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편에서 계속 )
▶ 중고차를 타는 장관
총기 관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그 다음으로 소말릴란드 지도부가 목표로 삼은 것은 법과 질서의 확립이었다.
사법부 장관 ‘아하메드 핫산(45세)’은 국가가 발전을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안전’과 ‘정의’라고 말한다.
“내전이 벌어졌던 15년 동안에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잃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회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회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지요. ‘나쁜 짓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규칙이 확립되지 않으면 국민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정의는 실현될 수 없지요.”
소말릴란드 사법부 건물은 대로에 인접한 민가 같은 모습이었다. 가로 폭이 20미터, 안쪽으로 30미터 정도의 담으로 둘러싸인 부지에 네 동의 건물이 있다.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두 동이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이고, 오른쪽이 회의실이었다. 막다른 장소에 있는 작은 건물에는 장관이 기거하는데 세 평짜리 방 두 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방 한 개는 비서실이고, 그 안쪽이 장관실이다. 세 평짜리 방에 장관과 차관이 책상을 나란히 놓고 앉아 있었다.
약속한 오전(아침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여덟 시가 되자 장관 핫산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나타났다. 방팔 셔츠에 샌들을 신은 모습이다. 자동차는 중고 라이트밴으로, 차체에는 일본 경비 회사의 이름이 씌어 있다. 일본어 글씨의 의미를 가르쳐 주자 장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잘됐군요. 우리가 하는 일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핫산은 소말릴란드 동부 출신이다. 해군 중령으로, 과거의 정부에서는 내무부에 근무하면서 소말릴란드 지역 치안 책임자였다. 그러나 1991년에 정부가 붕괴되면서 자동으로 실직 상태가 되었다. (그는 – 옮긴이) 고향으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다가 2003년에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사법장관으로 취임했다.
“내전은 치안뿐 아니라 정의와 평등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경제가 붕괴되고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판사의 급료가 줄어들어 제대로 생활할 수 없었지요. 그 결과, 판사들이 뇌물에 손을 댔습니다.”
소말릴란드에는 최고법원과 네 개의 고등법원, 아홉 개의 지방법원, 가정법원이 있다. 내전 중이던 시절에는 판사가 모두 서른다섯 명이었다. 그들 모두는 판결과 관련된 뇌물 수수 혐의를 받았고, 국민들은 불공평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6월 대통령은 판사 전원을 파면하고 새롭게 66명을 임명했다. 급료도 대폭 인상해서 최고법원 판사는 월급 500달러, 지방법원 판사는 200달러로 정했다.
“당신(이 글을 쓴 일본인인 ‘마쓰모토 진이치’기자 – 옮긴이)에게는 낮은 임금일지도 모르지만, 이 나라(소말릴란드 – 옮긴이)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급료입니다. 장관인 저의 월급이 200달러이니까요.”
신생 소말릴란드의 공무원의 급료는 매우 낮다. 사법부 차관이 80달러, 사법부 직원 스물일곱 명의 평균 임금이 약 40달러다. 거기에 비하면 판사의 급료는 매우 높다.
급료 향상만이 아니다. 신임 판사를 위한 연수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판사를 66명으로 늘렸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법조인 연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검사, 변호사, 서기관 135명 전원을 연수시키는 일입니다.”
사법장관의 요청에 국제연합(UN – 옮긴이)의 유니세프와 UNDP가 호응해 연수가 시작될 수 있었다.
( → 5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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