으며, ‘함둘라흐 이븐 알 샤이흐 무르시드 알 - 카팁’이 필사하였다. 필사본 안에는 10개의 세밀화가 그려져 있다. 지금 남아있는 필사본은 서기 148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티무르는 오스만 제국을 침략해서 한 번 무너뜨린 적이 있는 군주이기도 하다. 오스만 제국은 그가 물러난 뒤 다시 한 번 세워졌다).


-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드 2세’(서기 1481년 ~ 서기 1512년 재위) 시대에 활동했던 유명한 서예가 ‘셰이흐 함둘라흐’가 여러 가지 서체로 쓴 글씨를 모은 서책(『여섯 서체로 쓰여진 서책』)이 남아 있는데, 그는 ‘여섯 서체’라고 불리는 ‘쉴르스’, ‘네시흐’, ‘마학카크’, ‘에리하니’, ‘테브키이’, ‘르카’ 서체를 재해석해서 서체의 규범을 세웠다.(이는 한자를 쓸 때 ‘초서체’나 ‘예서체’가 따로 있는 것과 같다)


- (튀르크 무슬림을 비롯한) 무슬림은 묵주를 세면서 기도를 하거나 묵상(黙想. [입을 다물고] 고요히[黙] 생각하다[想] →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다)을 한다.


- 오스만 제국의 궁전 사람들은 서기 16세기 초반부터 체스를 즐겼다. 이 시기 도시의 커피 전문점에서는 체스를 즐기는 오스만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이 시대의 체스 말은 이슬람교의 전통에 따라 인물상 없이 단순하게 만들었다).


- 서기 1618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드 1세’의 무덤에 바쳐진 대형 향로는 명나라의 청화백자에 오스만 시기의 금속 장식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 서기 19세기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나무에 자개와 대모갑(바다거북의 껍데기)을 입힌 나전 서랍함이 만들어졌다.


- 서기 1826년 : 오스만 제국의 술탄 ‘마흐무드 2세’가 예니 체리 부대를 해체하고 모든 예니 체리를 죽이다.


- 서기 1923년 :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튀르키예 공화국이 세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