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8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1)

[ ]안의 글자 : 한국식 한자발음(예 : ‘야마구치 에이노스케(山口 銳之助[산구 예지조]’에서, “산구 예지조”가 한국식 한자발음임) ‘미우라 요시마사(三浦 芳聖[삼포 방성])’라는 인물이 있다.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04년에 태어나 1971년에 사망했다(그러니까,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서, 일곱 살이던 해에 대한제국의 멸망 소식을 전해 듣고, 요시히토[연호 ‘다이쇼’] 왜왕이 다스리던 서기 192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일 때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냉전이 시작된 지 스물네 해가 지난 뒤에 세상을 떠난 일본인인 셈이다 – 옮긴이). 그는 죽기 일 년 전인 1970년(서기 1970년대는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에게 “답게 들고 일어나라!”고 부추긴 때이기도 하다 ..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3)

▶ 메이지 왕은 조슈 번 조선인 부락 출신 기병대원을 바꿔치기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잘 읽으시도록! - 옮긴이) 그런데 경악할 만한 반전이 또 있다. 『 철저하게 일본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 의 저자 미우라 요시마사는 다나카 백작이 말하는 이 이야기가 완전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이 비사(祕史. 숨겨진[祕] 갈마[史] →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 : 옮긴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는 사람 가운데는 자신 말고 사이온지 긴모치밖에 없다는 다나카 미쓰아키의 말은 정확하다. 사이온지 긴모치는 고메이 천황의 실제 아들인 무쓰히토 친왕(睦仁 親王[목인 친왕])의 유년기를 지켜보았다. 당연히 조슈(오늘날의 왜국 야마구치 현. 혼슈 섬 서쪽 끝에 있다 – 옮긴이) 기병대 출신의 ‘大室寅之祐(..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4)

▶ 이와쿠라 도모미, 고메이 왕에 이어 무쓰히토 왕자도 독살하다? 그럼 진짜 무쓰히토 왕자(그러니까, 고메이 왜왕의 친아들이자, 원래 다음 왜왕이 되었어야 했던 사람 – 옮긴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이와쿠라 도모미”가 고용한 의사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와쿠라는 (왜국 – 옮긴이) 국내 행정 전반과 궁중(宮中. 대궐 안 – 옮긴이)의 서무(庶務. 특별한 명목[名目]이 없는 여러 가지 잡다한 사무 – 옮긴이)를 감독하는 직책인 보상(輔相)으로, 실질적인 수반이었으므로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런데 이와쿠라는 진짜 무쓰히토 왕자의 아버지인 고메이 왕도 독살했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작자다. 홋카이도 대학(흔히 ‘북해도[北海道]’로 불리는, ‘아이누 모시리’에 있는 왜국의 대학교..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5)

▶ 총리를 2명이나 배출한 조선인 부락, 다부세초 이제 이 미스터리(수수께끼 – 옮긴이)의 마지막, 하이라이트(highlight : 가장 흥미로운 부분 – 옮긴이) 부분을 파헤쳐볼 때가 되었다. 그것은 이 흑막(黑幕. ‘검은 장막’ → 드러나지 않은 음흉한 내막 : 옮긴이)의 시작 장소, 다부세초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여러 차례 다부세초가 조선계 부락이라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그러면 메이지 왕이 되었던 ‘오무로’도 조선인(근세조선 백성 – 옮긴이)의 후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일본 천황(일왕[日王]. 좀 더 정확한 명칭은 '왜왕[倭王]' - 옮긴이)들 거의가 백제의 직접 후손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덧붙이자면, 초기의 왜왕[倭王]들은 가야계/임나계고, 서기 4세..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6)

▶ 고이즈미 총리를 배출한 가고시마의 조선계 부락 다부세초 기이하게 가고시마에도 다부세라는 마을이 있다. 지금의 ‘미나미사쓰마’ 시(南薩摩 市[남살마 시]) 긴포초(金峰町[금봉정])다. 이 역시 조선인 부락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소천 순일랑. 서기 1942년 ~ ])’ 전 수상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小泉 純也[소천 순야. 서기 1904년 ~ 1969년])’가 이 마을 출신이다. 고이즈미 준야는 중의원과 방위청장관 등을 지냈다. 그런데 준야는 가난으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쿄로 상경해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 又次郞[소천 우차랑])’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고이즈미(小泉)’ 성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준야는 결혼하기 전에는 완전한 왜인[倭人]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7)

▶ 대를 이을 능력이 없는 다이쇼 왕, 아버지를 닮지 않은 네 명의 왕자 메이지 왕이 바꿔치기 된 것이라는 얘기는 거의 확실한 사실인 듯한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소문이 따라다닌다. 즉 매독 감염설이다. 매독은 에도시대 개항과 함께(그렇다면, 서기 1868년 이후? - 옮긴이) 유럽 상인에게서 일본에 들어왔다. 메이지 왕(그러니까, 오무라 도라키치 – 옮긴이)이 매독에 걸렸다고 하는 이유(까닭 – 옮긴이)는, 그에게 5명의 친왕(왕자)과 10명의 공주가 있었지만, 거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첫째아들과 첫째딸은 둘 다 사산(死産. 죽은[死] 뒤에 어머니의 배 밖으로 나옴[産] - 옮긴이)이었고, 둘째아들과 둘째딸 또한 요절했다. (오무라의 왕비가 아니라 – 옮긴이) 궁녀 ‘야나기하라 아이코(柳原..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8)

▶ 쇼와 왕 히로히토 생모도 조선계? 데이메이 왕비 역시 명망가의 하나인 ‘구조’ 가문의 딸로 돼 있지만, 사실은 조선계인 ‘사다아키(朱貞明[주정명])’라고 하는 설이 있다. 메이지 정부는 도쿠가와 바쿠후(도쿠가와 막부, 그러니까 에도 막부 – 옮긴이)로부터 접수한 왕궁 ‘지요다 성’을 고급 유곽으로 삼았다. 유신(이 글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줄인 말 – 옮긴이)으로 인해 가계(家計. ‘집안[家]의 경영상태[計]’ → 살림살이/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방도나 형편/생계 : 옮긴이)가 기울어진 사무라이 자식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딸들을 뽑아 데려다가 메이지 왕 오무로(항간에는 무쓰히토로 알려졌던 ‘오무라 도라키치’ – 옮긴이)와 이로 히로부미 등 ‘친우(親友. 친한 벗/친구 – 옮긴이)’들이 놀았던 놀이..

갈마(역사) 2023.11.03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9) : 끝

▶ 일본 천황이 된 조선인 소년에 대한 추억 ‘마스다 카스미(益田 勝實[익전 승실. 서기 1923년 ~ 2010년])’는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출신 국문학자로 ‘호세이 대학(法政大學[법정대학])’ 문학부 교수를 지냈다. 그는 조슈 번 가로​(家老. 왜국에서는 ‘다이묘의 중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다이묘 집안의 무사를 통솔하며 다이묘의 집안일을 총괄하는 직책이었다. 중세 때인 가마쿠라 막부 때에 나타난 직책이다 – 옮긴이)였던 ‘마스다’ 가문의 후손이었기에, 메이지 유신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한 예로, 그의 집안에는 고메이 왕이 사용하던 도자기 그릇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서기 1930년대 초? - 옮긴이) 한번 그가 이를 깨끗이 닦아버려 부모님에게서 호된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고메이 ..

갈마(역사)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