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글

헛소문

개마두리 2017. 5. 5. 00:03

(옮긴이의 말 : 이 글의 원제는 ‘헛된 명성’이나, 글이 헛소문을 다루는 전반부와, 개미와 까치를 의인화한 우언인 후반부로 나뉘어져 있고, 나는 전반부만 소개할 것이기 때문에 글 이름을 ‘헛소문’으로 바꾸었다. 부디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


(전략)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서울에 뱀 같은 이상한 벌레가 태어났다. 그 소문이 마을을 나가면 벌레에 발이 달리고, 성(城)을 나가면 발의 수가 늘어나며, 경기(京畿. 서울[京]과 그 주위 지방을 일컫는 말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를 벗어나면 날개가 돋아난다. 벌레는 온(100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 옮긴이) 리를 나가면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고, 즈믄(1000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 옮긴이)리 밖에선 우레(천둥[한자로는 ‘천동天動’]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 옮긴이)가 치게 한다고 바뀐다. (마침내 소문이 - 옮긴이) 수천 리에 이르면 (그 벌레는 - 옮긴이) 기괴하게도 천지간(天地間. 하늘[天]과 땅[地] 사이[間]. 그러니까 이 세상 - 옮긴이)의 한 신기한 짐승이 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서해(황해? - 옮긴이)에 뱁새(몸 크기가 참새보다도 작은 새 - 옮긴이)와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새가 태어났다. (그 새는 - 옮긴이) 말이 한 번 전하면 참새가 되고, 두 번 전하면 새매였다가, 세 번 전하면 꿩이 되고, 온 사람째 되면 큰 기러기가 되고, 즈믄 사람째에는 붕(鵬. 날개를 펼치면 그 너비가 수천 리나 된다는 상상 속의 새 - 옮긴이)이 된다. 천만 사람에 이르면 기괴하게도 천지간의 신비한 새로 바뀐다. 뱀이 신기한 짐승이 되고, 뱁새가 신비스런 새가 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지금(서기 18세기 초? - 옮긴이) 사람들이 신기한 짐승과 신비스런 새를 믿고, 그것을 찾으면서 뱀과 뱁새의 추함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후략)


- 이광정 선생의 책『망양록(亡羊錄)』에 나오는 글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옮긴이의 말 :


그러니까 세상에 떠도는 소문(특히 나쁜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소문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은 - 백분율로 나누자면 - 5%나 10%도 되지 않는다.


소문을 들었을 때, 그것이 부풀려진 것인지, 아니면 비틀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실을 깎을 수 있는 데까지 깎아서 만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라.


소문은 일종의 야사(野史)고, 그것에 ‘사실’이나 ‘현실’이나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마음이 들어 있을 수는 있지만, 만약 물증(고고학자나 인류학자가 찾아낸 유물/유적, 그리고 소문을 만들어낸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제 3자의 기록과 증언)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어디까지나 소문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소문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마음을 알아내는 자료로만 쓰고, 그것이 ‘정확한 사실’이나 ‘믿을 수 있는 진실’이라고 가르치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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