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취재파일] 시각 장애인과 안내견을 둘러싼 편견들

개마두리 2016. 5. 13. 15:35


- 서울방송(SBS) 뉴스


- 입력 : 2016.05.13


최근 홍대의 한 식당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거부했다가 과태료 200만 원을 물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 "안내견 안 돼!" 출입 거부…쫓겨나는 장애인) 해당 식당 종업원은 특별히 안내견을 싫어해서 막은 게 아니라 출입거부에 관한 법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과 함께 돌아다녀보니 안내견 때문에 들어올 수 없다는 식당이 10곳 중에 절반은 됐습니다.


저 또한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시각장애인과 장애인보조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편견이 생겼습니다.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고, 가끔 마주치게 되는 시각장애인을 보며 머릿속에서 떠올린 이미지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깨어진 편견들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 시각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것?


저는 시각장애인하면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를 탁탁 치며 걸어가는 아저씨를 떠올렸습니다. 왠지 측은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장면 말입니다. 가끔 지하철에서 봤던 시각장애인이 제 경험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제보를 받고 시각장애인인 김정민 씨와 박정훈 씨를 만났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정민 씨는 세련된 선글라스를 끼고 귀에는 피어싱을 하고, 왼쪽 팔에 타투를 했습니다. 차림새도 패셔너블해서 제가 전에 생각하던 시각장애인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선글라스를 쓴 두 분이 처음 걸어올 때는 ‘맨 인 블랙’의 느낌이 나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분의 성격도 많이 달랐습니다. 정민 씨가 활발하고 적극적이라면 정훈 씨는 배려심이 많아 항상 감사인사를 연발했습니다.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왠지 착하고 조용할 것 같은 편견이 있었지만, 두 분은 제 생각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까칠’하기도 했습니다.


● 안내견은 돌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장애인보조견은 6~8개월 동안 훈련을 받으며 주인인 장애인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게 됩니다. 보조견으로 선택되는 개들은 매우 똑똑해서 상황 파악이 빠르고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취재하면서 본 안내견은 자기가 할 일을 잘 해냈지만, 다른 행동을 하고 싶은 강아지의 충동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정훈 씨가 화장실에 가는 동안 안내견에게 ‘앉아’를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주인인 정훈 씨가 있을 때 얌전히 앉아있던 안내견 양양이는 정훈 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딴 짓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손님이 귀엽다고 다가오자 반가워하면서 달려들고 핥으려 했습니다. 정훈 씨가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정훈 씨는 양양이가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 주인이 없으면 딴청을 피우다가도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조용히 앉아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식당에서 안내견때문에 실랑이가 있은 후에 쫓겨나면 양양이도 자신 때문에 그런 줄 알고 풀이 죽어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다른 안내견들도 사람이 부르거나 먹을 것을 주려고 하면 갑자기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시각장애인이 방향 감각을 잃거나 인도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 "시각장애인 돕는 안내견, 눈으로만 봐주세요") 훈련받은 안내견들도 동물인 이상 욕구를 참아내고 일을 하는 중이므로 안내견의 관심을 끌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 안내견은 리트리버 뿐?


안내견하면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리트리버 종이 생각납니다. 리트리버 종은 영리하고 충성심이 강해 안내견으로 선택됐습니다. 하지만 리트리버만 안내견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한국에는 3가지 종이 안내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삼성화재에서 훈련하는 리트리버가 가장 많고,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훈련시키는 골든 두들과 스탠더드 푸들도 있습니다. 골든 두들은 골든 리트리버와 스탠더드 푸들의 교배종입니다. 영리한 리트리버의 특성과 털빠짐이 적은 푸들의 장점을 합쳐 놓았다고 합니다.


기사에 나오는 흰색 안내견이 골든 두들이고, 검은색 안내견이 스탠더드 푸들입니다. 안내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김정민 씨는 외국에는 세퍼드나 도베르만 등 안내견 종류도 7~8종은 되는데 한국은 다양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습니다.


● 법에 나와 있으면 그대로 지켜진다?


1993년에 안내견이 들어왔지만 아직 거리에서 자주 보이지는 않습니다. 2007년에는 장애인복지법에 안내견에 대한 조항이 추가돼 출입을 막지 못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장애인복지법 40조 3항 : 누구든지 보조견 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 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안내견의 출입을 막는 곳이 많았습니다. 안내견을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는 일도 있었습니다. (▶ "벌금 낼 테니 내려라"…승차 거부 당한 안내견)


정훈 씨와 안내견 양양이와 함께 식당 10곳을 찾아갔습니다. 그 중에서 4곳이 완강하게 안내견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안내견에 대해 설명하고, 출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2곳에서는 식당 종업원이 개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지만,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안내견은 들어와도 되는 게 아니냐고 도와주면서 들어가게 됐습니다. 나머지 4곳의 식당 종업원들은 반갑게 맞으면서 안내견과 다른 손님들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법과 달리 현실에서 출입거부는 일상이었습니다. 정훈 씨는 이런 일이 항상 있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거절당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정훈 씨와 정민 씨는 식당에 갈 때나 거리를 돌아다닐 때 주변 사람들에게 안내견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안내견을 부르거나 만져서는 안 되고, 출입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안내견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되지 않아 시각장애인 스스로 알려야하는 상황입니다. 2013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서울시내에서 안내견 출입거부로 과태료를 받은 건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출입거부를 당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데 일일이 시각장애인이 신고를 하기도 어렵고, 신고를 하더라도 합의를 해서 끝내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포구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식당 점주들에게 안내견에 대한 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안보이게 될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을 본적이 많지 않아 저와는 별로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정민 씨와 정훈 씨를 만나보니 그들도 원래 시각장애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둘 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후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정민 씨와 정훈 씨 모두 눈이 보일 때 서울의 거리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릿속에 지도가 남아있는 지역에 가서 안내견과 걸어 다닌다고 했습니다. 안내견이 있어도 머릿속 지도가 없는 곳은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잘 다니지 않습니다.


정민 씨와 정훈 씨를 만나 인터뷰한 곳은 최근에 만들어진 서울 마포구의 연남공원이었습니다. 물론 둘은 머릿속에 연남공원 지도가 없었습니다. 함께 걸어갈 때 어떤 풍경이 펼쳐졌는지 설명해야 했습니다.


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 또한 언제든 사고로 한 순간에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거리를 볼 수 없게 되고, 안내견에 내 몸을 맡겨야 할 상황이 오게 된다면 어떨까요.


정민 씨, 정훈 씨 그리고 안내견과 이틀 동안 다니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고스란히 저의 몫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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