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세계사]아일랜드 감자의 비극

개마두리 2023. 8. 29. 22:13

거친 자연 환경 만큼이나 굴곡진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를 간직한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아일랜드[Ireland]’는 영어 이름이고, 이 나라의 게일어[켈트인의 언어] 이름은 에린[Erin]’이나 에이레[Eire]’. 에이레는 켈트인의 나라다 옮긴이).

 

이 나라의 서쪽 해안(바닷가 옮긴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아킬(Archill)’ 섬에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마을 하나가 있습니다. 일명, ‘황폐한 마을(The Deserted Village)’. 이 이름이 말해 주듯이, 마을에 남아 있는 것은 무너진 돌담들, 그리고 여름이면 소나 양을 먹이러 오는 외지인(外地人. 바깥 사람들 옮긴이)이 전부입니다.

 

거친 산비탈에서 소와 양들을 기르며, 집 앞 조그만 땅뙈기에 감자를 기르며 살아가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 하지만 (서기 옮긴이) 1845, 아메리카(거북섬 옮긴이) 대륙에서 건너온 재앙의 씨앗 하나가 이곳을 하루아침에 유령의 마을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바로 감자 마름병이었습니다. 멀쩡한 감자를 검게 썩어 들어가게 만드는 무서운 전염병. 이 병에 걸린 감자를 먹으면,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감자 마름병은 아일랜드(에이레 옮긴이)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무성했던 감자밭은 하루아침에 검게 변했습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의 감자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곡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람들의 굶주림과 절망만이 남았습니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된 이 대기근(에이레, 그러니까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대기근이라고 해서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불린다 옮긴이) 동안 무려 125만 명의 아일랜드 시민들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감자 마름병은 당시 전(. 옮긴이) 유럽을 휩쓸었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아일랜드에서와 같은 대기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옮긴이) 통치(‘지배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근대 왜국[倭國]이 서기 1910년부터 서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해서 식민지로 지배한 일이 통치일 수 있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니다. 그렇다면 영국 정부가 에이레를 식민지로 둔 일도 지배로 불러야 한다 옮긴이)하고 있던 영국의 재무장관, ‘찰스 트리벨리언(Charles Trevelyan)’은 그 이유(理由.그러나 이 말은 옳은 말이 아니고, 이 말 대신 까닭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옮긴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西)아일랜드 여성 농민들은 감자 삶은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요리가 거의 없다.”

 

감자밖에 먹을 줄 모르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식습관’. 이것이 유독 아일랜드에서만 대기근이 일어난 원인이라고 비난한 겁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비극이 정말 아일랜드 사람들의 식습관 탓이었을까요?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존 미첼(John Mitchel)’은 이렇게 말합니다.

 

감자를 망친 건 물론(勿論. 말할[] 것도 없이[] 옮긴이) 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영국인들(좀 더 정확히는, 잉글랜드인 옮긴이)이다.”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아일랜드.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근 동안 아일랜드를 떠난 사람들의 숫자는 1백 만여 명. 그러나 항해 도중 각종 질병이 빠르게 퍼졌고, 배를 탄 사람들 가운데 5분의 1이 넘는 20만여 명이 배 안에서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이 배(다른 나라로 달아나는 에이레 사람들을 실은 배 옮긴이)(. [시신을 담는 궤짝인] 옮긴이)을 실은 배’, 관선(棺船. Coffin Ship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일랜드를 떠나는 배 안에는 굶주림을 피해 고향을 등지는 이민자들만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배 안에는 밀/귀리//돼지/버터 등이(. ‘~ 따위가’.‘~같은 것이’ - 옮긴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25만 명이 굶어 죽고 있던 1847년 한 해에만 4천 척의 배가 (에이레에서 옮긴이) 외국으로 식량(먹을 것 옮긴이)을 운반해 갔습니다(날랐습니다 옮긴이). 이 식량이 향한 곳은 영국. 시장 논리에 따라,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식량을 가져갔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가난한 (에이레 옮긴이) 시민들이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 옮긴이)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이레 옮긴이)의 비극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했고, 기아(飢餓. 굶주림 옮긴이)를 막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심지어, 당시 영국 관리 가운데 한 사람은 굶주리는 에이레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는 돈이 게으름뱅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아까운 돈이라고 우겼고, 다른 영국 관리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에이레 사람들에게 내려진] 신의 심판이라고 떠들었다! - 옮긴이).

 

당시 아일랜드 땅의 대부분은 영국 본토(알바[영어 이름 스코틀랜드’]와 컴리[킴루. 영어 이름 웨일스’]와 잉글랜드가 있는 브리튼 섬 옮긴이)에 살던 지주들의 소유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에이레 사람인 소작인들이 옮긴이) 수확한(거둔 옮긴이) 곡물과 값비싼 가축(집짐승 옮긴이)을 모두 영국으로 보냈습니다.

 

아일랜드 농민에게는 자신들이 재배한(기른 옮긴이) 작물을 나눠 가질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작은 텃밭, 그리고 거기서 나온 감자뿐이었습니다.

 

불과(겨우 옮긴이) 8년 동안,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 굶주림으로 죽어 간 아일랜드 대기근(이 일이 일어난 뒤, 그 전부터 있었던 에이레 사람들의 반영[反英 : 반 영국] 감정은 더 단단하게 굳어졌고, 이 기근이 끝난 지 예순일곱 해 뒤인 서기 1919년에는 에이레 사람들이 군대를 만들어 영국에 맞서는 독립전쟁을 치렀다 옮긴이). 이 비극의 근본 원인은 감자 마름병이 아니었습니다. 식량을 나눌 권한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 ‘자원 배분의 문제였으며, 정치권력의 문제였습니다(나아가 이것은 민족문제이기도 했다. 고대와 중세와 근세, 그러니까 에이레가 독립 국가였던 때에는 아일랜드 대기근 같은 일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잉글랜드가 에이레를 점령/지배한 지 242년 뒤에 아일랜드 대기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서기 19세기에 에이레가 독립 국가였다면,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이 되는] 잉글랜드 정부와 그들의 보호를 받는 영국인/에이레의 개신교도 지주들이 에이레를 쥐어짜지 않았다면, 설사 감자 마름병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었어도, 굶어 죽어가는 에이레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에이레에서 기른 밀/귀리/호밀/보리나, 에이레 사람들이 만든 유제품이나, 에이레 사람들이 키운 소/돼지//양이 영국으로 팔려 나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으리라 옮긴이).

 

아일랜드 시민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배분할(몫에 따라 나눌 옮긴이) 권한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아일랜드 시민들은 자원 배분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일랜드 기근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유규오, 민주주의 , 15 ~ 18

 

- 민주주의 ( 작은 제목 세계적인 석학들의 민주주의 강의 .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유규오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서기 2016)에서

 

-----------------------------------------------------------------------------------------------------------------------------------------------

 

옮긴이의 말 :

 

유규오 선생을 비롯한 < 다큐프라임 - 민주주의 > 제작진(모두 교육방송[EBS]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은 아일랜드 대기근을 시민들이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갖지 못할 때 얼마나 참혹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로 소개한다.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 말고도 다른 까닭 때문에 이 비극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나 식민지배나 침략/점령을 합리화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잘못된 주장인지 알려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점령당하고 식민지의 백성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부자가 되거나, 배불리 먹거나, 편안하게 살거나, 건강하게 살거나, 존중받기는커녕, 오히려 침략자/점령군/지배자/침략자의 앞잡이에게 쥐어짜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도 자신이 힘들여 만든 먹을거리들을 지배자/침략자의 앞잡이에게 빼앗긴 나머지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고국을 떠나 멀고 먼 다른 나라로 달아나야 했던 것이(나아가 지배자/침략자가 피해자들에게 너희들이 못나서 이런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당하는 거야!” 하는 적반하장까지 일삼은 게) 이 대기근의 본질인데,

 

뉴라이트를 비롯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왜국의 식민주의자/제국주의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식민지가 되면 근대화되는 거야! 독립 국가이던 때보다 더 잘 먹고 잘살게 돼! 확실히 행복해져!”하고 우길 수 있는가?

 

에이레한국으로 바꾸고, ‘영국근대 왜국(倭國)’으로 바꾸고, ‘감자//수수/보리로 바꾸고, ‘밀과 버터호남을 비롯한 한국 곳곳에서 나온 쌀로 바꾸고, ‘영국 지주들한국에 있던 왜국 지주들로 바꾸고, ‘,아일랜드인>이 못나서 대기근이 일어났다는 영국 관리의 비난‘<조센징>은 정체되었고 바보라서 발전을 못 하고 가난하다고 비난하는 왜국 조선총독부 관리의 주장으로, ‘아일랜드 대기근대일(對日) 항전기 한국 여름지기(“농업인[農業人]”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들의 굶주림과 가난으로 바꾸면 이 이야기는 딱 한국의 근대사를 다룬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동시에 방글라데시와 (바라트의 한 주[]) 벵골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프랑스 정부에게 쥐어짜인 아이티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아가 수많은 제3 세계 나라들과 제4 세계 겨레(‘민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 때문에라도 한국 사회와 한국 학교가 아일랜드 대기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롯한) 가해자 중심 사관(史觀)에서 벗어나, 피해자 중심으로 갈마(‘역사’)를 보는 사관을 확립하고, ‘식민지는 제국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며, 따라서 제국의 침략과 정복과 점령과 착취는 문명화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주장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한 사회나 공동체나 지역이나 나라가 자신의 발전이나 개선이나 번영을 남(예를 들면, 침략자나 점령군이나 다른 나라 출신인 지배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참된 발전이나 개선이나 번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입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회나 공동체나 지역이나 나라와 (전쟁/침략/지배/압박/착취 없이) 평등하고 동등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결론을 간단하게 말하자.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영국 동인도회사의 침략/점령/지배/착취 이후에 나타난) 벵골(오늘날의 방글라데시 공화국과 바라트 벵골 주를 모두 합친 지역)의 가난은 반드시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실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 단기 4356년 음력 714일에, 국치일에, 아일랜드 대기근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그리고 우리 나라[대한제국]가 독립을 완전히 잃고 식민지가 된 날에, 다른 나라가 식민지가 되어서 겪은 괴로움을 살펴보는 것은 뜻 있는 일이자, 우리 근대사를 객관적으로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혈한국인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