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은둔마왕과 검의 공주』4권 - 탑 위라는 새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라푼첼 공주

개마두리 2016. 12. 26. 16:12


(비에이 지음, Lpip 그림, (주)디앤씨미디어[시드노벨], 서기 2016년, 7,000원) - 시드노벨의 경소설(輕小說)


‘이건 영락없는 (독일 책인『그림 동화』에 실린 독일 동화)「라푼첼」이야기의 재해석이네!’ →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한 첫 번째 생각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키이리 공주는 윈즈 왕궁으로 돌아가서 높은 탑 안에 있는 방에 머물렀고, 마왕은 마법을 써서 그 방으로 올라가 키이리를 몰래 만났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흔히「라푼젤」이라고 부르는 이야기의 원래 이름은「라푼[첼]」이다. Rapunzel을 독일어로 읽으면 - 독일 사람들은 Z를 ‘ㅈ’ 발음이 아니라 ‘ㅊ’발음을 적는 글자로 쓴다 - ‘라푼첼’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독일에서 영어권으로 전해지면서, Z를 ‘ㅈ’발음을 적는 글자로 쓰는 영어 사용자들이 ‘라푼첼’을 ‘라푼[젤]’로 읽었고, 그것이 다른 세계에 그대로 퍼져 ‘라푼첼’이 ‘라푼젤’로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로 ‘라푼첼’은 독일 말로 ‘상추’라는 뜻이다 - 김박사)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라푼첼」이야기를 재탕하는 건 아니다. 키이리는 마왕과 함께 제발로 윈즈의 왕궁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된 까닭은 키이리의 검술 사범(직접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사범은 겉멋이 잔뜩 들었고, 딱딱하고, 허풍이 심하며, 겁이 많다)이 마왕의 성으로 찾아와 키이리에게 왕궁으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고, 키이리가 하루 종일 탑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니고 왕궁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니까, 굳이 따지자면 이번 이야기는 ‘라푼첼이라는 쌀밥에 공주 이야기라는 고추장과 왕궁의 권력 다툼이라는 나물을 넣어서 비빈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작가님(비에이 님)에게 감사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열 달 하고도 열이틀 전,『은둔마왕과 검의 공주』1권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불만스러운 건 - 이 경소설이 마왕이 화자로 나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한계지만 - 공주의 사연이라든지, 공주의 심리상태가 적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앞으로 소설이 계속 나오면 이 문제도 해결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만을 (되도록이면 적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투덜거렸고, 그 불만은『은둔마왕과 검의 공주』4권을 읽음으로써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왕궁 안에서 인형처럼,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억지로 웃는 키이리의 모습을 그리셨고,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온갖 행사에 동원되어 왕과 대신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키이리를 보여 주셨고, 키이리의 무술 사범이 너무나 부끄럽고 유치한 검술을 키이리에게 강요하는 모습도 보여 주셨고, 자기 딸의 목숨보다 왕가의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윈즈의 국왕을 보여 주심으로써 키이리가 왜 왕궁을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 그리고 왜 ‘마왕’에게 반해 그와 함께 살고 싶어했는지 -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겉모습은 화려하고 밝고 빛나지만,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삶. 핏줄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만 절실하게 느꼈던 삶. 그것이 키이리가 왕궁에서 겪었던 삶이었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키이리는 마왕이 그를 잡아갈 때에도 울지 않았고 어른이 된 뒤에는 제 발로 마왕성을 찾아간 건 아닌지. 나는 그런 그(키이리)가 ‘새장에 갇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멀리로 날아가고 싶어.”하고 생각하는 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윈즈의 왕궁이 “새장”이라면, 마왕성은 키이리라는 “새”가 몸소 고르고 가지 사이에 둥지를 지은 ‘큰 나무’일까?) .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번 이야기를 ‘그냥 가볍게 넘어가는 이야기(작가님의 말씀)’로 여겨야겠지만, 그럴 수 없었던 까닭은 이 이야기가 ‘자유와 자신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갇혀 있는 공주’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은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키이리의 검술 사범인 슈바르츠가 “모든 사람에게는 태어난 순간 맡은 ‘역할’이라는 게 있다.”고 말하며 키이리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나는 그에게 “그렇지 않아. 모든 사람은 태어난 뒤에는 제 운명을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골라야 하고 자신이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지도 알아서 결정해야 해!”하고 큰 소리로 반박하고 싶었고,


‘내가 자신들보다 “우수하다.”가 아니라 자신들과 “다르다.”라는 걸 인지한 순간, 나를 향해 쏟아지던 공포와 경멸과 거절의 시선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마왕을 보며,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족속일까?’하는 의문을 품었으며,


윈즈 왕궁에 불이 났을 때, 마왕이 ‘불을 끄는 사람 따로 있고, 구경하는 사람 따로 있고 ….’하고 생각하며 “옷에 그을음이라도 묻을까, 불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저런, 저런’/‘어머, 어머’하는 별 도움 안 되는 추임새만 넣고 있었”던 “불이 난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귀족들”을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그래, 이게 현실이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윗대가리들은 그 일을 다 아랫사람들한테 떠넘기고 자기는 구경만 하지. 그건 소설이나 현실이나 다를 게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여러모로 씁쓸했다.


(이런 생각은 “정작 10대로 보이는 어린 시종마저도 제 몸만 한 대야에 물을 퍼 나르며 불을 끄려 애를 쓰고 있”다는 구절을 읽을 때 더 강해졌다. 이 “시종”이 나 몰라라 하는 “귀족들”보다는 더 훌륭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혜택을 누리는 건 윗사람만의 특권이고, 의무를 짊어지고 궂은일을 하는 건 아랫사람의 의무’인 것인가?)


나는 스페로(2권의 악당 부하)가 나와서 이브(아스테리아)와 이야기를 나누는(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페로가 이브에게 불평하고 투덜거리는) 대목을 읽을 때에도 쓴 입맛을 다셔야 했는데, (소설 내용에 따르면 그 대목에서는) 이브가 스페로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강요하자 스페로가 “이렇게 없이 사는 인간들”을 죽이면 꿈자리가 사납다고 불평하고, 이브는 그에게 “있이 사는 인간들(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있는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잖아? 티가 나는데.”하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그래도 가장 공평한 게 죽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란 말이야? 살 때 가난하게 사는 것도 충분히 화가 나는 일인데, 가난하거나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서, “티”가 안 나고 만만해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니, 이젠 죽음조차도 사람을 차별한다고 생각해야 해?’하고 생각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대목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냐고? 난 그럴 수 없었다. 이브의 말은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경소설(輕小說)을 읽으며 현실세계를 떠올릴 수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이 경소설을 읽지 않았으리라. 나는 내가 속이 쓰려도 좋고, 우울해도 좋으니 작가가 이런 식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은 이야기들을 소설 안에 계속 집어넣어 주기를 바란다.   

     
동화를 집어넣고 새롭게 풀이하고 그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은둔마왕과 검의 공주』라는 멋진 옷감을 만드신 비에이 작가님에게 경의를!


- 평점 : ★★★★ (100점 만점에 80점)     


* 덧붙이는 글 : 5권에서는 어떤 동화가 나올까? 5권이 나오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 덧붙이는 글 2 : 책 끄트머리에 실린 특별 단편「결국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도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잔잔하고, 부드럽고, 은은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인데, 본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나오면서도 본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게 이야기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단편의 작가는 '비에이' 님이 아니라 'OUT' 님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소설 본편을 쓴 작가가 아닌 다른 작가가 원작의 설정만 빌려서 본편과는 다른 이야기 - 그러면서도 본편과 이어지는 이야기 - 를 쓸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팬 소설[Fan Fiction]만 알고 있던 내게, 이 단편은 신천지를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