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말이 살아야 겨레 얼이 산다

개마두리 2017. 1. 1. 21:13


* 우리말 : ‘한국어’와 ‘조선말’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배달민족의 말(옮긴이)


* 겨레 얼 : ‘민족혼(民族魂)’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민족의 말.


- 이대로(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의 글


이제 며칠 있으면 570돌 한글날이다. 또다시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 말글살이를 생각해본다. 아직도 중국처럼 한자를 쓰는 조선시대나 일본 강점기 때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는 시대로 착각하고 우리 한글보다 한자를 더 섬기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날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광복 바로 뒤처럼 우리 말글은 모르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말글이나 아는 일본 식민지 세대가 주류여서 한자 병기라도 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이제 국민 모두 우리 말글을 쓰고 읽을 수 있어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다. 이제 신문도 대학 논문도 우리 말글로 쓰고 누구나 시를 쓰는 세상이다.


그러나 한글(정음 - 옮긴이)로만 글을 쓰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강점기 때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교육, 학술, 행정, 전문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 이 용어는 한글로 쓰면 우리가 읽을 수는 있어도 일본 한자말이라 알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광복 뒤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쓰자고 해서 초·중학교 때 책에 ‘꺾꽂이’, ‘꽃따기’, ‘가지치기’처럼 농업교육 용어도 우리말로 썼다. 그런데 광복 뒤 미 군정 때 한글로 만든 교과서를 1964년부터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자며 ‘삽목(揷木)’, ‘적화(摘花)’, ‘전지(剪枝)’란 한자말로 바꿔 쓰고 가르쳤다. 그러니 농업 시간이 한자 시간이 되었다. ‘말본’이란 말도 ‘문법(文法)’, ‘이름씨’란 말도 ‘명사(名詞)’라고 쓰라고 했다.


우리 국민 누구나 귀로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배달 말 - 옮긴이)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쉽고 국어독립으로 가는 길인데 거꾸로 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가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국어독립운동을 시작한 것이 50년이 흘렸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애써서 한글나라가 되었고 이제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국민 수준이 높아지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빨리 되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한류’란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신라 때부터 중국 한문을 섬기던 언어 사대주의가 미국말(더 정확히는 영어와 라틴 알파벳 - 옮긴이) 섬기기로 바뀌어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굴고 있다.


1945년 광복되었을 때만 해도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한문과 일본글(가나 - 옮긴이)만 아는 일본 식민지 세대가 주류여서 그들이 공무원과 선생으로서 이 사회를 이끌고 교육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학자요 정치인으로 나라를 이끌고 대를 이어서 한자말을 출세 수단으로 여기고 한자쓰기를 고집해서 지난 70년 동안 한글과 한자 전쟁을 치르느라고 엄청난 국력이 낭비되고 아까운 시간을 빼앗겼다. 그래서 국민이 정부에 우리 말글을 살리고 쓰자고 호소하고 시위까지 하는 판이었다.

 
말이 쉬워야 그 뜻이 잘 통하고, 말이 통해야 마음도 통해서 사랑도 하고 함께 손잡고 어울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 쉽고 잘 통한다. 1970년대 정부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할 때엔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함께 나라 살림을 일으켰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부가 “창조 경제”란 어려운 말을 내세우니 국민은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따로 놀고 있다. 정책 구호도 공문서도 쉬운 제 말글로 써야 알아보고 읽기가 쉬워서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이 되고 튼튼한 나라가 된다.


오늘날은 똑똑한 지배자 몇이 나라를 끌고 가는 군주시대가 아니고 온 국민이 함께 손잡고 나라를 일으키는 민주시대다. 쉬운 말 우리말 쓰기가 우리 살길이고 겨레가 하나 되는 지름길이다. 겨레말은 겨레 얼이다. 말이 살아야 겨레 얼이 살고 나라가 튼튼해진다. 언제까지 우리 것보다 남의 것을 더 우러러보며 살 것인가? 이제 얼 차리고 다시 나라를 일으키자.


-『한겨레』서기 2016년 10월 4일자의 지면인「왜냐면」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