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칼럼]연애에도 계층의 벽이 다시 쌓인다

개마두리 2013. 1. 14. 16:32

연애결혼은 ‘1955년 체제’의 꿈

 

연애결혼이라는 형태는 1955년 체제에서 발달한 결혼형식이다. 사실 1955년 당시 35% 정도였던 연애결혼율이 1975년에는 65%까지 급증했다.

 

55년 체제는 근대화 시대로,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경제적으로는 공업화가 진행되었던 시기다. 이에 따라 도시화와 대중소비사회화가 촉발되었다. (사람들의 - 옮긴이) 직업이 농민과 자영업자에서 피고용인(예컨대 회사원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 - 옮긴이)으로 바뀌고, 가족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또, 학력이 올라가고 문화가 개인주의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55년 체제의 조류 속에서 연애결혼도 점차 정착되어갔던 것이다.

 

원래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자유연애도 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연애결혼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급과 신분의 벽이 존재하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연애결혼은 중류화(대부분의 사람이 중류[中流], 그러니까 중산층이 된다는 뜻 - 옮긴이) 시대에 어울리는 결혼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지만, 1970년대까지는 가문이 다른 남녀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거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내용의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가문과 계급을 극복하는 것이 진실한 연애결혼이라고 낭만적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만혼화의 이유는 계층화

 

자유연애는 1970년대에 그 정점을 맞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본사회가 점차 계층화되어왔다면, 연애결혼은 다시 어려워지고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만혼화(晩婚化. 결혼을 늦게 하는 현상 - 옮긴이)가 진행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오구라 치카코와 야마다 마사히로를 제외하고는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80년대 이후 계층화가 진행되면서 자유연애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결혼만큼이나 같은 계층의 인간끼리 이어지는 일도 드물다. 결혼이 개인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다른 계층의 인간과 만날 기회도 별로 없고, 만난다 하더라도 결혼 상대자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일류 비즈니스맨(Businessman. 사업가 - 옮긴이)이 파친코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결혼하지 않으며, 밀리언에이제 계(系) (월 수입이 100만[밀리언] 엔이 넘는, 그러니까 ‘소득이 높은’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여성이 자신의 사무실을 청소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왜일까? 소득, 직업, 학력, 취미 등 모든 면에서 계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계층이 다르면 화제도 맞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도 결혼에 이르러서는 그 부분에 생각이 미친다.

 

(츠쿠바대학 조교수인 시라나미세 사와코는『저출산 고령사회의 보이지 않은 격차』에서 1990년대 후반에도 결혼의 배경에 학력, 출신계층, 개인소득이라고 하는 계층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하 생략)

 

―『하류사회(下流社會)』(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화성 옮김, ‘씨앗을뿌리는 사람’펴냄, 서기 2006년)에서

 

* 옮긴이(잉걸)의 말 : 이 글은 일본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정직하게 말하라면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이미 연애결혼이 불가능한 사회로 탈바꿈했다. “돈이 없으면 사랑은 끝이고”, "사랑에는 국경/인종/민족/계급/지역이 있다.“고 가르치는 한국사회는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