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글

▷◁책 읽는 즐거움

개마두리 2017. 3. 27. 13:53

화양자(華陽子)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께서 종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화양자가 말했다.


“농부(여름지기 - 옮긴이)는 쟁기와 보습을 손에서 놓지 않고, 어부는 그물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장인은 칼과 톱을 놓지 않고, 장사꾼은 시장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몫 좋은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 자연의 도리지.”


제자가 말했다.


“무릇 농부와 어부, 장인, 장사꾼은 단지 하나의 일에만 종사하고 있어서 그 직업을 잃어버리면 먹고 살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도구를 놓지 않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재주와 덕을 온전히 겸비하고 여러 흐름을 집대성하셨으며, 관직이 높습니다. 또 책은 고기 잡는 데 쓰는 통발이나 제사 때 쓰는 추구(芻狗. 짚으로 엮은 인형 - 엮은이)처럼 쓰고 나서 버리는 물건과 같으니, 선생님께서는 (책을 - 옮긴이) 잊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잊어도 괜찮을 것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곧 지엽적인 것에 얽매인 것이 아닌지요?”


“그렇지 않아. 책은 나의 ‘도구’야. 나는 하루라도 이 도구를 놓아두고서는 즐거울 수가 없지. 지혜로운 자는 책을 통하여 더욱 현명해지고, 꾀 있는 자는 책을 통하여 더욱 심오해지며, 현명한 자는 책을 통하여 더욱 총명해지며, 이름이 있는 자는 책을 통해서 더욱 저명해지는 것이야. 임금님은 이 때문에 나를 무능하다고 여기지 않고 나에게 정사(政事. 정치상의 일/행정 사무 - 옮긴이)의 권한을 주신 것이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직분을 받들어 행하고, 옛 도를 행하며 요즘에 맞게 시행하는데, 책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제자가 말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연세가 저녁 해가 서산에 이르러 어둑해진 것과 같은데도 오히려 더욱 노력하시면서 고생인 줄도 모르고 계시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나에게 몇 해를 더 살게 해주어『주역』을 배울 수 있다면, 큰 잘못은 없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시지 않았든가? 책 속에 저절로 즐거운 곳이 있는 법이야. 이러한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고 살다 죽는 것이 바로 나의 뜻이라네.”


- 성현(成俔)의『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 실린 옛 사람의 글


'옛 사람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헛소문  (0) 2017.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