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24시간 사회

개마두리 2024. 5. 24. 21:31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본래는 미국 뉴욕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한국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도시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손색없다.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는 물론이고(말할 것도 없고 옮긴이), 카페, 노래방, 편의점, 식당, 야시장, 숙박 시설, 패스트푸드점, 빨래방, 음식 배달 업체, 찜질방, 헬스클럽, 피시방(PC옮긴이), 당구장, 영화관 등이 불야성을 이룬다.

 

지하철은 새벽 1시까지, 버스는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운행한다(서기 2017년의 상황이 이랬다는 이야기다 옮긴이).

 

입시 학원도 새벽까지 불을 밝힌다.

 

불 꺼지지 않는 곳은 길거리만이 아니다. 집에서도 사람들은 한밤중에 인터넷(순수한 배달말로는 누리그물’ - 옮긴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낮에 학교나 직장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일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처리하느라 바쁘다.

 

이처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사회를 ‘24시간 사회라고 한다. ‘24시간 사회라는 말을 들으면,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고 언뜻 생각할 수 있다.

 

물론(말할 것도 없이 옮긴이) 친구들(동무들 옮긴이)과 밤새워 노는 일은 즐겁다. 자기 시간 운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아무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 한밤중에 작업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한밤중에 일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일하는 것은 자의라기보다 생계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한밤중의 휘황찬란한 빛과 왁자지껄한 소음이 그 자체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야 노동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인간의 거의 모든 호르몬은 24시간 동안 리듬에 따라 분비되고, 호르몬 작용은 체온, 혈압, 소변, 소화 등을 조절한다.

 

심야 노동은 신체 리듬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는 만성적인 수면 장애, 식욕 부진, 소화 불량, 우울증, 뇌혈관계 질환 등을 불러올 수 있다. 24시간 문을 여는 데는 연속 2교대 근무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는데, 야간 교대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관(IARC)이 지정한 2A 등급 발암 물질(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개연성이 있는 정도)에 해당한다. 피로에 시달리는 심야 노동자들은 언제라도 질병이나 건강 문제로 나락에 떨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24시간 사회는 시장 확대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무한 확대를 추구하는데, 그 확대는 공간적으로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이루어진다. 여기서 시간적 확대‘24시간 사회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밤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서부 개척 시대는 미국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미국 원주민이나 메히코 사람들을 모욕하는 이름이므로, ‘서부 시대라는 말을 써야 한다 옮긴이)변경(邊境.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과 같다.

 

(서기 옮긴이) 19세기 후반 (미국의 옮긴이) 백인들이 서부로 지배 영역을 넓혀 간 것처럼, 시장은 ‘(사람들의 옮긴이) 밤을 식민지화해새로운 자원과 이윤 창출의 공급처로 삼는다.

 

24시간 사회의 본질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소비다. 그런 소비를 가능하게 하려면 심야에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심야 노동자가 많을수록 야간 시장은 독자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도 먹어야 하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며,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적 시장 확대세계화로 나타난다. 지금은 세계 단일 시장이다. 이 점도 24시간 사회를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온갖 물자가 국경 없이 실시간으로 교환되기에,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지구 반대편에 거래처가 있다면, 거기가 낮일 때 여기는 밤이다).

 

24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IT 기기다. 그런 기기들은 언제 어디서든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퇴근해도 퇴근한 것이 아니다. 긴급한 일이 생기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때 회사가 야간 수당을 (따로 옮긴이) 주는 것도 아니다. IT 기기는 퇴근 후의 노동 착취를 가능하게 한다. 24시간 사회의 등장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 박민영(문화 평론가)의 글이자, 고교 독서 평설 지 제310( 서기 2017년 양력 1월호 )의 기사인 피로 사회 사는 것이 왜 이리 피곤할까? 에서

 

- 단기 4357년 음력 417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