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재벌가의 탐욕, 나라경제 죽인다

개마두리 2012. 3. 17. 14:27

 

빵집, 순대집, 라면집, 자동차 정비업소, 동네 구멍가게, 커피점, 명품 브랜드 수입 등등, 주위를 둘러보고 돈 될 것 같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는 재벌가 자녀들. 자기 아버지가 하는 거대 모그룹의 일감을 싹쓸이해 몰아줘 자식들이 손쉽게 떼돈을 벌 수 있는 신나는 일도 이들 재벌가 부자(父子)들이 놓칠 리 없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파하는 우리나라의 재벌가들.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같이 읽던 그림동화책 ‘탐욕스러운 비단구렁이’(The Greedy Python)가 자꾸 생각난다.

 

어느 정글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비단구렁이가 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뭐든 먹어치웠다. 간식거리도 안 되는 조그만 쥐새끼부터 집채보다 더 큰 코끼리까지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집어삼켰다. 몸통은 점점 더 커졌고 주위의 것들은 보이는 족족 더 빨리, 더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이렇게 다 집어삼키고 나니 이제는 주위에 더 먹을 게 없어졌다.

 

며칠을 굶었다. 배는 점점 더 고파지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을 찾아 몇날 며칠을 눈에 불을 켜고 정글 안을 열심히 휘젖고 다니는데, 아 저기 맛있게 보이는 크고 긴 고깃덩어리가 보인다. 비단구렁이는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잽싸게 달려들어 그 고깃덩어리를 덥석 물고 삼키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먹는 먹이라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냠냠 쩝쩝 행복해하며 열심히 그 고깃덩어리를 삼켰다. 그렇게 한참 먹고 있는데 아 갑자기 자기 뒤통수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탐욕스런 비단구렁이는 이렇게 꼬리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자기 몸을 먹어치웠다는 게 이 동화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재벌 가문들, 창업자로부터 친손, 외손 대충 3대를 내려왔으니 우리나라에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재벌가는 줄잡아 200~300은 더 될 것이다. 이들도 당연히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을 테고, 재력 있는 가문의 자식들이니 이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누구보다 더 클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왜 이들은 오직 돈만 알고, 돈으로 성공하는 것만이 성공인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같이 돈을 더 못 벌어 혈안이 되어 있을까. 돈만을 성공의 척도로 삼으니 기득권을 이용해 돈을 더 벌고, 또 돈을 더 벌기 위해 돈으로 기득권을 더 단단하게 한다. 왜 이들 가문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돈밖에 모르게 키웠을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도 돈밖에 없기 때문일까?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이 세상에는 돈 말고도 의미있는 일이 너무 많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은 아니다. 훌륭한 기업을 키우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떡볶이, 해외명품 수입, 동네 구멍가게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 계획은 아니었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돈벌이 말고도 많이 있다. “아버님, 제 몫의 재산을 주시면 저는 그 돈으로 어려운 예술가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병원을 여러 개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의술도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의 그 많은 재벌 가문에는 이런 자식들을 볼 수 없는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되고, 돈만이 성공이라고 가르치는 재벌가의 가정교육, 우리 재벌가의 탐욕스런 천박성이 우리 경제를 죽인다. 재벌가의 번식률이 우리 경제의 팽창속도를 앞설 테니 재벌가가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먹을거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재벌가 자녀들은 점점 더 모험적인 사업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재벌가의 천박한 탐욕은 그 끝을 모르니 그 엄청난 자금력과 모그룹의 힘을 가지고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울 것이다. 먹거리를 빼앗고 기술을 탈취해 중소기업을 고사시킬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생태계를 초토화시켜 업을 세우는 일(기업)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재벌들이 자신들마저 잡아먹는 날이 올 것이다. 탐욕스러운 비단구렁이가 자기 몸을 다 씹어삼키고 사라지듯이.

 

막을 방법은 없나? 당연히 있다. 99%가 힘을 합치면.

 

- 이동걸(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한겨레』서기 2012년 2월 2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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