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 14

[법과 제도] 국회의원이 세종대왕에게 본받아야 할 점은?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입법’이다. 즉 국회는 ‘법을 만드는 기관’이다. 한 시민 단체가 국회의원의 직무 능력을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을 이행한 정도, 국회 출석률, 국민과의 소통 노력, 공직자로서의 청렴도 등 다양한 평가 지표가 있다. 그중 가장 비중 있는 평가 지표가 바로 ‘국회의원 임기 중 법률안 발의 건수’다. 법률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원의 주요 임무이자 능력인 까닭이다. ‘법’이 늘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미처 법이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하고, 예상치 못한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법률은 필요에 따라 개정되어야 하며, 아예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법률 제/개정은 국민의 삶에 법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를 ..

갈마(역사) 2025.05.17

[생활사]버터도 약에 쓰려면 없다

- 음식 한 그릇, 역사 한 스푼 ‘버터’는 서양에서 건너온 유제품입니다. 버터를 국산화한 것은 1968년 무렵의 일이죠. 그런데 고려(왕건이 세운 나라인 후기 고리[高麗]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시대에도 버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조선시대에 버터는 임금이 먹는 보약이었다는 사실! 『 조선왕조실록 』을 보면 세종(조선 제4대 왕, 재위 기간 1418 ~ 1450년)이 버터 생산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윤회’라는 신하가 “수유는 임금님 약으로도 쓰고, 때때로 늙어 병이 든 신하에게도 나눠 주는 것이니 생산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어요. 하지만 윤회는 임금으로부터 핀잔만 들었죠. 여기서 윤회가 말한 ‘수유’가 바로 버터입니다. 버..

갈마(역사) 2025.05.13

과학을 담은 문학, 과학으로 담은 문학

▶ 과학과 기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우리가 우려하는 상황을 ‘산성 눈’에 비유한 시 한 편을 먼저 소개한다. 산성 눈 내린다 … (중략) … 그러고 보면 땅이나 하늘자연은 결코 참을성이 있는 게 아니다산성 눈 한 뼘이나 쌓인다 폭설이다당분간은 두절이다우뚝한 굴뚝, 은색의 바퀴들에그렇다, 무서운 이 시대의 속도에 치여내 몸과 마음의 서까래몇 개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 (중략) … 펄펄 사람의 죄악이 내린다하늘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 이문재「 산성 눈 내리네 」 과학과 기술은 “무서운 이 시대의 속도”로 발전하여 세상에는 “우뚝한 굴뚝”이 세워지고 “은색의 바퀴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 이면에서 인간이 머무는 “자연”이라는 공간은 “두절”..

논평 2025.05.13

제하(諸夏) ‘한족’들의 배를 부르게 한 참파(Champa)의 벼

5대 10국 시대에, 제하(諸夏. 흔히 ‘중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다른 이름)의 남부에 – 그러니까 10국이 있던 땅에 – 오늘날의 비엣남(Vietnam) 중부에 있던 독립왕국인 ‘참파(Champa)’[한자로는 ‘점성(占城)’. 참(Cham)족의 나라였고, 오늘날의 비엣남과는 다른 나라였다]의 벼가 건너가 널리 퍼진다. 이 벼는 기존의 제하 볍씨보다 더 빨리 자랐을 뿐 아니라, ‘한족(漢族)’의 주식이었던 수수와 밀이 한 해에 한 번 거두어들일 수 있는 곡식이었던 데 비해 한 해에 두 번 혹은 세 번까지 쌀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제하 ‘한족(漢族)’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이 벼를 받아들인 10국과 그 나라들을 흡수한 북송의 인구는 전보다 더 많은 규모로 늘어났다. (참파에서 제하..

갈마(역사) 2025.05.12

유방(劉邦) 시절 전한(서한) 왕조가 훈나(‘흉노’) 제국과의 전쟁에서 진 까닭

기원전 200년, 한 고조 유방(劉邦)이 이끌던 전한(서한)의 군사 32만 명은 훈나(한자로는 ‘흉노’) 제국의 군사에게 크게 패했는데, 그 까닭은 훈나 제국은 “10만 명의 기병”을 동원한 반면, 전한(서한)은 군사 32만 명 가운데 기병이 “3000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전자는 10만 대가 넘는 전차(탱크)로 이루어진 부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자는 대부분 총 든 보병이고 전차는 3000대 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 패배 때문에 전한(서한)은 일흔 해 동안 훈나 제국의 신하 나라로 살아야 했고, “한나라 공주(가짜였지만 - 옮긴이 개마두리)”를 훈나의 황제인 ‘선우’에게 시집보내야 했으며, 해마다 “비단/술/음식 등”을 바쳐야 했다. 이런 관계는 유철(시호 ‘한 무제’)이 한나라..

갈마(역사)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