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아이들에 대하여

개마두리 2015. 11. 27. 00:15

 

가슴에 아기를 안은 여인이 말했다.


“아이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예언자가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사모하는 생명의 아들이며 딸이다.
그들은 그대들을 통해서 왔지만, 그대들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그대들과 함께 있지만, 그대들에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그들에게 사랑을 전해 줄 수는 있지만,
그대들의 생각은 전해 줄 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그대들은 그들의 몸이 쉴 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넋을 위한 집을 줄 수는 없다.
그들의 넋이 머무는 곳은 내일이라는 집이다.
그대들은 그 집에 찾아갈 수 없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들을 닮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대들을 닮게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삶은 거꾸로 나아가지 않으며,
어제 속에서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아이들을 살아 있는 화살로서 쏘아 보내는 활이다.
활 쏘는 이는 영원이라는 길목에 서 있는 과녁을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해 시위를 당긴다.
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빨리,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그대들이 활 쏘는 이의 팔 안에서 구부러질 때, (그것을) 기뻐하라.
그이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멈추어 있는 활도 또한 사랑한다.”


- 칼릴 지브란의『예언자』에서


(* 옮긴이의 말 : 제 아들을 죽이고 나서 자살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아들과 ‘동반자살’을 했다.”고 덧붙인 언론사의 기자에게 분노하며, 제 아들에게 죽음을 강요한 그 남자에게 분노하며, “오죽하면 그랬겠어? 이건 비난하면 안 돼. 비난하는 ‘것’들은 어쩔 거야? 그 애를 대신 키워줄 건가?”라고 말하는 대중들에게 분노하며 지브란 선생의 글을 인용한다. 문제의 기사는 아래에 있으니, 자세한 사연을 알고 싶다면 읽어보라.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126180624205


나는 이 나라가 손순[孫順]이래 1180년 동안 하나도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한다. 손순은 ‘효도하겠답시고’ 제 자식을 산채로 묻어 죽이려고 했다[비록 도중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일이 알려지자, 신라 흥덕왕은 “기특하고 착하다.”며 손순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제 자식을 죽이려고 한 게 ‘죄’가 아니란 말인가? 더 묻어죽이라고?


하긴 지금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와 함께 죽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을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는 판인데 - 나아가 대중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일을 헐뜯거나 욕하면 안 돼.”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는 “인의예지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루쉰 선생의 말을 “자식을 ‘내 것’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뒤 세대의 앞날을 잡아먹고 있다.”는 말로 바꾸며 분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