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다소 소소한 아이슬란드 일기

개마두리 2017. 8. 27. 22:20

- 윤승철 선생의 글


▶ 여행지에서 쓰는 일기


“집에만 있는 아이는 어리석고, 여행을 하는 자는 지혜롭다.”아이슬란드 속담도 가슴에 박히지 않는 파리의 밤. 아이슬란드로 가기 전 경유지(經由地 : 거쳐 지나는 곳 - 옮긴이)인 파리에서 며칠 지내며 쓴 일기(日記. 순수한 배달말로는 ‘날적이’ - 옮긴이)였다.


한편으로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어떤 사유로도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여행의 목적을 누군가에게 완벽히 이해시키는 건 쉽지 않다. 일기 속 의문에 스스로 ‘어떤 감정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공유할 수는 없다.’라는 1차원적 답변을 만들어냈다. 그래야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꼭 아이슬란드를 가보자 이야기했던 이병률 작가님과 함께 그렇게 2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도시가 아니면 사람을 보기 힘들어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는 ….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록 이끼 위에 쌓인 흰 눈, 그리고 어둑한 안개도 일조했다(한몫했다 - 옮긴이).


막 떠나온 도시 전체가 어렴풋이 사라지는 모습을 백미러로 보다 보니, 도로 위를 달리는 차조차도 허공을 달리는 느낌을 받았다. 모난 곳 없는 자연 속을 드라이브하다 도시의 지붕마다 가게마다 집집마다 창문마다 있는 직각의 형태를 보고 마음이 놓인 날도 있었다.


모든 선이 뚜렷한 마을의 끝은 곧 모호한 세계의 시작이었다. 마을의 끝 지점을 알리는 표지판부터 다시 적막의 세계로 접어들고, 스노타이어에 박힌 쇠가 내는 ‘드드륵’ 소리만이 우리가 지상에 붙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 섬사람의 마음속엔 섬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몇 없는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무심하고 투박한 아이슬란드 사람들. 섬사람은 왜 그렇게 배타적이고 무뚝뚝하냐고 그곳에서 태어난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외지인은 언제나 이방인이고 곧 떠날 사람들이잖아.”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섬 속에 또 자신들만의 섬을 갖고 있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 공화국은 - 옮긴이)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와 비슷한 면적이지만, 그들이 키우는 양의 수보다도 적은 사람이 살고 있다. 서울의 25개 구 중(가운데 - 옮긴이) 서대문구 인구가 아이슬란드 전역에 흩어져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은 ‘간격’이라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멀었다. 특히 겨울이면 잦은 눈보라와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하늘, 차가운 공기와 불시에 잦아드는 안개에 밝은 단색의 집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그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 수 없었다. 하지만 수도 레이캬비크를 벗어나서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마을 밖에 집이 드문드문 있었으니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그보다 더 극적인(‘확률이 낮은’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 일이었지만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 목장을 운영하는 집주인이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여행지에서처럼 시시콜콜 그들의 삶에 녹아 정을 나누고 도움을 받는 등의 이야기가 아니다. 1박 2일 동안 단 한마디만 나누었을 뿐이니까.


인사를 나눈 주인은 내게 방을 안내하더니 바람같이 사라졌다.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 먼저 다가서면 다들 하나같이 괜찮다고 했다. 길가에 선 자동차를 보고 도우려 해도, 자기가 할 수 있으니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했다. 두 번이나.


나는 그것이 억척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이곳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의 서대문구(만한 - 옮긴이) 인구에 작가, 배우, 의사, 변호사, 식물학자, 소방관, 가게 점원, 청소부, 기자, 디자이너, 정치인에서 선생님과 축구 선수까지 있어야 하니 자신이 곧 자기가 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


자신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깐깐하게 잘 처리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자기 일을 제쳐두고 도와주러 와야 한다는 생각이 이들을 더욱더 ‘섬’에 머무르게 하는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Betra er einn aðvera, en illan stallbróður hafa.” 영어로는 "Better be alone than in bad company", 우리말(한국어/배달말 - 옮긴이)로 하면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느니, 혼자가 낫다.”라는 뜻이다. 참으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이 사람들의 성격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 아닌가 싶다. 특히 겨울이면 하루 중 낮이 몇 시간에 불과하다. 수천 개의 폭포와 협곡, 화산과 빙하 그리고 간헐천과 북극해로 둘러싸인 아이슬란드. 대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낯선 느낌을 주었고, 나는 아이슬란드의 압도적인 자연만큼이나 이들의 삶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감성이 담긴 음반과 눈으로 보아도 부드러운 스웨터, 그리고 실내 디자인. 10명 중 1명(그러니까 인구의 10% - 옮긴이)이 작가인 나라에서 우리(한국인 - 옮긴이)와 무엇이 다른지 따져보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엔 항상 자연이 있었다.


* 윤승철 :


사막과 남극, 무인도처럼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달리는 청춘의 시』,『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의 저자.


-『빅 이슈 코리아(Big Issue Korea)』지 제 155호(서기 2017년 5월 1일에 펴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