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표적이 된 하루를 가만히 벗어 든다 숭 숭 뚫린 구멍 그 낭자한 울음으로 내 또한 살의(殺意)로 당긴 시위 경구인 양 새겨 있다 - ‘추창호’ 시조 시인의 시조 -『시조시학』가을호에 실린 시조 -『2015 좋은 시조』(김영재/김일연/정용국 엮음, ‘책 만드는 집’ 펴냄, 서기 2015년)에서 시조 2018.03.26
분수 흰모시 적삼에도 응결된 푸른 삶이 천 갈래 만 갈래 일시에 솟구치며 찬란한 그리움 되고 뼈아픈 기억 되다 더 기다릴 수 없는 목숨의 햇무리들로 빛의 돌파구를 향해 햇살로 부서지며 일제히 힘차게 꽂힌 함성, 함성, 큰 함성 - ‘진순분’ 시조 시인의 시조 -『스토리문학』봄호 -『2015 .. 시조 2018.03.26
꽃 지는 봄날 슬픔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뜰에 지는 꽃잎 하나 무심(無心)히 바라보면 바람에 흔들리면서 까맣게 타고 있다 아프지 않은 상처 어디에 있겠는가 꽃 지고 난 세상 가볍지 않은 울림 잎 피고 꽃 지는 봄날 온몸에 새겨진다 - ‘조영일’ 시조 시인의 시조 -『시조시학』가을호에 실.. 시조 2018.03.26
중년 단봉낙타 걸음으로 산(山) 하나를 이고 간다. 가슴에 뜨는 별들 이미 빛이 바랬는데 메마른 꿈의 한쪽을 울먹울먹 씹어본다 자존의 두 무릎을 꿇을 만큼 꿇었건만 드센 격랑 속을 용케도 헤쳐 왔다 자꾸만 처지는 어깨 가까스로 추스르며 앞을 향해 갈 뿐 돌아갈 길은 없는 열사(熱砂)의 .. 시조 2018.03.26
유품 유품은 더 이상 죽은 자의 것이 아니다 길바닥에 버려진 흙 묻은 개의 주검처럼 한 켤레 낡은 구두로 생애를 정의한다 떠도는 말씀은 여우비에 씻겨 가리라 아무도 마지막 종을 울리지 않았지만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 싸늘히 잊혀진다 하지만 깊은 밤 촉 낮은 불을 밝히고 가슴으로 써 내.. 시조 2018.03.26
덤덤함에 대하여 그대를 마주하여 망원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대를 마주하여 현미경으로 보지 않는다 오래된 안경을 끼고 덤덤하게 볼 뿐이다 - ‘손증호’ 시조 시인의 시조 -『시조시학』봄호에 실린 시조 -『2015 좋은 시조』(김영재/김일연/정용국 엮음, ‘책 만드는 집’ 펴냄, 서기 2015년)에서 시조 2018.03.23
유령그물 * 유령그물 : 고깃배(어선[漁船])에서 버리거나 잃어버린 고기그물(어망[魚網]). 그물코에 끼인 채 발버둥 치는 물고기 비명 소리 쫓아가 뛰어드는 물고기 떼 겹겹의 유령그물이 비명으로 뒤엉킨다 게덫과 자망(刺網. 걸그물 - 옮긴이)에 걸려 붉게 우짖는 바닷새 손을 쓸 새도 없이 쓰레기.. 시조 2018.03.23
지천명 *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명(天命)을 아는(知) 나이’를 일컫는 말.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쉰 살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다치고 넘어지는 건 가파른 능선이 아닌 하찮은 돌부리며 덤불이란 사실을 불현 듯 거울 앞에서 무릎 치며 알았을 때 - ‘김종렬’ 시조 시인의 시조 -『시조 21』봄 .. 시조 2018.03.16
낙타 겨운 삶 등에 지고 모래밭을 타박이며 얼마나 느린 발길로 너는 걸어왔을까 시간은 모래바람 속, 온 길이 다 묻힌다 너를 통해 흘러왔을 나의 강을 바라보며 뜨거운 고도 향해 휘파람을 불어가며 혹처럼 굽은 생애가 신기루로 흐른다 그 오랜 어둠을 깨며 멀어지는 밤 같은 한 생애 푸른 .. 시조 2018.03.16
사각지대 숨어서 날 수 있을까 강파른 벼루에서 부러진 날갯죽지 곤두박인 삶을 딛고 고시원 비상구 계단 흐린 불빛에 이끌려 우거진 빌딩 숲 속 한 평 섬에 갇혀 가도 가도 물거품 헛손질만 거듭하는 환승을 꿈꾸는 통로 새 한 마리 깃을 턴다 - ‘김미정’ 시조 시인의 시조 -『유심』5월호에 실.. 시조 201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