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1945년 마닐라 대학살

개마두리 2018. 2. 28. 02:13

* 옮긴이(잉걸)의 말 :


한국 시민들은 서기 1937년(중일전쟁이 시작된 해)에 일어난 난징(남경[南京]) 대학살은 잘 알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잘 모른다. 나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필리핀에서 일어난 왜군(倭軍)의 전쟁범죄를 모든 한국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이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따지고 화를 내는 족속은 ‘조센징’[분명히 말하겠거니와, 만약 왜인(倭人)과 친일파와 친일국가의 시민이 내 앞에서 이 말을 쓰면, 나는 “이유를 막론하고” 그자들을 뼈가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팰 것이다! - 잉걸]과 ‘시나진[한자로는 지나인支那人. 한족漢族을 깎아내리고 욕하는 말로 쓰인다. - 잉걸]’ 뿐이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은 우리한테 고마워하고 있단 말이야!”하고 우기는 왜국(倭國) 우익에게 반박할 수 있는 자료고, 나아가 최근에 필리핀 정부가 왜국 정부와 왜국 우익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왜군 성노예로 끌려가 강간당한 아시아 여성들을 기억하는 동상을 세운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들 가운데 하나다. 부디 이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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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시작)


1945년 2월(제 2차 세계대전은 서기 1945년 8월 15일에 끝났다 - 옮긴이), 필리핀에서 미군에 밀려 퇴각하던 일본군(왜군 - 옮긴이)은 미군과 교전하는 가운데 마닐라(오늘날에는 필리핀의 수도고,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과 미국 식민지 시절에도 필리핀의 중심지였다 - 옮긴이)를 쑥대밭이 되도록 약탈하면서 10만 명에 이르는 마닐라 시민을 강간하고 학살했다.


이 마닐라 전투에서 미군 1000여 명, 일본군 1만 6000여 명이 전사했다. 전후(戰後. ‘전쟁[戰]이 끝난 뒤[後]’.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펼쳐진 시대를 일컫는 말 - 옮긴이) 일본(왜국 - 옮긴이)은 이 학살극을 미군의 폭격 탓으로 돌려, 학살 사실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1942년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필리핀은 서기 19세기 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였으나, 곧 미군의 침략을 받고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서기 1930년대 후반에는 에이레와 마찬가지로 반半 독립국인 자치정부가 세워졌고, 그로부터 다섯 해 뒤 왜군이 필리핀에 쳐들어와 필리핀을 점령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왜군의 잔인함과 폭력과 약탈과 착취에 반발하여 유격대[遊擊隊. 비정규군/게릴라]를 만들어서 왜군과 싸웠고, 미국은 그 보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필리핀의 독립을 승인하고 물러났다. - 옮긴이)을 전후하여 필리핀인들은 미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한편, 독립적인(‘미군과는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로 고쳐야 한다 - 옮긴이) 항일군을 꾸려 일본군을 줄기차게 괴롭혔다.


1944년 10월, 레이테 해전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여 필리핀 유역 해상을 장악한 미군은 이듬해 1월에 마닐라가 있는 루손(한자로는 ‘여송呂宋’. 이는 ‘여송’을 북경어[보통화]로 읽으면 ‘루쑹’이 되기 때문이다. 루손은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섬이고, 한자 문화권에서는 필리핀을 일컫는 말로도 쓰였다 - 옮긴이) 섬에 상륙하고, 2월에 마닐라를 향해 진격했다.


이에 일본군은 마닐라를 포기하고 사령부를 ‘바기오’로 옮기는데, 일본군 일부 전력이 마닐라에 남아 미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당시 마닐라에는 70만여 명의 시민이 남아 있었는데, 일본군은 이들의 미군에 대한 협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다(‘왜군은 이들이 미군을 돕지 못하게 하려고 큰 학살을 저질렀다.’로 고쳐야 한다 - 옮긴이). 그 구체적인 증거는 도쿄 국제전범재판정에서 보고되었다(‘이 학살을 조사한 사람들은 학살의 증거를 도쿄 국제전범재판정에 알렸다.’로 고쳐야 한다 - 옮긴이).


(그러니까 왜군은 마닐라 시민 “70만여 명” 가운데 “10만 명”을 죽였다는 얘긴데, 마닐라 인구의 7분의 1을 죽인 것이고, 이를 백분율로 바꾸면 대략 마닐라 시민의 14.25%를 죽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늘날로 치면 서울 시민 1000만 명 가운데 142만 5000명을 죽인 셈이다 - 옮긴이)


― 김상태,『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 635쪽


-『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김상태 지음, ‘(주)책으로 보는 세상’ 펴냄, 서기 2014년)에서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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