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역사의 역사를 찾아서

개마두리 2016. 6. 6. 21:59


최근(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서기 2015년 - 옮긴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직접 교과서를 발간해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말에 많은 시민 단체와 역사 단체가 반발하고 일어선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이 옳은가, 혹은 그른가. 이 판단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역사’라는 것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는 누가, 왜 기록하기 시작했고, 역사의 기능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통해 작금(昨今. 원래는 ‘어제[昨]와 오늘[今]’이라는 뜻이지만, 이 글에서는 ‘요즘’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의 우리 상황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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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간보다 시간이 중요한 영역이다.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고, 일단 (지금 일어난 일이 - 옮긴이) 과거에 편입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망각의 늪에 잠기기 때문이다. 역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망각이다.


머나먼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과 싸워왔다. 환경에 무작정 적응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바라는 - 옮긴이) 방향으로(쪽으로 - 옮긴이) 환경을 개조하며(고치고 다시 만들며 - 옮긴이) 살아왔다.


사람은 동물처럼 겨울을 견딜 외피(겉껍질/겉가죽 - 옮긴이)가 없었지만, 동물(짐승 - 옮긴이)의 털을 이용하는(써먹는 - 옮긴이) 방법을 알았다. 나무를 이용해(나무로 - 옮긴이) 바람을 막는 벽을 만들고, 비를 피할 지붕도 만들었다. 네발동물처럼 발이 민첩하지는(재빠르지는 - 옮긴이) 않았지만, 도구를 이용해(도구로/도구를 써서 - 옮긴이) 먹이를 채집했다(그러모았다 - 옮긴이).


그런데 이런 유용한(쓸 만한/쓸모 있는 - 옮긴이) 기술은 이를 독점한(혼자서 차지한 - 옮긴이) 족장이 죽으면 이내(곧 - 옮긴이) 사라졌다. 이런 현상을 보고 인간은 기록의 필요성(기술을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그릴 필요성 - 옮긴이)을 느꼈다. 사냥을 할 때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여름지이를 어떻게 해야 - 옮긴이) 생산성이 높은지(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는지 - 옮긴이) 기록으로 남기면 후손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혜의 공유(슬기를 나눠 갖는 일 - 옮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대(사실 ‘고대’도 아니다. ‘중세’나 ‘중세 말기’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 잉카(정식 국호 ‘타완틴수유’. ‘잉카’는 타완틴수유 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말이고, ‘해 신의 아들’/‘흰 것’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사람들은 ‘공인 역사가’를 두고 이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기억하도록 해서 그 사회에 필요한 정보를 그때그때 말하게끔 했다. 하지만 입으로 정보를 전하자, 사람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결승문자(끈을 묶어 기록하는 문자)다. 매듭을 이용해 후손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한 것이다.


에스파냐 북부(기원전 1만 5000년 ~ 1만 년)에 살던 사람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려 사냥법을 전수했다. 들소 등의 사냥 장면을 그려놓은 것. 하지만 그것 또한 비바람 등의 자연 현상에 쓸려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를 보완한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1300년 무렵(지금으로부터 3316년 전 - 옮긴이) 나왔다. 황허 강 중류에 살던 은나라(정식 국호 ‘상商’나라 - 옮긴이) 사람들이 개발한 갑골문자가 그것이다(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글자들을 찾아냈다. 갑골문자는 이 글자들을 참고하고, 일정한 원칙 아래 정리해서 만들어낸 글자라고 봐야 한다 - 옮긴이).


거북 등이나 동물 뼈(예를 들면 양의 뼈 - 옮긴이)에 그들은 무엇을 새겼을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기록한 것이 은나라 기록의 특징이다. 현재의 기후 상황과 별 등을 통해 점친 민족의 미래를 적어 후손에게 전한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역사는 언제나 지배자를 위한 학문이었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신학의 하녀’였다. 가톨릭(천주교 - 옮긴이) 교회가 사회 전체를 사상적으로 지배하는 가운데(‘사회의 사상을 지배하는 가운데’라고 써야 한다 - 옮긴이) 극소수 귀족과 성직자만이 역사를 읽고 쓸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직자나 군주의 눈에 거슬리는 역사를 쓸 경우, 역사가는 종교재판에 불려가 화형당하거나 망나니의 칼에 목이 달아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역사의 심판’은 실제로 있었을까. 심판의 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영국 등 승전국은 “평화에 대한 범죄를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의 책임자들을 전쟁 범죄자로 처단했다. 그들은 전쟁 추징금을 내야 했고, 국가는 그에 합당한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나치보다 훨씬 관대하고 부드러운 처분을 받았다. 731부대 대원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미국에 건너가서 미국정부를 위해 일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 그리고 도쿄 재판에서 서기 19세기 말부터 서기 1937년까지 벌어졌던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오로지 2차 대전 때 일어난 일만 따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연합군은 침략전쟁과 전쟁범죄의 ‘뿌리’를 캐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자기나라 국민들과 군인들이 당한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 옮긴이)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여전히 묘연하다. 식민지를 경험했고, 동족 간의 전쟁을 겪은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독재 정권을 오랫동안 경험했고, 아직도 친일과 반공 이념의 갈등을(더 정확히는 친일파 청산과 반공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 옮긴이) 해결하지 못했다.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다르다.


교육부는 교과서 국정 전환의 이유로 “남북 분단 등 특수한 상황”을 내세웠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월 9일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북한의 도발 위험이 계속되는데 국가관과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일이 교과서 국정화다.”라고 논평했다.


새누리당은 현행 8종의 역사 교과서 중 6종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정부 수립‘으로 표현한 반면, 북한은 ’국가 수립‘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이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격하하고 오히려 북한을 옹호하는 역사 서술이며(어디가? 난 교과서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노동당에 아무런 호감을 못 느끼겠던데? - 옮긴이), 이런 애매한 표현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바로잡아야 국민 갈등을 막고 국론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같은 분단 상황을 두고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 사람도 있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역사 해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 한국 사회도 좌우 논쟁으로 치환될 수 없는 여러 영역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학문의 자율성이다.”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독일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한다. 서독은 분단 시기에도 과거의 잘못을 숨기지 않았으며, 통일이 된 독일도 학문적 연구(‘학문 연구’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과 비판적 검토(‘비판과 검토’ - 옮긴이)를 거친 역사 해석을 전달하며 논쟁을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오늘날 한국 정부나 여당이나 뉴라이트[최근 뉴라이트는 이름을 ‘시대정신’으로 바꿨다]와는 - 옮긴이)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답이 묘연하다면 역사의 본질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선조들이 역사 기록을 우리에게 남겨주려 한 주된 이유는 ‘지혜의 전수’(‘슬기를 물려주기/넘겨주기’ - 옮긴이)에 있다.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기억해 미래에 그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역사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자유주의 역사가 토니 주트(Tony Judt)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역사 지식을 갖춘 시민은 과거를 악용해 현재의 실수를 가리려는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 김승권의 글


-『빅 이슈 코리아』지 제 120호(서기 2015년 11월 15일에 펴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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