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수원 살인사건과 영화 '살인의 추억'

개마두리 2012. 4. 10. 08:05

 

- [이안의 컬처필터] 미치도록 잡고 싶다, 사람 목숨 우습게 아는 권력집단을

 

- 이안 (영화평론가) angela414@paran.com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젊은 여성이 느닷없이 낯선 남성에게 끌려가 성폭행 당하던 현장에서 바깥 세계와 유일하게 이어진 생명줄이 전화였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에 구조를 요청하라며 단축번호 112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왔던 건 도대체 왜였을까? 신고한 바로 그 범행현장에서 피해자가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고서도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반성하기는 커녕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을 헛말로 만든 경찰은 무슨 배짱으로 피해자의 안타까운 구조요청을 무시하고 사건을 축소 은폐할 수 있었을까?

 

피해 여성은 경찰에 전화를 걸던 그 순간까지도 공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을 때마다 애써 일해서 번 돈에 자신이 손도 대기 전, 먼저 나라가 꼬박꼬박 세금을 떼어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돈으로 나라가 경찰도 꾸리고 군대도 갖춰서 나라 안팎에서 당할 위험을 막아 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더구나 공권력이라는 게 어찌나 치밀하고 강력한지 민간인들 비밀스런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불법사찰 쯤 가볍게 이뤄지는 나라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믿음을 경찰은 잔혹하게 짓밟았다. 피해자는 세 번 살해당했다. 먼저 신고 전화를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비명소리 듣고도 부부싸움 어쩌고 하며 죽도록 내버려둔 경찰로부터, 그 다음엔 욕보이려다 죽인 다음 시신조차 엉망으로 만든 납치범으로부터, 그리고 다시 그 처참한 주검을 보고도 거짓 발표로 고인을 욕보인 경찰로부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비슷한 사건이 줄줄이 벌어지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그 사건을 되짚어본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은 이미 그 실마리를 찾아냈다. 1986년 경기도 화성, 농촌 지역에 공장 지대가 들어선 외진 지역에서 1986부터 1991년까지 6년 동안 경기도 화성군 반경 겨우 2km 안쪽에서 무려 10차례의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71세 노인에서부터 13세 여중생까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한국사회 최초의 이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경찰이 없어서도 아닌데. 오히려 그 시절, 민간인들에게 으름장 놓는 경찰력이 막강하기로는 지금 시대와 맞먹을 정도였는데.

 

그런데도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어 3천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되던 2003년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영화 홍보 문구는 이렇다. ‘1986년 시골마을, 두 형사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아직도 ‘살인의 추억’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부터 20년 넘게 지난 2012년의 경찰은 정보통신 강국답게 정보력은 더 막강해졌는데, 더구나 피해자로부터 상황과 위치를 알려주는 신고전화까지 직접 받았는데, 살려야한다는 의욕도 없고 심지어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없이 뻔뻔하기 때문이다. 녹취록이며 신고 당시 정황이 드러날수록 기가 막힌 점이 한둘이 아니다.

 

피해자가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전의 집’이라고 정확하게 신고한 장소가 ‘112 범죄신고접수 처리표’에는 어쩌자고 ‘먹골놀이터 가기 전’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며, 일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엉뚱한 질문만 던지더니 살려달라는 비명이 처절하게 지속되던 상황실 안에서 스물 가까이가 그 소리를 같이 듣고서도 112 처리표에다가 ‘현재 스카치테이프 붙이는 소리가 남’이라고 태연하게 기록만 남기는 경찰은 자동응답기만도 못하고, 사이코패스보다 잔혹하다. 그 시간이 무려 7분 36초나 되었는데. 그러더니 경찰청 발표랍시고 한다는 말이 ‘엽기 사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한 수사라고 생각했다, 이미 잡았기 때문에 녹취록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라니! 범인을 잡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던가?

 

<살인의 추억>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경찰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도 제 구실 못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유지를 위해 공권력을 남용하는 시대 탓이라는 것을. 공인이든 민간인이든 현 권력집단의 눈 밖에 나는 사람이면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 그 사람의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깨알같이 분 단위로 보고서 작성하는 이들이 공권력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처음이 아닌데 되풀이 될수록 오히려 더 지독해지고 뻔뻔해지는 이런 권력집단이야말로 이 사건의 가장 큰 배후다. 이미 범인은 잡혔지만 국민의 생명 귀한 줄 모르고, 거짓 발표가 죄가 되는 줄 모르고, 불법을 저질러도 위법한 줄 모르는 경찰이 여전히 권력의 시중을 드는 이런 시대, 그래서 살인이 추억이 되지 못하고 바로 곁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이런 시대를 정말 ‘미치도록’ 바로잡고 싶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바꿀 수 있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입력 : 2012-04-09

 

-『미디어오늘』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