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의 어원
(전략)
과학적으로 어원(語原. 말[語]의 뿌리 - 옮긴이)을 밝힌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우리가 순우리말로 잘못 알기 쉬운 성냥은 원래 한자어였다. 조선 시대에 쓰이던 말은 ‘석류황(石硫黃)’으로서 ‘돌처럼 단단한 유황’이란 뜻이었다. ‘석류황’이 여러 가지 음운 변천의 경로를 거쳐서 ‘성냥’으로 변한 것이다.
셕류황 → 셕뉴황 → 셩뉴황 → 셩뉴왕 → 셩냥 → 성냥
음운 변천의 과정이 복잡하긴 하지만, 우리말 음운 변천의 역사에 견주어 보면,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 바뀐 말임을 알 수 있다. 성냥과 같은 말은 옛 문헌에 어원이 그대로 적혀 있으므로, 어원을 밝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처럼 옛 문헌의 기록에 의해 어원을 밝힐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확실한 연구 방법이 된다.
그러나 우리말(배달민족의 말. 그러니까 한국어와 조선말 - 옮긴이)은 고대어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도 빈약해서 어원을 밝힐 수 있는 단어가 그렇게 많지 못하다(나는 이 때문에라도 고대 일본의 기록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화석이 된 고구려어/백제어/가야어가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캐내어 한국/조선 공화국 안에 남아 있는 자료와 견주면 배달민족의 말을 건질 수 있다. 물론 백제와 교류했던 중국 남부의 입말[구어]과, 극동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이 쓰던 말, 몽골 기록, 만주족 기록도 살펴보아야 하며, 그것들을 연구함으로써 한국어와 조선말의 계통이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 옮긴이).
어느 말의 어원을 기록에 의해서는 더 이상 추적해낼 수 없게 될 때, 국어학자들은 관계가 있는 다른 말들과 견주어 보거나, 옛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방언(方言. 지방[方]의 말[言]. 순우리말로는 ‘사투리’ - 옮긴이) 등을 찾아내 그 말의 뿌리를 캐낸다.
한 예로 배꼽이란 (낱말의 - 옮긴이) 어원을 살펴보자. 배꼽은 조선시대 초기의 문헌에서 ‘뱃복’(원문은 ㅂ + 아래아[ㆍ] + ㅣ에 복이 덧붙여진 형태다 - 옮긴이)으로 나타난다.
뱃복 → 뱃곱 → 배꼽
변천을 자세히 살펴보면 ‘복 → 곱’으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모음 ‘ㅗ’를 사이에 두고 ‘ㅂ’과 ‘ㄱ’의 위치가 바뀐 음운 전도가 일어나 있다. ‘뱃복’은 ‘뱃(배) + 시읏(사잇소리) + 복’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곧 ‘배의 복’이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러면 ‘복’이란 무슨 뜻이 있는 말일까. 옛 문헌을 뒤져봐도 ‘복’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벽에 부딪치지만, 국어학자들은 여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다른 문헌에는 배꼽을 ‘뱃보록’으로 표기한 것이 보인다. ‘뱃보록’은 ‘배의 보록’이란 뜻일 것이다. ‘보록’은 현대의어 ‘볼록하다’와 소리가 상당히 유사하다. ‘볼록하다.’는 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것을 뜻하는 단어다. 여기서 ‘보록’을 ‘볼록’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뱃보록’은 ‘배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 즉, 배꼽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뱃복’이 ‘뱃보록’과 같은 뜻의 말이므로, ‘복’과 ‘보록’은 같은 뜻이 된다. 그렇다면 배꼽의 옛말인 ‘뱃복’은 ‘배의 복’, 즉, ‘배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키는 옛말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아직도 성급한 것일 수 있다. 이 추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다른 근거들을 더 모아서 보강해야 비로소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생선 이름에 ‘복’이 있다. ‘복어’라고도 불리는 이 고기는 배의 한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고기다. 여기서 ‘복’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뜻하는 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북돋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를 ‘복돋우다.’라고 쓰는 지방도 있다. 이때의 ‘북(또는 복)’은 식물의 그루 둘레를 동그랗게 싸고 있는 볼록한 흙더미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복’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뜻하는 명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꼽과 같은 단어도 비교적 쉽게 어원을 찾아낼 수 있는 말에 속한다. 이 단어의 어원을 추정할 수 있는 원시적 형태가 문헌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말의 어원은 밝혀내기 힘들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대단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부득이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 말과 친족 관계에 있는 알타이 어족의 여러 말들, 곧 만주어, 퉁구스어, 몽고어(몽골어 - 옮긴이), 터키어 따위의 말과 견주어보아서 말의 뿌리를 찾게 된다(나는 일본의 옛 문헌을 뒤지고 일본어를 연구하는 것도 배달민족의 “말의 뿌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옮긴이).
아무튼 국어의 어원을 살펴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에 속하지만, 국어학자들은 자료의 빈곤과 싸우며 힘겨운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 강혜원/박영신/서계현,『교실 밖 국어여행』, 267 ~ 269쪽
* 출처 :『교실 밖 국어여행』(강혜원/박영신/서계현 지음, (주)사계절출판사 펴냄, 서기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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