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기사
- 입력 : 2015.12.19.
- 저도수 소주 등장과 IPTV 확산으로 법망 피해 아이들 보는 콘텐츠에도 내보내
초등학교 6학년생인 김모양(12·경기 고양)은 12월 8일 저녁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스트레스를 풀 겸 TV를 켰다. 인터넷이 연결된 TV로 평소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쩔어> 유튜브 영상을 찾아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순간 김양을 반긴 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아니었다. 배우 “신민아 아주머니”가 커플티를 들고 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소주 ‘처음처럼’ 광고 영상이라는 걸 곧 알아챘다. 소주를 따르고, 잔을 부딪치며 마시는 생생한 장면들이 화면을 장식했다. “방탄 오빠들 보려는데 웬 소주? 애들한테 술이나 보여주고 참 잘~ 한다.”는 말에 부모는 당혹스러웠다.
이번뿐이 아니라, 그는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 영상에는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맥주나 35도짜리 양주인 ‘주피터 마일드블루 17’ 같은 술 광고가 유튜브에 자주 붙는 걸 봤다.
다수 시청자가 10대들인 아이돌 스타의 콘텐츠에 술 광고는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렇잖아도 음주에 관대한 한국이 한마디로 ‘애들에게도 술 권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안전장치 중 하나가 ‘방송 광고 제한’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원인의 하나는 저도주로 기준이 유명무실해진 탓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상 ‘방송’이 아닌 영상의 홍수나 인터넷의 발달 탓이다. 제도에 허점이 많은데도 국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술의 방송 광고를 규제하는 법적 근거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이다. 시행령 제10조 2항의 별표에 ‘알코올 17도 이상의 주류를 광고 방송하는 행위’를 금지해 놨다. 또 TV(종합유선방송 포함)는 오전 7시~오후 10시에는 모든 술 광고를 하면 안 된다. 라디오는 오후 5시~오전 8시 주류 광고가 금지되고, 오전 8시~오후 5시에도 미성년자 대상 프로그램 전후로 술 광고는 안 된다.
▶ 알코올 17도 이상 주류만 광고방송 규제
이른바 ‘저도수 소주’ 등장은 이런 법망을 피해간다. 17도 규정은 전통적 기준으로 소주 이상 도수 높은 술 광고를 제한하기 위해서 설정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요즘 13도까지 떨어진 저알코올 소주가 나왔다. 소주 도수는 1973년 25도에서 1998년 23도, 2006년 20.1도, 2008년 19.5도 등으로 낮아지다가 최근 16도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에 17도 기준선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주류의 ‘순하리’(14~15도), 하이트진로의 ‘자몽에이슬’(13도) 등 저도 소주가 유행하며 방송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무학의 ‘좋은데이’(16.9도)는 올해 상반기에만 지상파 892회를 포함해 2000번 넘게 광고됐다. 대한보건협회 방형애 기획실장은 “소주가 13도까지 떨어지자 여성 음주가 늘고 있다”며 “17도 광고 금지 규정을 소주·위스키·브랜디 등 고도주의 광고를 제한하는 쪽으로 개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방송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 흐름을 타고 주류 광고도 범위가 넓어졌다. 먼저 방송법상 ‘방송’이 아닌 인터넷으로 인식되는 IPTV의 주류 광고도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IPTV 가입자는 1000만명을 넘었다. 방송법은 ‘방송’을 TV, 라디오, 데이터방송, 이동멀티미디어방송으로 분류할(방송법 제2조 1항) 뿐이다. IPTV 관련 법률인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에는 광고 규정이 전혀 없다.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 유자’(14도)는 IPTV에 광고가 나가고 있다. 대한보건협회가 집계해 보니 올해 3~10월까지 IPTV의 주문형 비디오(VOD) 방송에 붙은 주류 광고만 613회였다. SK브로드밴드가 245회로 40%, KT 올레TV가 238회로 38.8%를 각각 차지했다. 소주와 맥주가 각각 295회, 291회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고도주인 위스키도 27회(4.4%)였다. 회사별로 롯데주류가 337회(55%)로 절반을 넘었고, 하이트진로 138회(22.5%), 오비맥주 95회(15.5%) 순서였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올해 1월 IPTV에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와 청소년이 시청할 만한 등급의 콘텐츠에 주류 광고를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조차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개정이 무산될 처지다.
인터넷 상의 주류 광고도 논란거리다. 유튜브, 아프리카TV의 경우 형식은 인터넷이지만 사실상 방송과 비슷한 역할을 한 지 오래다. 포털 사이트의 주류 광고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유튜브는 올해 3~10월 928건의 주류 광고를 내보낸 것으로 대한보건협회가 집계했다. 시간대별로 유튜브는 오후 6시 이전에 주류 광고의 40%를 내보냈고, 오후 6~10시에 31.8%를 차지했다. 일반 TV에서 주류 광고가 제약된 시간에 유튜브는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TV 광고도 시간대 제한에 더해,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청소년용에는 주류 광고를 금하는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광고 모델들도 간혹 논란을 일으킨다.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맥주는 올해 7월 임신 중인 여배우 전지현씨(34)와 전속모델 계약을 연장해 여성계와 의료계의 비난을 샀다. 롯데는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던 광고 모습은 지우고, 클라우드 병을 들고 있는 장면만 내세울 방침이었다. 그러나 임산부의 맥주 광고 출연 자체가 범법행위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제10조 2항의 별표에는 ‘임산부나 미성년자의 인물 또는 목소리를 묘사하는 표현’을 명문으로 금지해 놨다. 복지부의 시정 요청을 받고서야 롯데는 결국 12월 광고분부터 전씨 모습과 목소리를 빼야 했다.
▶ 방송과 비슷한 유튜브 등 광고도 문제
사실은 국내 음주 광고 대다수도 엄격히 적용하면 모두 법규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위 시행령 별표 1호는 ‘음주행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표현’이 광고 금지 대상이다. 광고, 특히 방송 광고에서 전씨처럼 모델이 술을 들이키며 입가에 거품을 묻히고, 만족스런 표현을 하는 자체가 음주 미화에 해당한다. 하이네켄 같은 선진업체의 주류 광고에는 이런 장면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대조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음주 조장 광고에 눈을 감아주고 있다.
이른바 ‘아이유법’으로 갑론을박을 부른 모델 연령 제한도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올해 7월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어린이와 청소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만 24세 이하의 사람을 주류 광고에 출연 금지’토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소주 광고를 한 ‘가수 아이유가 애냐’는 반발을 샀다. 다만 모델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활동 대상으로 하는 주요 소비층이 미성년자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선진국에서는 주류업계 자율규제로 만 25세 미만은 광고모델을 피한다. 특히 미성년자에게 영향을 미칠 연예인 및 스포츠 스타의 주류 모델 기용을 금지하기도 한다. 반면 국내는 가수 현아, 구하라, 효린, 유이, 아이유, 빅뱅 등 아이돌 스타가 앞장서 술 팔기에 여념이 없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주류 광고는 거의 무방비 상태다. 특히 카카오의 다음은 올 들어 1535건(98.5%)의 술 광고를 내보였는데, 네이버(22건, 1.5%)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적어도 포털사이트의 경우 주류 광고 시간대를 오후 10시~오전 6시 정도로 제약할 필요성이 있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인터넷에 주류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냈으나 역시 국회에서 외면받고 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당국자는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새로운 매체가 활성화된 현실에 맞춰 주류 광고를 제약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며 “음주를 부추기는 광고를 제한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드러냈다.
정쟁에 골몰하거나 주류업계 로비에 사로잡힌 정치꾼이나 정부 당국자가 머뭇거리는 동안,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술은 ‘빨리 마셔 보고픈, 꽤나 매력적인 음료’로 시나브로 젖어들고 있다. 국내 알코올 중독자는 155만명으로 추산된다. 알코올 중독률(성인 중 알코올 의존 남용자 비율)은 6.7%로, 세계 평균(3.6%)의 1.8배로 알려졌다.
-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 출처 :
http://zum.com/#!/v=2&tab=economy&p=6&cm=photo&news=0012015121927419849
# 옮긴이의 말 :
한국은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 ‘술 마시기를 강요하는 사회’고 ‘술에 너무너무 너그러운 사회’다. 정부는 담배를 끊으라고 윽박지르는 광고는 시도 때도 없이 막 틀면서, 왜 담배보다 해롭고 위험한(쉽게 예를 들어보자.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담배를 피우고 사람을 때렸다거나, 토했다거나, 성추행을 했다거나, 물건을 훔쳤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술을 비난하는 광고는 안 튼다.
왜? 술 마시고 취해서 주정부리라고? 술 마셔서 생기는 치매와 똥배와 지방간과 간암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검사와 판사 나리들이 틈만 나면 술을 마시니까? 아니면 이 나라의 보통사람들이 술 마시고 취해서 판단력과 이성을 잃어버려야 윗XXX들에게 대들지 못하니까? 아니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술 취해서 한밤중에 병원에 기어들어와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을 퍼붓고, 막 토하는 작자들을 본 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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