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 사코의『저널리즘』- 기자보다 더 ‘객관성’을 고민하다

개마두리 2015. 12. 31. 21:08

 

2002년 소개된 조 사코의『팔레스타인』은 아트 슈피겔만의『쥐』만큼이나 많은 사람에게 내용과 기법적인 측면에서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그는 총알과 화염병이 오가는 팔레스타인(정식 국호 ‘필리스틴Filistin’ - 옮긴이)의 현싱을 그리기 위해 안락한 책상에 앉아 신문 기사를 검색하기보다는, 주머니를 털어 지구 반대편 분쟁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만화라는 장르가 이렇게나 르포르타주(‘탐방/보도/보고’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낱말. 줄여서 ‘르포’라고도 한다 - 옮긴이)에 적합했던가. 지면과 시간에 쫓기는 신문과 (TV/라디오의 - 옮긴이) 뉴스와는 다르게, 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차분히 ‘인간의 말’로 호소할 수 있었고, 작가가 하나하나 그린 얼굴에는 그 어떤 사진보다 절실함이 느껴졌다. 조 사코는 이 작품을 통해 ‘만화를 통한 언론’을 의미하는 ‘코믹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로도 조 사코의 의욕적인 행보는 계속됐다. 그는 팔레스타인 분쟁(더 정확하게는 ‘시온주의자들의 필리스틴 점령’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뿐만 아니라,『안전지대 고라즈데』/『전쟁의 끝』/『픽서』를 통해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내전(냉전이 끝난 직후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나, 그 나라를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 나눠 버린 전쟁 - 옮긴이)을 다루었고,『가디언』/『뉴욕타임스 매거진』/국제엠네스티 같은 언론이나 단체의 요청으로 전 세계 갈등 지역을 방문해 그곳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편 2009년에는 7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작『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발표해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아이스너 상을 받았다.


(조 사코가 - 옮긴이) 2014년 발표한『저널리즘』(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은 조 사코가 지난 수년간 잡지/신문/책에 실었던 단편들을 모아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묻고 정의하는 작품이다.


만화는 점 하나, 선 하나, 모두 작가에 의해 ‘창조’ 되기 때문에, 조 사코는 기자들보다 더 가혹하게 ‘객관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헤이그 전범 재판, 팔레스타인, 체첸(이 이름은 적인 러시아 정부가 일방적으로 붙인 것이고, 이 사람들은 자신을 ‘바이 - 나흐’라고 부른다 : 옮긴이), 몰타, 인도(정식 국호 ‘바라트’ - 옮긴이) 이야기를 한 꼭지씩 따라가면, 서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는 ‘발언 기회를 얻을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의 기자’인 조 사코의 언론관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엿볼 수 있다.


한국어판은 <프레시안>, SBS(서울방송 - 옮긴이),『경향신문』,『시사 IN』, 『한겨레』,『한국일보』의 현직 기자들이 각 쳅터(장章? - 옮긴이)를 번역하고 후기를 남겼다. 이 작품을 위해 외신보도 드림팀이 결성됐다고 할까? 내려찍는 듯한 명쾌한 번역도 매력적이지만, 한국 언론의 아쉬운 현주소를 토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어, 우리에게 중요한 의의가 있는 책으로 거듭 태어났다.


조 사코의 이야기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끝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차례를 넘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언론을 바라보고 있는가? 언론은 기자들만의 몫인가? 언론을 (종교의 - 옮긴이) 복음처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역할이 진실을 파헤치고 권력을 견제하는 데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서슬 퍼런 시선으로 언론을 감시해 그 순수성을 지켜줘야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 이하규(해바라기 프로젝트 담당자)의 글


* 출처 :『한겨레 21』제 1077호(서기 2015년 9월 7일에 펴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