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현자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나는 내가 단골로 이용하는 재단사를 가장 좋아하네.”
사람들은 깊은 의미가 담긴 오묘한 답을 기대하고 있었다가 막상 현자의 답을 듣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르신! 이 세상에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재단사를 가장 좋아하신다니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재단사입니까?”
현자가 대답했다.
“여보게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재단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네. 그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내 몸의 치수를 다시 재어 주거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네. 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고 나면 죽을 때까지 나를 그 틀 안에 가두어 둔 채 똑같은 시선으로만 본다네.”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제브데트 클르츠 엮음, 이난아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펴냄, 서기 2011년)에서
* 인용자(잉걸)의 말 :
역사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평가도 재단사의 치수 재기와 다를 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던 사람이 새로 발견된 사료나 증언이나 기록 - 또는 새로운 연구 - 때문에 결점과 한계가 드러나 ‘나쁜 놈’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나쁜 놈’이나 ‘바보’로 알려진 사람이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나 ‘우직하지만 올곧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니 사람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이나 역사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배우는 사람/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은 재단사가 되어 역사라는 현자가 자기 집 문을 두드릴 때마다 줄자를 들고 현자의 “치수”를 다시 재어야 한다. 재단사는 그 때 얻은 “치수”들(사료들)을 바탕으로 ‘이 사람의 몸은 원래 날씬했지만, 점점 살이 쪄서 지금은 뚱뚱하다. 앞으로는 이러저러하게 바뀔 것이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 ‘바뀐 과정’과 ‘바뀐 까닭’을 기억하며 그 사람의 상태를 평가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현자에게 “제가 당신의 치수를 여러 번 재었는데요, 지난번보다 살이 찌셨어요. 살 좀 빼셔야겠어요.”라고 말하거나 “옷감이 몸과 어울리지 않아요. 이대로 계속 옛 옷감으로 만든 옷만 고집하면 망신을 당하실 거예요. 몸에 맞는 다른 옷을 입으세요.”라고 충고하는 것(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 아니 그 역사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거나 바람직한 길을 가르쳐주는 일)이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역사상의 인물이 원래는 올곧았으나 나중에 타락했다면 그 타락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서 남겨야 하고, 원래는 나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도 빠짐없이 적어서 평가해야 한다. 역사는 생물이지 단단한 바위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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