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그림(동영상)

사람들의 말이 달라진 까닭

개마두리 2021. 9. 12. 12:50

- 움직그림 이름 : <바벨탑이 와르르 무너진 이유ㅣ김관선, 김윤희, 김길 목사ㅣCBS TV 올포원 117강>
 
-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__7KTOSbMHo



▶ 옮긴이(잉걸)의 말 :

내가 ‘잘 안다.’고 여겼던 바벨탑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강의였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 뜻대로 만든 도시와 문명은 그 자체가 죄악(!)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그리스도교는 도시나 자본주의나 문명이나 기계를 사랑하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종교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스도교 = 문명’이라는 공식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는 ‘문명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닌가?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로 이해하는 것일까?

(짐작 가는 것이 있기는 하다. 서기 4세기 이후, 지중해 세계의 그리스도교 – 그러니까 동방정교 - 는 로마제국과 타협하고 문명을 받아들였으며, 서유럽과 거북섬[‘아메리카’]과 오세아니아로 퍼진 서양 백인들의 교회도 ‘야만인을 문명인으로 만든다.’는 구실을 내걸고 동방정교회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런 세월이 길었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교 = 기계화/문명화/서구화/도시화’라는 등식을 만들어낸 건 아닌지. 만약 이 짐작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개신교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믿는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공식을 철저히 재점검하고, 의심하고, 따지고, 버리고,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 문명을 무작정 따라가고 자본주의와 도시화를 지지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일까?「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그 후손들의 길을 따라가는 썩고 타락한 모임이 아니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윤희 목사가 든 비유(내지는 사례)가 불쾌했다. 왜 하필이면 시온주의자들과 맞서 싸운 현대(서기 1940~60년대)의 아랍인들을 비난하는 사례를 든 건가? 우리 개신교도들이 시온주의자인가? (주후[서기] 1세기 이후의) 유대교 신자들인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서기전 500년 이후부터 필리스틴(영어 이름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아랍인들이나 다른 민족들은「여호수아 서」에 나오는 여리고 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시대나 그 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뒤 필리스틴에 들어온 아랍인들은 사울 왕과 싸웠던 블레셋 인이나 다윗 왕과 맞서 싸웠던 여부스 족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한국인 개신교 성도들이 필리스틴 아랍인들이나 그들의 편을 든 다른 아랍인들을 비난해야 하는가? “얼치기 개신교 신도”이자, “나일론(?) 개신교 신도”인 난 이런 김 목사의 비유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김 목사에게 묻고 싶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의 아랍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에게 선교/전도는 하겠다고요? 그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듣고도 복음을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하고 묻고 싶다는 이야기다. 구세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신 분께서, 아랍인을 증오하라고 가르치셨던가?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신약성서』정경(正經)에 그분이 이스마엘의 자손들을 헐뜯거나 비난하신 성구(聖句)는 안 나오며, 전승(傳承)/야사에는 그분의 처형을 지켜보고 그분을 존경하게 된 로마군 백부장(百夫長)이 “아랍인 남성”으로 나온다(야사에 따르면, 그는 구세주께서 되살아나신 지 거의 두 달이 흐른 뒤에, 사도들과 성도들을 찾아와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고, 야고보 사도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베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교회의 정사(正史)에도 교회는 서기 4~5세기에 아랍인 신자들을 받아들였으며, 아라비아 북부와 오늘날의 아랍에미리트와 예멘에 아랍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동체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때문에라도 아랍인을 비난하며 가인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 김 목사의 설교는 적절하지 않다.

나라면 그냥 “지도를 펼쳐보면,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 서쪽은 바다로 막혔기 때문에, 가인은 동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는 데에서 그쳤으리라.

사람은 함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나는 십자군의 침략에 시달리고, 서기 19세기부터는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고, 서기 1920년대부터는 시온주의자/이슈케나지들의 식민/침입/침략/강탈/학살/탄압/억압/차별에 시달린 필리스틴과 레바논의 아랍인들을 외면/모욕할 수 없고, 그러니 그들의 분노를 자극할 비유는 꺼낼 수 없다. 나에게는 그것이 ‘넘지 말아야 할 선들’ 가운데 하나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아, 한 가지만 더, 한국인 개신교 성도들에게 하는 설교에 왜 이렇게 영어 낱말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100% 순혈 한국 시민이자, ‘숨은 개신교 신자’인 나는 그게 아주 짜증나고 거북하고 불쾌하다! 내가 그리스도교를, 개신교를 믿는 거지, 영국교(敎)나 미국교를 믿는 건 아니잖아? 

만약 영어권 신자들에게 설교한다면 100% 영어로 설교를 해야겠지만(그건 인정하고 찬성한다), 그것도 아닌데 굳이 배달말(한국어)에 영어 낱말을 마구 섞어서 써야 하나? 

이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국 개신교 교회를 ‘친미 사대주의자들의 모임’/‘서양 숭배자들의 모임’/‘서양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로 비난하지! 

 

(단, 그런 나도 김 목사가 『신약성서』 「사도행전」 에 나오는 일, 그러니까 사도들을 비롯한 예슈아 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이후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와 모든[!] 언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사건을 ‘바벨탑 때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가 성령과 구세주 덕분에 잠시나마 풀리게 된 일’로 풀이한 것에는 적극 동의한다. 나 또한 열 해 전부터 그 성구를 떠올리며 ‘혹시 이건, 하나님과 성령님이 예슈아 님을 통해서, 바벨탑이 무너진 뒤 서로 싸우고 이해하지 못하고 갈라서게 된 우리 인간들을 다시 하나로 묶으려고 하셨다는 뜻을 상징하는 사건은 아닐까?’하고 짐작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