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고분시대의 의미

개마두리 2017. 4. 2. 06:22

4세기의 일본은 ‘수수께끼의 시대’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가 일본에 관한 사료는 고고학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헌 자료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중국 사료에도 3세기 중반부터 5세기 초까지 약 150년 동안이 왜국기록의 공백이다. 일본서기의 신공기는 2 ~ 3세기의 기록에 5세기 기록을 덮어씌운 것이고, 응신기는 4세기 말인 390년부터 시작하여 5세기 초까지만 있으므로, 4세기의 일본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기록을 보아도 4세기(정확히는 영락 6년 이전)의 일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 4세기의 왜국이 나타나는 유일한 사료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이나, 이 역시 일본열도의 왜국이 아니라 한반도 남단에 있었던 가야(더 정확히는 임나 - 옮긴이)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4세기에 왜군이 한반도에 출병하였느니 어땠느니 하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4세기의 일본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전혀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4세기의 일본을 보여주는 아주 생생한 목격담이 있다. 바로 일본을 건국하였다는 1대 천황인 신무조이다.


신무조는 본래 <응신 7년, 가을 9월> 기록과 <응신 8년, 봄 3월> 기록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따로 분리하여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한국인이 처음 일본에 건너가 목격한 4세기 말 일본열도의 생생한 증언이 있다. 왜 왜국이 중국사서에 나타나지 않았는가도 나오고, 왜 일본열도에 고분시대가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자세히 나온다.


4세기의 일본은 전기 고분시대로서 지방 유력자들이 서로 싸우는 혼란 상태로, 일본을 대표할 만한 정부가 없었다. 일본서기를 보면 4세기 당시 일본은 특별한 강자가 없이 전국에 동네세력이 난립하여 경쟁하던 시기였고, 고분시대의 시작은 그 흔적이다. 물론 4세기에 일본에서 서로 싸우는 지방호족들 중에 서력기원 이전에 (일본열도로 - 옮긴이) 이민 간 일본 원주민(학술 용어로는 ‘조몬 인’ - 옮긴이)은 없다(그러나 나는 일본 본주本州 섬의 동북부인 동북 지방의 원주민 - 야마토 민족이 ‘하이蝦夷[에미시]’라고 부른 족속 -을 “지방호족”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군은 서기 9세기에야 이들을 정복했다 : 옮긴이). 모두 그 이후 한반도에서 이민 온 주로 가야계나 신라계 중심의 이민 집단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기가 모두 동네세력 정도로 고만고만하여 누가 나서서 통일정권을 창출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4세기에 외국에 사신을 보낼 수 없었다.


내가 4세기의 일본을 ‘동네국가’라 하지 않고 ‘동네 세력’이라 한 이유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국이라도 국가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왕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고, 그 아래에 신료라 할 수 있는 관료집단이 있으며, 간단하나마 조세제도 같은 정치조직을 움직이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3세기의 한반도를 그린 삼국지를 보면 80국이 있는데, 이는 동네국가가 아니다. 만일 동네국가라면 3세기의 한반도는 고분시대여야 한다. 그러나 아니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3세기의 중부 이남 한반도에는 韓과 非韓 두 가지 정치세력만 있었다. 따라서 韓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동네국가가 아니다. 비한을 대표하는 사로국(신라 - 옮긴이) 역시 잘 정비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어서 동네국가가 아니었다. (國[국]이라는 한자에 ‘나라’라는 뜻이 있어서 사람들이 선입견을 품지만, - 옮긴이) 78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주(state)'나 중국의 ’省‘에 해당하는 韓의 지방조직이었다.


(참고로 ‘國’에는 ‘고장/지방’이라는 뜻도 있다. 다시 말해서『후한서』「한전」에 나오는 ‘마한/변한/진한’의 國들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한[韓]의 ‘지방’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한전」에 한의 “진왕[辰王]”이 “삼한 땅을 모두 통솔하였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그러니까 한이라는 큰 나라 안에 마한/변한/진한이라는 큰 구역들이 있었고, 그 구역들 안에 78개의 지방이 있었다. - 옮긴이)


한반도는 5세기가 고분시대인 열국시대이다. 이는 그 직전인 4말 5초에 어떤 국가가 멸망하고 아직 통일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韓이라는 국가가 무너지고 고분시대가 시작되며, 백제가 5세기 말 영산강유역을 통합하고, 신라가 6세기 중반 (후기가야와 임나가 있던 - 옮긴이) 낙동강유역을 통합하며 고분시대가 막을 내린다.


3세기 후반 기내지역의 고분시대 개막은 구주의 야마대국 멸망 후, 일본열도가 절대적 강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전국시대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고분시대는 기본적으로 호족들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고분의 크기는 커졌어도, 대륙적인 유물이 나오기까지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기다려야 했다. 4세기 당시 문화적으로 후진적이고 말도 가지지 못한 일본열도의 자체세력(가야인/신라인/마한인/침미다례 인과 한반도의 원주민인 원原 한국인 - 옮긴이)으로는 스스로 통일을 이룰만한 강자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일본의 통일은 외부에서 문화적으로 월등한 집단이 수백만 명 이상 들어오고서야 가능해졌다.


일본열도에서 백 년 이상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마침내 5세기 초 일본에 기존의 모든 동네세력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고분이 출현한다. 모든 다른 고분들을 크기와 부장품의 내용으로 팍 눌러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 부장품들은 일본열도의 것이 아닌, 한반도 것이다.


한국사와 일본사의 중요한 차이점의 하나는, 한반도는 자체적으로 통일정권이 들어서나, 일본은 내부의 힘으로 통일정권을 이룬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4백 년 역사를 가진 강력한 고대국가(삼한백제 - 옮긴이)가 들어와 통일을 이루게 된다는 점이다.


고분시대란 정권이 사라지고 아직 통일정권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열국시대 현상의 하나로, 일본이 대표할만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즉, 고분시대가 도래하였음은 그 이전에 어떤 국가가 있었으나 멸망하여 분열되고, 아직 (지방 세력이나 다른 소국들을 - 옮긴이) 압도할 만한 통일권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대규모 고분군은 정복왕조의 초창기에 나타난다.


고분시대는 그 이전에 국가경영의 힘이 축적되지 않으면 발생하기 어렵다. 만일 대형 고분이 없다면, 아직 국가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국가가 이미 오래되어 안정기에 들어갔거나 이다. BC(서기전 - 옮긴이) 1세기에 한반도에 거대고분이 없는 것은 전자이기 때문이고, (서기 - 옮긴이) 4세기에 거대고분이 없는 것은 후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에서 한 시대가 마감되는 4세기까지를 고대로 보고(더 정확히는 고구리[高句麗] 군의 공격으로 삼한백제가 무너지는 서기 396년까지를 고대로 보고 - 옮긴이), 대형고분군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5세기(더 정확히는 서기 397년 이후 - 옮긴이)를 중세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본다.  

    
- 김 상,『삼한사의 재조명 1』, 461 ~ 463쪽


-『삼한사의 재조명 1』(김 상 지음, (주)도서출판 북스힐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 옮긴이(잉걸)의 말 :


오늘날(서기 2017년 현재),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고조선 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를 ‘고대’로, 고리(高麗)시대를 ‘중세’로 간주한다.


예전에 나는 이 시대구분에 의문을 품고, “삼국시대가 끝난 뒤인 서기 668년부터,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나는 이 이름을 고구리가 망한 서기 668년부터, 진(훗날의 발해)이 세워진 서기 698년까지를 일컬을 때에만 쓰자고 제안했다]에 ‘중세’가 시작된다고 봐야 하지 않나? 그게 아니면 진이 세워진 뒤부터인 양국시대(남북국시대)부터를 중세로 보든가!” 하고 제안했는데, 김 상 님은 그보다 271 ~ 301년 앞선 삼한백제의 멸망과 고분시대의 개막을 중세의 시작으로 보자고 하셨다.


글을 읽어보니 그 제안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 내 제안과 김 상 님의 주장을 모두 적어서 소개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환웅족이 신시(神市)를 세워 다스리던 시대를 ‘상고(上古)’로, 단군이 나타나 고조선을 세운 시대(서기전 2333년)부터 삼국시대 말기(서기 668년)까지를 ‘고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리 말기(서기 668년 ~ 서기 1392년)까지를 ‘중세’로, 조선의 건국부터 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까지를 ‘근세’로, 서기 1894년부터 서기 1945년까지를 ‘근대’로, 서기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를 ‘현대’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기 1894년, 그러니까 동학 농민군이 들고 일어난 시기부터를 근대로 구분한 까닭은, 서양과 일본이 개항을 요구한 다음에야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사관에 반박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한국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시대구분은 - 그리고 조선노동당이 펴내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시대구분도 -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