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은둔마왕과 검의 공주』1권

개마두리 2016. 2. 14. 18:45


(비에이 지음, (주) 디앤씨미디어[시드노벨] 펴냄, 서기 2015년, 7000원)


서점 한 구석에 꽂혀 있던 경소설(輕小說. ‘가벼운[輕] 소설’이라는 뜻. ‘라이트노벨’의 ‘라이트Light'에는 ’가볍다‘는 뜻도 있고, ’노벨Novel'은 ‘소설’이라는 뜻이다)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먼저 마왕이 ‘뿔이 달리고, 이가 뾰족하고, 길고 끝이 뾰족한 손톱을 달고, 피부는 어두운 붉은 색인 괴물’이 아니라 평범하게 생긴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소설 안에 들어있는 삽화에 따르면 그렇다)이라는 점이 참신했고, 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가 겉보기에는 20대지만 실제로는 300년 이상을 산 ‘노인’이라는 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가 원래는 인간 마법사였는데, 어쩌다 보니 몸의 성장이 멈추고 늙지도, 죽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설정이었다. 나는 ‘마왕’이라면 원래부터 마계에 살던 마족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터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왕’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를 읽을 때에는 그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안타까웠다(그를 ‘마왕’이라고 부르며 욕한 사람들은 그가 더 큰 재앙을 막으려고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았다는 것을 알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소설을 사서 읽어보라).


여주인공인 공주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우선 당차고 씩씩하다는 게 마음에 든다. 공주가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 마왕을 지킨다는 설정은 ‘왕자와 공주’ 이야기의 공식을 깨뜨렸기 때문에 신선하고,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이 먼저 청혼하고 애정을 드러내는 것도 여성의 주도적인 결정이라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다만 불만스러운 건 - 이 경소설이 마왕이 화자로 나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한계지만 - 공주의 사연이라든지, 공주의 심리상태가 적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앞으로 소설이 계속 나오면 이 문제도 해결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불만을 (되도록이면 적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족을 달자면 원래는 주인공과 아는 사이였고, 주인공과의 관계에 불만을 느껴서 악당이 되어버린 아스테리아(아니 이브)의 이야기는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마법사 아무개(마왕의 본 모습)는 그를 ‘제자’나 ‘어린아이’로밖에 보지 않았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개를 이성(異性)으로서 사랑했고 그 사랑 때문에 - 그리고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어도 아무개는 계속 젊은 남성으로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면 절망스러워서 - 자신의 넋을 악마에게 팔아치우고 아무개가 마왕이 되는 계기를 만들다니. ‘삐뚤어진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아주 적절한 예였다고나 할까?


이 ‘(불쌍하지만 비난받아야 하는) 악당’을 쫓아가서 악마로부터 해방시키고 악마를 처치해야 하는 게 마왕의 ‘임무’인데, 안 그래도 사람들로부터 ‘마왕’이라는 소리를 듣고, 온갖 오해를 사는 판에 이런 임무까지 맡아야 하니, 마왕의 앞길이 순탄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추진력과 원동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주인공들을 가엾게 여기는 것과는 별도로 나는 흥미를 품고 앞으로 나올 새 단행본들을 기다릴 것이다!).


결론은 ‘나쁘지는 않은, 무난한 추천작’이라는 것이고,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평점 : ★★★☆(100점 만 점에 70점. ☆은 별 반)


* 덧붙이는 글 :


1. 읽다 보니 마왕의 본명 - 인간 마법사였을 때 쓰던 본명 - 이 안 나와서 궁금증과 호기심이 커졌다. 도대체 왜 마왕은 자신의 본명을 잊어버린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나? 이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들 가운데 하나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면 작가가 앞으로 할 이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2. 마왕이라는 ‘인간 남자’가 조금씩 바뀌고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감을 잡았는데(그리고 그 마왕이 나쁜 놈이 아니라는 점. 진짜 ‘마왕’이라고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남자라는 점도 알겠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공주도 마왕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단, 공주가 너무 밝은 여성으로 나와서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는 감이 안 잡힌다는 게 문제다.


3. 아스테리아가 악역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자세한 건 소설을 직접 읽어보세요)!


4. 1권 이후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펼칠지 기대된다. 악당(이브)을 찾아내고 악당을 조종하는 악마를 없애야 하니, 어차피 마왕이 살던 성을 떠나야 할 텐데, 그럼 2권부터는 마왕과 공주와 가로(검사)가 여행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될까?


5. 마왕은 이브를 찾아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바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저주’가 걸린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랬다가는 공주와 결혼했다 하더라도 공주가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할 테니까. 이브도 그런 문제 때문에 악당이 된 건데, 공주라고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우리라는 법은 없잖아?


6. 이 경소설이 대부분의 경소설과는 달리 하렘(Harem)이나 역(逆) 하렘(Harem)이 안 나온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부디 앞으로도 작가가 이런 구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써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