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임금이 국정(國政. 나라[國]를 다스리는[政] 일 - 옮긴이)에는 관심이 없고 간신들에게만 둘러싸여 매일(每日. 날마다 - 옮긴이)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었다.
하루는 그 임금이 간신들과 어울려 들에 사냥을 나갔다가 오래된 성터를 발견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성터에는 여기저기 깨어진 사금파리(도자기의 깨진 조각 - 옮긴이)만이 그 나라가 영화와 부귀를 누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임금은 곧 마을 사람들을 불러 물었다.
“이런 들판에 성터가 있으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마을 사람들 중 지혜로운(슬기로운 - 옮긴이) 한 노인이 대답했다.
“이 성터는 옛날에 여기 세워졌던 어떤 나라의 것입니다.”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성터만 남았는가?”
노인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전해 듣기로 그 나라 사람들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대답에 의아하다는 듯이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 것은 훌륭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때문에 나라가 망해 이렇듯 폐허가 되었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노인은 임금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선을 좋아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악을 미워했지
만 악을 뿌리뽑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결국 이렇듯 폐허가 된 것입니다.”
노인의 말을 들은 임금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곧 대궐로 돌아가 간신들을 모두 쫓아내고 국정을 올바르게 돌보는데 남은 생을 바쳤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에서 온 것이면 스스로 숲 속의 꽃과 같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공을 도모해서 온 것이라면 화분의 꽃과 같이 이리저리 옮겨지는 흥망이 뒤따른다. 그것이 만약 권력에서 온 것이라면 꽃병 속의 꽃처럼 뿌리가 없으므로, 그 시들어가는 모습을 선 채로 기다려 지켜볼 수밖에 없다.”
-『채근담』
- 출처 :『채근담』(홍자성 지음, 박정수 엮음, 매월당 펴냄, 서기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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