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무덤에서 나온 사람 뼈가 밝힌 진실
사가(Saga)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영웅 전설을 일컫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이킹이 활동하던 때를 다루는 북유럽(‘사미’족[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원주민인 ‘라프’족을 일컫는 올바른 이름]의 땅인 스칸디나비아 북부와 수오미[핀란드의 정식 국호] 제외)의 옛날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중세시대 내내 바이킹 사회에서 말로 내려오다가, 바이킹 시대가 끝난 지 2~3세기 뒤(중세시대 말기인 서기 13~14세기)에 라틴 알파벳으로 적혀 기록으로 남았다.
사가에 따르면, 바이킹 사회에는 검과 창과 도끼와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서 싸우는(그리고 해적이 되어 적을 약탈하는) 여성 전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남자 전사들과 함께 싸웠고 (남자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고 치열하게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이 바이킹 시대가 끝난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왔기 때문에, 학자들은 기록을 믿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기 전에,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
지금으로부터 온 마흔 해(140년) 전, 북유럽의 한 섬에서 바이킹 시대의 무덤이 나왔을 때,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그 무덤의 주인을 전사이자 해적인 젊은 남자로 여겼다. 무덤에서 나온 것은 사람 뼈와 무기들뿐이었고, 금은으로 만든 반지나, 치마나, 귀걸이나, 목걸이나, 보석이나, 바늘이나, 베틀이나, 팔찌 같은 물건은 하나도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무기만 가지고 묻힌 사람은 전사일 테고, 여성이 좋아할 만한 물건(예를 들면 보석)은 하나도 안 나왔으니, 무덤의 주인은 남성 전사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몇몇 학자들이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뼈를 다시 한 번 조사했더니, 서기 19세기 후반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뼈에는 인간 남성의 뼈가 지닌 특징은 없고, 대신 인간 여성의 뼈가 지닌 특징만 나왔던 것이다. 이 결과가 옳다면 무덤 주인은 여성임이 분명했다. 바이킹 여성이 죽어서 무기들과 함께 묻혔던 것이다. 무덤에서 나온 물건들을 보고(그리고 사가가 바이킹 시대가 끝난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글자로 적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여기고) 사람 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무덤의 주인을 남성 전사라고 판단한 서기 19세기 후반의 역사학자들은 틀렸다.
이 연구결과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이킹 사회에는 여성 전사(이자 여성 해적)들이 있었고, 이들은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남성 전사들과 함께 싸웠으며, 해적질과 약탈도 했다. 사가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학자들의 선입견은 틀렸다.
따라서 역사를 배우고 연구할 때에는 선입견을 버리고, 고정관념을 의심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증거물들을(유적/유물/사람과 짐승의 뼈/흙/역사기록)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선학(先學)들의 연구결과를 무작정 믿고 받들지 말고, 그들의 학설이나 주장이나 사관이나 연구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문제가 있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앞 세대가 틀리고 뒤 세대가 옳을 수도 있고, 반대로 뒤 세대가 틀리고 앞 세대가 옳을 수도 있다.
또, 신문/잡지의 기사나, 날적이(일기[日記]를 일컫는 순우리말)나, TV나 라디오의 뉴스나『실록』의 기사처럼 일어난 일을 그때그때 담은 자료가 아니라, 몇 세기 전에 일어난 일을 적은 기록이라도, 그것을 ‘정확하지 않은 것’이나 ‘잘못된 것’이나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것이 물증(예컨대 사람 뼈나 유물이나 유적이나 짐승 뼈나 지층 안의 꽃가루)으로 뒷받침되는 기록인가? 논리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기록인가? 제 3자의 기록과 견주었을 때, 모순이 없는 기록인가?’를 따지고 나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열심히 생각하는 거(영화 <체리 향기>의 대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참고 자료 : ‘히스토리 HD'의 다큐멘터리인 <진짜 바이킹족(The Real Vik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