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금속활자, 활자의 발명은 한국이 수위

개마두리 2017. 7. 4. 23:49

“활자를 갖고 서적(책 - 옮긴이)을 만든 것이 퍽 많았으되, 그것이 대개는 한문이요, 정음(正音. ‘훈민정음’을 줄인 말. 내가 15년 전 네이버에서 읽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은 세종대왕이 만든 소리글자의 공식 명칭을 ‘훈민정음’을 줄인 ‘정음’으로 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한국이 쓰는 이름인 ‘한글’과, 조선 공화국이 쓰는 이름인 ‘조선글’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 옮긴이)으로 된 것은 아주 드물다.”


“조선 활자가 일본에 유전한(流轉한. 흘러들어가고[流] 옮겨진[轉]/또는 이리저리 떠돈 - 옮긴이) 연대는 바로 임진년(이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서 7년 전쟁이 일어난다 - 옮긴이) 다음해인 계사년이니, 선조 26년이요, 서기 1593년이다. 이보다 3년을 앞서서(그러니까 서기 1590년에 - 옮긴이) 서양 활판(活版. 활자[活]로 된 인쇄판[版]. 활자판 - 옮긴이)이 일본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조선 활자는 이 서양 활판을 압도하고 (일본 안에서 - 옮긴이) 홀로 횡행(橫行.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行動]함 - 옮긴이)하게 되었다.”


(역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이자 독일인인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만들어낸 해는 서기 1440년이므로, 서기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인쇄기는 온 쉰 해[150년] 뒤인 서기 1590년에는 온 유럽에 퍼져 있었다. 그렇다면 “서양” 사람으로서 서기 16세기에 일본에 온 포르투갈 사람과 에스파냐 사람들이 일본에 “활판”과 “활판”[그리고 인쇄기]안에 들어가는 금속활자를 전해 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이 7년 전쟁을 일으키기 2년 전에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로부터 금속활자와 “활판”을 받았는데도, 그것들 대신 조선에서 빼앗은 금속활자를 더 좋아하고 더 자주 쓴 까닭은 조선의 금속활자가 이베리아 반도의 그것보다 품질이 더 좋았거나, 아니면 일본인들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조선의 활자를 ‘더 익숙하고 쓰기 편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 옮긴이)


“한말(韓末. 대한제국 말기 - 옮긴이)에 와서는 일본을 거쳐 서양식의 진보된 신(新)활자 제작 기술을 배우며 또 (일본에서 만든 서양식 활자를 - 옮긴이) 가져오게 되었다.”


“처음 (조선왕조의 임금인 - 옮긴이) 태종(본명 이방원 - 옮긴이)께서 동(銅. 구리 - 옮긴이) 활자를 만드실 때 교령(敎令. 왕의 명령 - 옮긴이)을 내리사, ‘나라를 다스림에 누구나 꼭 필요한 책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출판을 보다 빠르고 쉽게 하라.’고 명하신 것은 곧 동활자(구리로 만든 활자, 그러니까 구리활자 - 옮긴이) 주조의 동기를 표시한(表示한. [겉/밖으로] 나타내[表] 보인[示] - 옮긴이) 것으로,


정치를 함에는 군서(群書. 떼 지어 모인[群] 책[書] → 많은 책/여러 가지 책 : 옮긴이)를 박람할(博覽할. 넓게[博] 볼[覽] : 옮긴이) 필요가 있는데,


조선에 중국 책이 드물며, 판각(板刻. [글자나 그림을] 널빤지[板]에 새긴 것[刻]. 책이나 글을 인쇄할 때 쓰였다.『팔만대장경』도 판각의 일종이다 - 옮긴이)은 해지기 쉽고, 군적(群籍. 군서와 같은 말 - 옮긴이)을 다 찍기 어려우니, 동(銅)으로 글자를 만들어 서적을 닥치는 대로 찍어 널리 펴서(퍼뜨려서 - 옮긴이) 무궁한(無窮한. 끝없는. 그침[窮] 없는[無] - 옮긴이) 이(利)를 꾀하려 함이다.”


“금속활자가 순전히 조선인의 창의에서 나온 것은『지봉유설』에 있는 이수광(李晬光)의 고증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한국인이라면 - 옮긴이) 누구나 한가지로 인정하는 바이지만, 사실 창의로 말하면 조선조가 아니요 훨씬 거슬러 올라가 고려(고리 - 옮긴이) 고종 때(서기 13세기 - 옮긴이)임을 알아야 하겠다.”


“중국에서는 청초(淸初. 청나라 초기 - 옮긴이)에 금속활자를 쓰게 되었다 하니(나는 예전에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에는 중국에서 나무로 만든 활자[목활자木活字]나, 납으로 만든 활자[납 활자]나, 흙으로 빚은 뒤 불에 구워서 만든 도자기 활자가 쓰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 옮긴이),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이 중국보다도 수백 년을 앞섰다.”


(청나라가 이자성의 순[順]왕조와 명나라의 후속국가인 남명[南明]을 무너뜨리고 중국 대륙을 손에 넣은 때가 서기 17세기고, 고리에서 금속활자가 나온 때는 서기 13세기이므로, 배달민족은 만주족이나 한족보다 4세기 전에 “금속활자”를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 옮긴이)

       
- 이상『책과 인생』제 175호(서기 2008년 7월호)에 실린 글인「금속활자, 활자의 발명은 한국이 수위」에서 퍼온 대목들(안춘근 선생이 엮은 책인『한국의 자랑, 과연 그럴 만 한가?』에서 다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