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

▩[퍼온 글]영화「킹덤 오브 헤븐」을 본 레바논 무슬림들의 반응

개마두리 2012. 6. 18. 23:04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천상(天上)의 왕국’이라는 뜻. 서기 2005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이 내놓은 할리우드 영화다. 프랑크인(서아시아 사람들이 십자군을 부르는 말)의 서(西)아시아 침략을 다룬 역사물이다.

 

우연히 "킹덤 오브 헤븐"을 다룬 기사를 읽었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소개합니다. 로버크 피스크(Robert Fisk)라고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영국 일간지『인디펜던트』의 기자가 쓴 글인데 The Independent 지 6월 20일자에 실렸지요.

 

비록『인디펜던트』지가 ‘영화의 대본이 별로이며, 발리안 역을 맡은 올랜도 블룸의 연기가 전쟁에 나가는 전사라기보다는 배낭여행하는 건달 같다는 말을 했지만, 피스크 기자는 십자군 전쟁을 다룬 이 미국 영화를 베이루트의 20대 젊은이, 그러니까 서아시아의 젊은 아랍 무슬림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했나 봅니다.

 

십자군이 성지로 쳐들어와 무고한 무슬림들을 마구잡이로 강간하고 목을 벨 때, 차도르를 걸친 예루살렘의 왕 살라딘의 누이를 죽일 때 젊은 무슬림 관객은 어떻게 반응할까? 피스크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못 숨을 죽였다는 거지요.

 

놀랍게도 베이루트의 젊은 관객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술탄 살라딘이 이슬람 군대를 이끌고 십자군과 싸운 뒤, 문둥병에 걸려 쇠 가면을 쓰고 사는 예루살렘의 왕에게 자신의 의원들을 보내 돌보게 하는 장면에서, 박수갈채를 보내더란 것입니다.

 

살라딘 역을 맡은 사람이 시리아의 명배우 가산 마소드(Ghassan Massoud) 씨고 아랍 사람 역을 진짜 아랍 배우들이 연기한 탓도 물론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이 젊은 서아시아 관객들의 갈채는, 기독교인에게 자비를 베푼 무슬림 왕의 영예로운 행위에 대한 공감이란 게 피스크의 지적입니다.

 

가슴 아픈 대사 한 토막. "레바논에서 누군가 날 죽이려고 했지." 살라딘 역을 맡은 마소드씨 자신이 슬쩍 집어넣었다고 알려진 이 대사는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으며 겨레의 힘을 헛되이 쓴 레바논 사회를 빗댄 대사인데, 관객들에게 자신을 비웃는 마음이 섞인 눈물 섞인 폭소를 자아냈다고 하더군요.

 

"시리아의 알파치노"라고, 아랍의 영화판에서는 안성기 씨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인 마소드 씨가 할리우드의 사극에 참여키로 한 까닭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사극이 그런대로 공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 피스크 기자 이 양반, 수상쩍어서『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란 책을 쓴 아민 말루프 씨에게 “마소드 씨의 판단이 옳은가요?”라고 물어봤대요. 말루프 씨는 "너무 공정한 게 탈이지요."라고 대답했죠. 무슨 뜻일까요?

 

영화 막바지에, 발리언이 마침내 항복하고 살라딘이 예루살렘 도성으로 들어가는데, 제단에서 떨어져 나와 교회 마룻바닥에 뒹구는 십자가를 발견합니다. 살라딘은 십자가를 조심스레 거두어 경건하게 제단에 다시 안치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베이루트의 젊은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영화 음악이 안 들릴 정도로 손뼉을 치고 환호하더란 것! 피스크 기자의 관람 소감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나는 이 기막힌 ‘공연(관객들이 손뼉을 치면서 환호한 사실 - 옮긴이)’에 희한하게도 붕 뜬 기분으로 베이루트의 더니스 극장을 떠났다. 영화도 영화지만 관객의 ‘공연’에 놀라면서 말이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봤으면 꼭 보라. 볼 때, 베이루트의 무슬림들이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도 공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기억하라.

 

지난 금요일 베이루트에서 가장 용기 있는 기자가 죽임을 당했는데도 왜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알 것도 같다. <킹덤 오브 헤븐>을 볼 때, 살라딘이 십자가를 제단에 다시 안치하는 대목이 나오면, 베이루트의 무슬림들이 보낸, 귀가 멍멍한 갈채를 기억하라."

 

[출처] : 회교도들이 본 "킹덤 오브 헤븐" (빛바람)

 

- 작성자 : 훈남ㅎㅎ

 

* 출처 :

 

http://cafe.naver.com/bitbaram/218

 

 

* 옮긴이의 말 :

 

 

저는 이 글을 100% 그대로 옮기지 않고, 용어와 낱말을 손질했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 자체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피스크 기자님과 이 글을 우리말로 옮긴 ‘훈남’ 님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 옮긴이의 보충설명

 

 

1. 프랑크인 : Frank人. 서아시아 사람들은 십자군을 ‘프랑크인’이라고 부른다. 이슬람 군대가 꺾지 못한 군대가 프랑크(프랑스) 왕국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이후 프랑크는 서유럽을 부르는 말이 된다. 우리가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일본군을 왜군(倭軍)이라고 부르듯이, 서아시아 사람들은 경멸과 분노를 담아서 ‘프랑크인’이라는 말을 쓴다.

 

 

2. 서(西) 아시아 : West Asia. 터키/쿠르디스탄/아르메니아/그루지야/이란/시리아/요르단/이라크/쿠웨이트/레바논/팔레스타인/사우디아라비아/예멘/아랍에미리트/오만/바레인/카타르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어서 이렇게 부른다.

 

‘중동中東’이나 ‘근동近東’ 이라는 말은 서유럽에서 보았을 때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 끼인 동양’이나 ‘가까운 동양’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

 

 

3. 로버트 피스크 기자의 기사 원문(영문)을 읽고 싶은 사람은 ‘구글’로 가서 검색창에 Robert Fisk를 쓰고 엔터 키를 치시라.

 

 

4. 발리안 :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원래 대장장이였으나 나중에 기사가 된다.

 

 

5. <킹덤 오브 헤븐>이 개봉되었을 때, [인디펜던스]지 뿐만 아니라 서양의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영화를 깎아내렸다고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서양 백인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의 백인 기독교도(중세시대의 기독교도)들은 ‘잔인하고, 탐욕스럽고, 편협하고, 나쁜 놈’으로 나오니 말이다.

 

 

6. 베이루트 : 레바논의 수도. 레바논은 아랍 국가고 시리아 서쪽에 있는 나라다.『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의 나라이기도 하다. 레바논 사람들은 고대 페니키아인의 후손이며, 서기 7세기 이후 아랍인과 피가 섞였다.

 

 

7. 프랑크인의 침략 : 우리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부르듯이, 서아시아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을 ‘프랑크인의 침략’이라고 부른다.

 

 

8. 무슬림 : 아랍어로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슬람교도를 일컫는 가장 올바른 호칭이다.

 

 

9. 성지(聖地) : ‘거룩한 땅’이라는 뜻. 서구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성지(영어로는 Holy Land)’라고도 부른다. 팔레스타인이 기독교와 유태교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10. 차도르 :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이 쓰는 장옷.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린다. 앞을 볼 수 있게 눈이 있는 부분에 구멍을 뚫는다. 메마르고 더운 지역에서는 다 벗는 것보다는 오히려 길고 헐렁한 옷으로 몸을 가리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성(性)적인 자극을 막는다는 이유도 있다. 단,『꾸란』에서는 “음란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을 가려라.”라고 적혀있지, 무작정 몸을 다 가리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11. 십자군이 죽인 무슬림들은 아랍인, 쿠르드인, 튀르크(투르크)인이다.

 

 

12. 예루살렘 : 히브리어로 ‘평화가 깃드는 곳’이라는 뜻. 아랍인들은 이 도시를 ‘성지’라는 뜻을 지닌 ‘알 쿠드스’나 ‘알 쿠즈’라고 부른다.

 

 

13. 살라딘 : 이슬람 세계에서는 ‘썰퇀 살라흐 앗 딘’이라고 불리는 사람. ‘올바른 신앙인인 임금’이라는 뜻이다. ‘썰퇀’은 술탄의 아랍식 발음이다. 살라딘은 존칭이지 이름은 아니다. 그에게는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이는 세종대왕이 시호고 그의 성이 ‘이’이며 이름은 ‘도’인 것과 같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과 시리아와 요르단과 미스르(이집트)와 예멘을 합쳐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 사람이다.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고 팔레스타인을 해방시켰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교 세계에서 모두 성군(聖君)으로 추켜세우는 임금이다.

 

 

14. 피스크 기자와 함께 <킹덤 오브 헤븐>을 본 베이루트의 젊은 관객들 : 대부분 아랍인이고 무슬림임. 레바논 인구의 절반은 무슬림이다.

 

 

15. 문둥병 : 나병이라고도 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센 병’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해, 이 말은 잘 쓰지 않는다.

 

 

16.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딘과 맞서 싸운 예루살렘의 왕은 기독교인이고 조상이 서유럽 백인, 즉 프랑크인이다.

 

 

17. 가산 마소드(Ghassan Massoud) : 서기 1958년에 태어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음. 시리아의 아랍인이고 무슬림이다.

 

 

18. ‘훈남’ 씨는 레바논 관객들이 <킹덤 오브 헤븐>을 칭찬한 까닭을 “아랍 사람 역을 진짜 아랍 배우들이 연기한 탓도 물론 있을지 모르지요.”라고 설명했으나, 쿠르드인과 아랍인은 엄연히 다른 민족이다. 둘 다 종교는 수니파 무슬림이고 서아시아인이긴 하지만, 그들은 쓰는 말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인종도 다르다. 그리고 서로를 경계하고 싫어한다. 참고로 역사 속의 살라딘은 쿠르드인이다.

 

 

19.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으며 겨레의 힘을 헛되이 쓴 레바논 사회” : 레바논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여러 번 내전을 치렀으며, 시온주의자[시오니스트. 유태 민족주의자]들의 침략에 시달리기도 했음. 시리아도 레바논을 가만 두지 않았다.

 

 

20.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딘이 “레바논에서 누군가 날 죽이려고 했지.”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실이다. 역사책을 보면 살라딘을 암살하려고 든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나 유태인이 아니라 시아파 무슬림인 암살단 - 아사신 - 이었다고 한다.

 

 

21. 아랍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그리고 잘 만드는 나라는 미스르(이집트의 정식 국호)다.

 

 

22. 아민 말루프 : 레바논 출신 아랍인이고, 서기 1세기부터 기독교를 믿어온 집안 출신이지만 표준 아랍어를 잘 하고 자신이 아랍인이라고 여기며, 레바논 내전을 피해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과『사람 잡는 정체성』이 있다. 이 두 책은 꼭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23. 피스크 기자가 <킹덤 오브 헤븐>을 볼 때 “베이루트의 무슬림들이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도 공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기억하라.”고 말한 까닭 :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비非 서구세계에 대한 모욕과 비난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트루 라이즈>와 <300>이다. 전자는 아랍인을 욕하고, 후자는 이란인을 욕한다.

 

 

24. 피스크 기자가 “<킹덤 오브 헤븐>을 볼 때, 살라딘이 십자가를 제단에 다시 안치하는 대목이 나오면, 베이루트의 무슬림들이 보낸, 귀가 멍멍한 갈채를 기억하라."고 말한 까닭 :

 

 

이 말은 이런 뜻이다. 영국인인 피스크 기자는 ‘이 영화는 미국 백인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고, 게다가 십자군을 다룬 영화인데, 과연 이걸 보고 이슬람교도고, 아랍인이고, 피해자의 후손인 레바논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화를 내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관객들은 화를 내긴 커녕 영화에 공감하고 기뻐하고 감동했다. 아마 스콧 감독이 십자군의 추악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살라딘을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왕으로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슬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이 기독교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이 사실은 ‘종교와 문화가 다르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랍인들은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가 ‘아랍 세계를 욕하고, 이슬람교를 깎아내린다.’고 여기며 화를 냈는데(실제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들 가운데 90%가 아랍인을 욕하는 내용이다), <킹덤 오브 헤븐>을 보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피스크 기자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