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10년 만에 돌아온 ‘어사 박문수’ 가문 편지

개마두리 2018. 2. 28. 03:34

- 한국방송(KBS) 뉴스


- 날짜 : 2018.02.27


■10년 만에 돌아온 '박문수 가문' 간찰…후손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2008년 8월 충남 천안 고령 박씨 종중 재실에 보관 중이던 박문수 가문의 간찰(簡札. 간지[簡紙 : 편지지]에 쓴 편지 ‘찰札’에는 ‘종이’나 ‘편지’라는 뜻이 있다 - 옮긴이)이 사라졌다. 창살까지 자르고 들어온 범인은 편지 1,047점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다. 우리에게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조선 시대 문신 박문수에게 당시 가족(식구 - 옮긴이)들이 보낸 편지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경찰이 도난 문화재를 판매한 무허가 문화재 매매업자를 검거하면서 10년 만에 도난된 간찰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경찰의 브리핑 현장에 참석한 8대손 박용우 씨는 "떨리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까지 훔쳐간 사람을 탓하진 않았다. 오히려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손들의 잘못이 크다며 자책했다(나는 생각이 다르다. 도둑놈과 장물아비를 탓해야 하며,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 이건 박문수 어사님의 후손들이 저지른 “잘못”이 아니다 - 옮긴이).


■어떻게 찾았나…자택 창고에 간찰 숨겨온 범인 되팔았다 검거


무허가 문화재 매매업자 김 모 씨는 장물업자로부터 구매한 '박문수 가문'의 간찰을 자신의 집 창고에 보관하며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 왔다. 이후 다른 문화재 매매업자 A씨에게 사들인 간찰을 되판다.


A씨는 다시 이 간찰을 국사편찬위원회에 매도 신청했고, 이 과정에서 도난 문화재인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문화재보호법상 도난 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 김 씨가 이를 착각하고 자택에 숨겨 둔 간찰을 되파는 과정에서 도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김 씨가 간찰을 훔친 범인일 가능성은 없는 걸까?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자신도 다른 업자로부터 간찰을 샀다고 주장했지만, 이 과정에서 지인들에게 위증을 부탁하는 등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증은 생겼지만 구체적인 절도 혐의 입증은 어려웠다. 경찰은 문화재인 사실을 알고도 간찰을 숨긴 김 씨에게 은닉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대기근에 고통받는 백성들의 참상부터 종양 앓던 박문수에 대한 걱정까지...


이번에 회수한 간찰 가운데는 박문수에게 가족들이 보낸 서신 71통이 있다. 박문수의 외삼촌은 암행어사로 전국을 돌고 있던 박문수에게 기근을 겪는 백성들의 고통을 전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러면서 가족이 느끼는 걱정도 함께 전한다.


박문수는 이미 지역 시찰을 돌고 왕에게 보고문까지 올린 상황. 하지만 직보(直報. 바로[直] 알림[報].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아니하고 상부에 직접 보고함. 또는 그런 보고. - 옮긴이)를 했다는 이유로 조정 대신들의 반발이 컸다. 박문수의 외삼촌은 이에 대한 우려까지 담아 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종양을 앓고 있던 박문수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는 편지도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업무 수행에 전념하는 모습을 본 또 다른 외삼촌은 건강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설화로 전해지던 '어사 박문수' 이야기 사실적 접근 기회


후손 박용우 씨는 "직손인 저도 할아버지(박문수 어사님 - 옮긴이)를 영웅적으로 묘사된 인물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박문수에 대한 역사 자료가 부족해 심층 조명을 하지 못했던 게 현실이었다.


브리핑(Briefing. 영어로 ‘정보나 지시를 간단하게 전달하는 모임’이라는 뜻. 여기서는 ‘간추린 설명’, ‘요약 보고’, ‘설명회’로 옮길 수 있다 - 옮긴이)에 참석한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은 박문수 서찰 원본이 한문학 전공자도 해독이 어려운 초서(草書. 한자를 붓으로 흘려서 쓴 글. 모양이 흐트러지고, 정식 한문과는 모양이 달라서, 한문 가운데 가장 읽기 어렵다 - 옮긴이)로 적혀 있어 분석에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노 소장은 "소설 속 영웅화한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박문수를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도난당한 간찰을 돌려받은 박문수의 후손인 고령 박씨 문중은 천안 박물관에 간찰을 위탁 기증할 계획이다.


- 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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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zum.com/#!/v=2&tab=home&p=2&cm=newsbox&news=1092018022743562567


※옮긴이(잉걸)의 말 :


부디 야사나 전설이 아닌, 정사에서 박문수 어사님의 참모습이 드러나기를 빈다.


이 간찰들은『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원일기』나, 『의궤』나,『일성록』이 다루지 않은 갈마[역사]의 진실을 담고 있는 사료고, 엄연한 정사[正史]다. 이런 사료 하나하나를 다 모아서 야사나 전설과 견주어야 갈마의 참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이 간찰들이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덧붙이자면, 내가 이 뉴스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설령 후손이라도 조상의 참모습 - 또는 조상이 한 일이나 한 말이나 조상의 마음이나 생각 -을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박문수 어사님의 “8대” “후손”인 “박용우” 선생님이 “직손(직계 자손 - 옮긴이)”이면서도 박문수 어사님을 야사와 전설이 그린 것처럼 “영웅적으로 묘사된 인물로만 알았다.”고 털어놓지 않았던가?

 
박문수 어사님은 서기 1756년에 돌아가셨으므로, 지금으로부터 26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런 분의 “후손”이 박 어사님을 잘 몰랐다고 털어놓으셨다면, 대한제국 초기 한국 글쟁이들이 고조선이 자신들이 살았던 때보다       4230년 전에 오늘날의 요서/남[南]몽골 지방에서 세워진 사실을 몰랐던 것과, 청주 한씨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기자(箕子)족이 지금으로부터 3043년 전에는 하북성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과, 부여 서씨들이 지금으로부터 2027년 전에 비류와 온조 형제가 백성들과 함께 배를 타고 요서 지방에서 아산만으로 달아난 사실을 몰랐던 것과,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들이 지금으로부터 1791년 전에 일어난 (전기) 가야의 멸망을 잘 모르는 것과, 경주 김씨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지금으로부터 1674년 전에는 김(金)이 아니라 ‘모’라는 성씨를 썼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차라리 당연하다고 하겠다.

                
요컨대 어떤 사람이나 집안이나 무리(집단)나 민족이나 인종이나 나라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꼭 조상(내지는 선배)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고, 기록을 잘 보관하고 있거나, 증언을 확보했거나, 사실을 야사나 민담이나 전설로라도 기억하거나, 조상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아니면 조상을 잘못 알 수도 있다!).


오히려 진실은 후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억할 수도 있고(한 예로, 기자족이 상[商] 왕조가 망한 뒤, 북중국 내륙에서 동쪽으로 달아나 오늘날의 하북성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은『청주 한씨 족보』가 아니라, 청나라 때, 청나라 이전부터 있던 수많은 ‘중국’ 기록들을 한데 모아 펴낸 책인『고금도서집성』에 나오고, 비류와 온조 형제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은『삼국사기』「백제본기」나『부여 서씨 족보』가 아니라, ‘중국’ 역사서인『수서』「백제전」에 나오며, 서기 227년에 전기[前期] 가야가 백제와 야마도 연합군에게 망했다는 사실은『가락국기』나『김해 김씨 족보』가 아니라『일본서기』에 나오고, 서기 340년대 중반에 “신라 왕”의 성이 “모”씨였다는 사실은『삼국사기』「신라본기」가 아니라 ‘중국’ 기록인『통전』에 나온다),


따라서 후손들이 할 일은 자신의 기억이나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자신이 가진 기록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다른 집안/다른 무리/다른 단체/다른 민족/다른 지역/다른 나라/다른 인종/다른 계급/다른 성별(性別)/다른 세대/다른 회사/다른 언론이 남긴 기록과 증언과 연구결과를 샅샅이 뒤지고, 고고학이건 인류학이건 기상학이건 동물학이건 식물학이건 심리학이건 가리지 않고 온갖 학문을 참고하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도 살아남은 사실과 가설과 판단이어야만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설령 그것이 ‘남의 기록’이나 ‘남의 기억’이 옳다는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이라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때 - 나아가 당신의 어버이나 조상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고 싶을 때 - , 당신의 기억에만 기대거나, 당신 집안의 기록/증언에만 기댄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당신은 학교의 생활기록부나, 학창 시절 동무들의 증언이나, 교사의 평가나, 동네 사람들의 증언이나, 당신과 만난 사람들의 증언이나, 당신 집안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증언이나,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 3자의 증언을 끌어오고, 그것들과 당신의 기억/기록/증언을 짜깁기해서 내놓을 것 아닌가?


만약 사람들이 그 두 가지(당신의 기록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견준다면, 그럼으로써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참인지를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의심을 버리고 당신의 갈마와 당신 집안의 갈마를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당신 자신의 모습이나 사연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당신의 말과 행동도 있다. 그 둘을 한데 엮어서 알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것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


이름난 사람이나, 무리/계급/성별/인종/민족/지역/나라의 갈마도 이와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뉴스가 지닌 가장 중요한 속뜻이라고 생각한다(적어도 내 풀이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