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문학 5

연봉 1억의 사교육 전문가가 인문학 전도사로 변신한 사연

인문고전 독서교육 봉사활동은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들도 변화시켰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해보자. 그는 1년에 1억 이상 벌던 사교육 전문가였다. 어느 날 그는 TV에서 한 작가의 인문학 특강을 접하고는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은 바람으로 폴레폴레에 가입했다. 그리고 카페의 프로젝트 중(가운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하나인 ‘1년 365권 독서 프로젝트’에 도전해 성공했다. 얼마 뒤 그는 나와 만났다. “이제 독서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세 가지를 말해주었다. “첫째, 독서모임을 만들 것. 둘째, 인문고전 독서교육 봉사를 시작할 것. 셋째, 세계 최빈국 마을에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 그는 첫째와 셋째는 어떻게든 해볼 수..

새로운 희망 2024.12.07

쪽방촌에서 벌어진 교육 혁명

쪽방촌 아이들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자원봉사자 중엔(가운데는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현직 교사도 몇 명 있었는데, 아이들을 몇 번 가르쳐보고는 “학습태도가 나쁘면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는데, 학습태도 자체가 없다.”/“공부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조차 모른다.”며 하소연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또는 아빠가 서너 번씩 바뀐 경험, 길거리에서 노숙하거나 구걸한 경험 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에서 알코올 중독자와 노숙인, 범죄자가 가장 많은 동네에 살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폴레폴레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눠줍시다.’라고(하고 – 옮긴이) 문자(순수한/새로운 배달말로는 ‘..

새로운 희망 2024.12.07

인문고전이 가져온 믿을 수 없는 기적들

( 『 생각하는 인문학 』 이라는 책의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본문에서 이야기한 서울의 한 쪽방촌 공부방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는, 전국(온 나라 – 옮긴이) 저소득층 공부방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던 아이들이 교사들이 놀랄 정도로 책에 깊이 빠져들었고, 『 논어 』 수업을 못 견뎌하면서 “제발 빨리 좀 끝내주세요.”라고(하고 – 옮긴이) 칭얼대던 아이들이 수업에 몰입하게 되었으며, 도리어 수업이 끝나는 걸 아쉬워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생님, 도대체 인(仁)이 뭐예요?”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지던 아이들이 점차 『 논어 』 의 각 구절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 사회적 의미 등을(같은 것을 – 옮긴이) 묻기 시작했다...

새로운 희망 2024.12.07

[개인의 역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특별한 인문학 공부법 11가지

(전략) 서양 천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범한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인물(사람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이다. 그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문학 공부를, 그것도 당시에 인문학 학교에 막 입학한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했던 라틴어 어형 변화부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그가 일흔 또는 여든 살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의미다(뜻이다 – 옮긴이). 그것도 초등학생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을 말이다. 그가 이처럼 뒤늦게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까닭은 – 옮긴이), 서자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직업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여섯 살부터 열 살까지 기술 예비학교에 다녔고, 열한 살부터 열세 살까지 상인예비학교에 다녔고, 열네 살 때부..

갈마(역사) 2024.11.17

『 오자병법(吳子兵法) 』 을 참고했으나, 그보다 더 뛰어난 병법을 구사한 이순신 장군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597년 7월 16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주하다가(달아나다가 – 옮긴이) 한 소나무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날 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수군은 전멸했다. 거북선을 비롯해 170여 척에 달하는 전함이 (왜군에게 – 옮긴이) 격파되었고 1만여 명의 병사가 전사했다. 이틀 뒤인 7월 18일, 백의종군중이던 이순신(시호 ‘충무공’ - 옮긴이)은 도원수(都元帥) 권율의 허락을 받고 송대립, 유황, 윤선각, 방응원, 현응진, 임영립, 이원룡, 이희남, 홍우공과 함께 패전지로 향했다. (근세조선의 – 옮긴이) 백성을 위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약 한 달 뒤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한 이순신에게 “조선..

갈마(역사)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