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임금님 나오는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

개마두리 2012. 3. 28. 23:00

 

- [이여영 칼럼] 나라면 사랑에 빠지기 전에 왕실 폐지론자가 됐을 수도

 

- 이여영(프리랜스 기자)yiyoyong@naver.com

 

요즘 인기라는 <더킹투하츠>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잔잔한 재미가 쏠쏠합니다. 언론들은 극중 김항아(하지원 분)가 한국의 유명 남자 연예인에 대해 촌평한 부분에 주목했죠. 특히 <시크릿가든>에서 하지원의 상대역이었던 현빈에 대한 언급은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빈이, 군대 간 지 1년밖에 안 됐다. 해병대다. 최고의 실력이다.”

 

모든 드라마는 허구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허구라는 장치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현재까지 조선 왕가가 살아남았다는 설정입니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아니라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가정입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허구를 떡 하니 실제인 것처럼 전제하고 나면, 실은 거칠 것이 없어집니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어떤 설정을 하고, 주역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다 이해해줄 태세가 됩니다. 어차피 다 허구라는 것이 명백하니까요. 마음을 열고 드라마 전개나 캐릭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가 가진 최고의 장점일 것입니다. 제작자나 PD, 작가 모두가 입헌군주제라는 배경을 좋아하는 절대적 이유겠죠.

 

그런데 입헌군주제 드라마가 계속돼다 보니 단점도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궁 1·2>, <마이프린세스>, 그리고 이번 <더킹투하츠>까지 모든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경향성입니다. 그것도 그냥 단점이 아니라 치명적 결함입니다. 일부의 지적처럼 식상한 스토리 전개가 아닙니다. 저는 식상한 스토리는 오히려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첫 회부터 두 주인공이 어려운 여건을 이겨낸 후의 행복한 결말을 예정합니다.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즐기듯, 로맨틱 코미디의 빤한 결말에는 싫증을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광해야 합니다. 그것이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이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가 정말 불편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지나치게 불손하거나 불편한 진실이 그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첫째, 현재를 입헌군주제로 가상하자면 조선시대와 그 주역인 로열패밀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모든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의 주역은 이씨입니다. <더킹투하츠>에서 이승기는 이재하로 등장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선을 이끈 이씨 왕가는 어땠습니까? 5백년 조선 역사에서 정유재란 이후 후기 3백년은 무능의 극치입니다. 왕가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외척과 당쟁을 일삼는 측근들의 볼모가 됐습니다. 관료들은 부패했고, 선비와 양반들은 무책임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다수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물론 중흥을 시도한 왕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정조는 조선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정조에 관한 소설과 드라마, 영화가 그토록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죠. 정사와 상관 없이, 독살설이 끊임 없이 재생산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건 현재의 못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던 고 3시절의 빛나는 어느 한 때를 수시로 회상하는 것에 다를 바 없습니다.

 

입헌군주제를 그리는 몇몇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개혁 의지를 회고하기도 합니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강탈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입헌군주제를 꿈꿨을지 모른다는 가정이죠. 1898년 있었던 중추원 개편 계획은 분명히 오늘날 의회를 연상하게 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해 그가 선포한 대한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라기보다는 시대착오적인 왕권 국가였습니다. 물론 일제에 맞선 상징적 저항이었죠. 청나라의 예에서 보듯, 당시 아시아 국가들의 자주적 근대화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멸망을 온전히 일제의 강압 탓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조선의 체제 모순과 조선을 이끈 왕가의 무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조선이 수명을 다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이씨 왕가가 존속하는 상황을 그리워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왕가의 부흥을 가정할 만한 이유는 있습니다. 최근 우리 정치와 사회 상황이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할 존재를 갈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선 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동과 서,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로 완전히 양분돼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런 갈등을 완충해줄 존재로 왕과 왕실을 상상해보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1백년간 단절됐던 왕실의 부활은 얼마나 드라마틱합니까? 그것이 입헌군주제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이죠.

 

하지만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 대부분은 그런 가정을 지나치게 미화합니다. 비슷한 드라마가 계속되면서 역사에 대해 잘 모르거나 역사의식이 희박한 젊은 세대를 호도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저는 그 점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불쾌합니다. 현존하는 입헌군주제 국가 대부분은 이른바 근대 이전 전성기를 맞보고, 유능한 왕가를 중심으로 현대화를 이룬 국가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5백년간 조선을 이끈 이씨 왕가는 국가 찬탈과 동족 상잔의 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마땅합니다.

 

그보다 더욱 불편한 진실은 다른 데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로맨틱 코미디인 점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로맨틱 코미디에는 백마 탄 기사가 등장합니다. 그간 우리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역들은 대부분 재벌가의 2, 3세들이었죠. 그들이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민가 여성들과의 사랑을 이룬다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뤘습니다. 거꾸로 가난하지만 영리한 남성들이 부잣집 따님들의 간택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시청자들은 경제 발전 이래 거듭돼온 이런 스토리 구조에 싫증을 느껴왔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새로운 유형의 왕자를 갈구합니다. 그러자면 사라진 왕실의 왕자를 가상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그럴 듯합니다. 재벌 2, 3세에 비해 왕자는 얼마나 그럴싸한 존재입니까? 졸부의 자녀들에 비해 혈통의 순수성까지 간직한 이들이니까 말이죠. 비록 가상이지만 그들이 존재야말로 우리 젊은 세대, 그 가운데서도 상당수 여성들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꿈을 꾸고 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역사 의식의 부재는 둘째치고, 현실을 외면한 팬터지를 상상한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능한 과거 이씨 왕가가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런 입헌군주제 가상 드라마 작가나 PD, 제작진의 꿈을 공유한다고 해보죠. 저는 적극적인 왕실 폐지론자가 됐을 겁니다. 그 가운데 잘 생긴 왕자가 있어, 젊은 여성들에게 영국 왕실의 아시아 버전을 꿈꾸게 해준다고 쳐보죠. 그래도 저는 그와의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그에게 저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불행에 대해 따져 묻겠습니다.

 

―『미디어 오늘』서기 2012년 3월 28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