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동화는 없다, 현실판 ‘미녀와 야수’
- 진짜 ‘미녀와 야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 <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
(신문기사 원문에 실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그림(기사의 원문에 따르면, 이 그림의 이름은 「 페트루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의 초상 」 이며, 그림은 지금으로부터 441 ~ 448년 전인 서기 1575~1582년 사이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지금 미국 워싱턴에 있는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보존되고 있다 – 옮긴이)은 털복숭이 남자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두 남녀는 누구일까?
이 수체화는 (서기 – 옮긴이) 16세기(그러니까, 근세 초 – 옮긴이) 플랑드르(오늘날에는 벨기에의 일부분인 곳. 중세시대에는 양털을 재료로 삼아 옷감을 짜는 일인 모직 공업으로 번영했고, 북유럽과 지중해 세계/잉글랜드와 도이칠란트의 라인강 일대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여서, 통과 무역이 번창하기도 했다. 이곳은 화가와 건축가들이 남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 옮긴이) 화가이자 삽화가인 ‘요리스 회프나겔’이 제작한 총 네 권의 필사본 중 제1 권 『 이성적인 동물과 곤충들(불) 』 에 포함된 삽화다.
나머지 세 권은 『 네 발 동물 및 파충류 (땅) 』, 『 수생동물 및 조개류 동물(물) 』, 『 나는 동물 및 양서류(공기) 』 등이다.
회프나겔 이 책들에서 수천 마리의 다양한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렇다면, 동물책 삽화에 등장한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란 것인가?
16세기에 살았던 남자(그러니까, 동물책 삽화에 나온 남자 – 옮긴이)의 이름은 ‘페트루스 곤살부스’다. 여자는 그의 아내 ‘카트린’이다. 현대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곤살부스 – 옮긴이)는 ‘늑대인간 증후군’, 즉 선천성 다모증(몸에 거센 털이 지나치게 많이 나고 빨리 자라는 병 – 옮긴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신화적 괴물인 ‘늑대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삽화는 당시 사람들이 다모증 인간을 어떻게 보고 생각했는지 말해준다.
페트루스와 카트린은 현실판 < 미녀와 야수 >의 주인공이다. 페트루스는 아프리카 서북부의 스페인령(에스파냐령 – 옮긴이) 카나리아 제도에서 얼굴과 몸 전체가 검고 두꺼운 털로 덮인 채 태어났다. 어린 페트루스는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대관식에 ‘진기한 선물’로 보내졌다.
프랑스 궁정의 의사와 학자들은 페트루스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관찰했고, 곧 그가 ‘짐승이 아니라, 털로 덮인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소년이 (마치 늑대나 늑대인간처럼 – 옮긴이)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가 (그러는 대신, 의사와 학자들 앞에서 – 옮긴이) 자신의 이름을 침착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페트루스는 – 옮긴이) 기괴한 외모 때문에 동물의 처지로 전락했지만, 놀랍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 옮긴이) 그에게 흥미를 느낀 앙리 2세는, 이 야생의 소년을 신사로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싶어, (그에게 – 옮긴이) 교육을 시켜 보기로 한다.
뜻밖에도 그는 라틴어(동아시아로 치면 정체자[번체자]인 한자들로 쓰는 한문[漢文].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글말[문어(文語)]인 한문은 [입말(구어)인 한어(漢語. 예를 들면, 북경어나 절강어나 민남어나 광동어나 객가어나 사천어)와는 달리] 고급 언어였고, 국제 공용어였다 - 옮긴이), (고대 – 옮긴이) 그리스어(헬라스어. 줄여서 ‘헬라어’. 이 말도 동아시아로 치면 한문이다 – 옮긴이), 프랑스어 등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그는 – 옮긴이) 궁정 예절도 빠르게 익혔다. 미래에 나올 동화에서처럼, 짐승의 털 아래에는 품위 있고 지적인 왕자가 있었다.
앙리 2세는 그를 아주 좋아했고, 귀족 칭호까지 내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이었고, 그 누구도 (그를 – 옮긴이)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앙리 2세가 사망한 후, 그는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의 소유물이 되었다. 왕비는 궁정 하인의 아름다운 딸 ‘카트린’을 그와 강제로 혼인시켰다. 둘 사이에서 어떤 자식이 태어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페트루스는 착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페트루스에게 거부감과 반감을 품었을 – 옮긴이) 카트린은 점차 ‘마음의 자물쇠’를 열었을 것이다(그러니까, ‘점점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 옮긴이). 어쩌면 (카트린은 페트루스에게 – 옮긴이) 연민(憐愍. ‘불쌍히 여기고[愍] 가엾게 생각하다[憐]’ →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 : 옮긴이)이나 (페트루스의 얼굴이 아니라, 지성이나 예절이나 품위나 착한 마음씨 때문에, 서서히 – 옮긴이)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 글의 첫머리로 돌아가서, - 옮긴이) 카트린의 손이 페트루스의 어깨에 살짝 얹힌 초상화를 (다시 한번 – 옮긴이) 보자.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런 종류의 제스처가 커플(연인이나 부부 – 옮긴이) 초상화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그들이 실제로 사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카트린 – 옮긴이)의 얼굴은 다소 무표정하다. 공허한 눈빛은 감정적 거리를 보여준다.
페트루스는 디즈니 동화의 괴수(야수 – 옮긴이)처럼 멋진 왕자로 변신하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해피 엔딩(Happy ending. 행복한 끝맺음/행복한 결말 – 옮긴이)이 없었다.
(페트루스와 카트린 – 옮긴이) 부부는 비인간적 취급을 받으며 이 궁정에서 저 궁정으로 유랑했고, 털로 뒤덮여 태어난 그들의 자식들은 ‘귀족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자식을 강아지 분양하듯 떼어놓아야 했던 삶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진짜 ‘미녀와 야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 미녀와 야수 > 이야기는 “겉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가르침 – 옮긴이)을 준다. 아이들에게 정신의 추함과 육체의 추함을 분별하고, 마음과 영혼의 광채를 보도록 가르친다.
실제 ‘미녀와 야수’ 커플의 슬픈 삶,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비인도주의적 과거 역사의 모습일 뿐일까? 현실에서는 이 교훈이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인 것인가.
- 김선지(작가 / 『 그림 속 천문학 』 과 『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 저자)의 글
- 『 한국일보 』 서기 2023년 양력 4월 7일자 기사
- 단기 4356년 음력 7월 25일에, ‘눈에 보이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갈마(“역사”)에도, (사회나 조직이나 겨레나 나라나 문명권 같은) 공동체의 갈마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