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무조건 '20대 여성'을 유혹하라!"

개마두리 2015. 6. 7. 16:30

 

- ['레진'은 어떻게 성공했나 ] 여성 유혹하는 스토리텔링

 

- 성현석 기자

 

- 날짜 : 2015.05.28

 

"'레진'은 어떻게 성공했나" 연재 마지막 회다. '레진코믹스 모델'의 성공은, 소수 취향 콘텐츠로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예컨대 '레진코믹스' 연재만화 가운데 <신의 속도>라는 게 있다. '펜싱'을 소재로 한 만화다. 작가가 비인기 종목을 다루는 작품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콘텐츠에 직접 돈을 내는 구조와 관계가 있다.

 

'콘텐츠 유료화' 모델은 전에도 있었다. 거의 전멸했다. 굳이 '레진코믹스 모델'이 성공한 이유로, 앞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신인 작가까지 아우르는 보상 구조, 다른 하나는 '매끄러운 몰입'을 가능케 하는 기술 투자였다.

 

그럼, 경험 많은 개발자를 대거 영입하고 작가에게 마구 퍼주면 다 성공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이번에 다룰 주제는 '유료화'에 어울리는 '콘텐츠 전략'이다. 안타깝지만, 유료화 모델에 어울리는 콘텐츠는 따로 있다.

 

조회 수 60%가 남성, 유료 결제 60%가 여성"

 

"안드로이드는 여대생들이 가장 많이 쓴다."

 

'레진코믹스' 서비스 시작 직후, 창업자 '레진'<슬로우 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왜 안드로이드 폰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실제로 안드로이드 폰을 여대생이 많이 쓰는지는 모르겠다. 대답의 요점은, 만화 콘텐츠의 주 소비자 집단으로 젊은 여성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게 먹혔다.

 

레진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레진코믹스' 유료 결제를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은 20대 초반 여성이다. 그 다음이 30대 중반 남성이다. '레진코믹스' 방문자 가운데 60%가 남성이다. 그런데 유료 결제 회원 가운데선 60%가 여성이다. ('레진코믹스'는 회원 가입 단계에서 성별을 묻지 않는다. 이런 통계는 SNS 분석을 기초로 한 추정치라고 한다.)

 

여기서 답이 나온다. 남성은 콘텐츠에 돈을 안 쓴다. 여성을 겨냥한 콘텐츠를 생산해야 돈이 된다. 이른바 '선정성' 논란까지 고려하면 답이 더 뚜렷해진다. 남성에게 선정적으로 다가가는 콘텐츠보다는, 여성에게 선정적인 콘텐츠가 비난을 덜 산다.

 

이성업 레진엔터테인먼트 이사는 "20대 여성이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럴 마케팅'이란, 일종의 '입소문'인데,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콘텐츠 상품이 성공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이 이사는 "10대 여성은 20대 여성을 동경한다. 30~40대 여성은 20대 여성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모든 세대 남성은 20대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20대 여성이 주로 소비하고 '입소문' 내는 콘텐츠라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

 

'레진코믹스' 서비스를 초기부터 이용했던 이들은, '확실히 여성 취향'이었다고 평가했다. 레진엔터테인먼트 측도 동의했다. 여성 취향 작품에 전략적으로 공을 들였다는 게다. 다만 최근 들어선, 남성 취향 작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승전결 확실해야 살아남는다"

 

두 번째로 꼽을 대목은,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다. 이성업 이사는 "기승전결 구조가 확실한 작품이라야 '유료화'에 성공한다"고 말했다. '레진코믹스'는 연재 만화의 앞부분을 무료로 공개한다. 다음 내용은 일정 기간 뒤에 무료로 풀린다.

 

그걸 먼저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끔 만드는 작가라야, '유료화 모델'에서 성공한다. 포털 웹툰과 달리, '레진코믹스'에는 댓글 기능이 없다. 다음 이야기를 돈 내고 본 독자들이 '스포일러'를 남기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야기 짜임새'에 약하고 '묘사'에만 강한 작가는 성공하기 힘든 구조다.

 

실제로 '레진코믹스'에서 조회 수가 많은 작품과 유료 결제가 활발한 작품이 완전히 엇갈린다. 조회 수는 높지만, 유료 결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작품도 있다. 정반대 경우도 있다. '레진코믹스' 운영진은 최초로 유료 결제를 한 회원을 유심히 관찰한다.

 

유료 결제 문턱은 처음 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번 문턱을 넘으면, 돈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첫 유료 결제를 이끌어낸 작품은 대체로 '이야기 짜임새'가 탄탄한 경향이 있다. 이런 작품을 그리면, 조회 수가 적어도 돈을 번다. 포털 웹툰에선 반대였다. 길고 탄탄한 이야기보다, 단막극처럼 호흡이 짧은 작품을 그리는 작가가 대접 받았다.

 

웹툰 해외 진출 위한 필수 조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허영만 화백을 비롯한 만화 작가들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이날 "만화나 웹툰의 해외 진출 등에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망 산업이 된 웹툰'의 위상을 보여준 사건이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 웹툰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는 이미 활발하다. '레진코믹스' 외에도 비슷한 사업을 하려는 기업이 꽤 있다.

 

이성업 이사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작품'을 거듭 강조했는데, 이는 '해외 진출'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포털 조회 수 최상위권을 기록한 웹툰이 있다. 미국에서 웹툰 사업을 하려는 기업가가, 이 작품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는 번역가를 고용해 그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런데 영어로 읽으니, 도무지 맛이 안 났다. 결국 해당 웹툰의 미국 서비스를 포기했다.

 

당연한 일이다. 만화는 생략의 예술이다. 소설처럼 글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많은 메시지가 그림에 녹아 있다. 대사만 번역해선, 이해가 불가능하다. 특히 웹툰은 대중문화 요소를 많이 끌어들인다. 문화가 다른 조건에선 먹히기 어렵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한 작품'은 외국에서도 성공한다. 번역이 조금 어설퍼도 말이다. 여기에 독특하고 섬세한 그림체까지 곁들여지면, 필승이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 웹툰이 해외에서도 대접받으려면, 유료 결제 시장에서 검증받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못 견디게끔 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작가들 말이다. '조회 수'가 곧 돈이 되는, 포털 중심의 콘텐츠 생태계에선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만화 작가들을 만난 박 대통령이 이 대목까지 고민했기를 바란다.

 

*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753

 

(<프레시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