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로마의 화려한 변신

개마두리 2019. 6. 21. 15:00

우리(한국인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가 알고 있는 로마제국은,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하여 경영한 최초의 나라이다(사실은, 로마가 제국이 되기 5세기 전에, 오늘날의 이란인인 페르시아 인들이 헬라스[그리스의 바른 이름]를 뺀 나머지 문명세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을 세워서 다스렸다 - 옮긴이).


하지만 생성기(서기전 8세기인 서기전 753년 - 옮긴이)의 로마는, 지금의 로마와는 달리 도로라고 불릴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가옥(家屋. 사람이 사는 집 - 옮긴이)들은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서 있었으며, 게다가 (그것들은 - 옮긴이) 아주 작은 것들밖에 없었던 자그마한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살고 있던 - 옮긴이) 여타의(그 밖의 다른 - 옮긴이) 부족들(예를 들면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살던 민족인 ‘삼니움’ 족 - 옮긴이)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집단의(집단인 - 옮긴이) 일개 시골 부족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부족 가운데 하나였던 자그마한 로마가 (지중해 - 옮긴이)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의 유명한(이름난 - 옮긴이) 정치사상가이자 역사가인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로물루스(로마 건국의 시조)와 그의 후계자들(로마의 왕들과 집정관들 - 옮긴이)은 근린 민족과 거의 매일같이 전쟁을 했다. 로마인들은 주변 민족과 싸우는 과정에서, 적이 소지하고(가지고 - 옮긴이) 있는 것 가운데 좋은 것을 발견했을 때는 언제든지 자신들의 관행을 던져버리고 그것을 채택했다.


로마인들은 에스파냐(원래 이베리아 반도는 ‘에브로’족과 켈트인들이 살던  땅 이었다 - 옮긴이) 풍(風) 칼의 장점을 알게 된 순간 자신들의 검을 버렸으며, 누미디아(오늘날의 알제리[북아프리카의 공화국]에 있던 고대 왕국 - 옮긴이)의 말, 크레타의 화살, 바레아레스(발레아레스 제도. 알제리의 북쪽, 에스파냐의 동남쪽에 있는, 지중해의 섬들. 오늘날에는 에스파냐의 땅이다 - 옮긴이)의 투석병(적에게 돌팔매를 던지면서 싸우는 병사 - 옮긴이), 로도스(헬라스의 섬 - 옮긴이)의 배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고 한다.


(내가 몇 해 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따르면, 서기 5세기에 훈[Hun]족이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당하기만 하던 로마제국이 나중에는 훈족의 기마술과 활쏘기와 전법을 따라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적의 잠기[병기’兵器‘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와 전술과 전법[戰法]을 따라함으로써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전통’은 서로마 말/동로마 초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이다 - 옮긴이)


로마가 (지중해 - 옮긴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까닭 - 옮긴이)은 우호적인(사이좋은 - 옮긴이) 동맹국이든, 피를 흘리며 전투를 벌여야 했던 적대국가였든 구별하지(나누지/가리지 - 옮긴이) 않고 오로지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고자 했던 열린 자세에 있었다(‘열린 자세를 지녔기 때문이다.’ - 옮긴이).


(→『손자병법』에 나오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온[100] 번 싸워서 온 번 이긴다[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과도 통하는 개념이 아닌가? 역시 사람의 슬기[지혜]는 어디서나 비슷하게 다듬어지는 모양이다 - 옮긴이) 


우리는 여기서, 자기를 개조시키는(개조하는/고치는 - 옮긴이) 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고, 타인(다른 사람 - 옮긴이)의 장점(뛰어난 점 - 옮긴이)을 자기 변신의 디딤돌로 삼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자세를 읽어낼 수 있다.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국가(나라 - 옮긴이)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사유(事由. 일[事]의 까닭[由] - 옮긴이)가 있고,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이규배,『반일 그 새로운 시작』, 13 ~ 14쪽 


→  『반일 그 새로운 시작』(이규배 지음, ‘도서출판 푸른숲’ 펴냄, 서기 1997년)에서


* 이규배 : 정치학 박사. 일본 정치사를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