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술 배달 허용이 국민불편 해소라고?

개마두리 2016. 7. 13. 10:40


- 조홍준(울산의대 교수)의 글


국세청은 7월 7일 음식을 배달할 때 술 배달도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술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장소인 경기장에서도 술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 규제완화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들은 내 첫 반응은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에 술과 관련해서 더 완화할 규제가 남아 있었어?”였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1년에 1인당 12.3리터로 191개국 중 15위를 차지했다. 15살 이상인 국민이 20도 소주를 약 170병 소비하는 양인데, 이는 술로 유명한 아일랜드(에이레 - 옮긴이), 프랑스, 독일보다 많다. 술이 폭력과 범죄 등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청소년과 청년에서 더 심각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4년에 592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의 12.4%를 차지한다. 술은 세계적으로 질병 부담을 일으키는 순위가 8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술이 심장질환, 중풍, 당뇨는 물론, 식도암, 간암, 유방암, 대장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술 소비가 많은 것은 술에 대한 규제가 아주 미흡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가장 효과적인 술 소비 억제 정책으로 가격 인상, 광고 금지, 그리고 술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성을 줄이는 정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우리 현실은 참담하다. 술 가격은 아주 낮아서 1500원이면 소주 한 병을 살 수 있다. 술 광고에 대한 규제는 매우 느슨하다. 17도 이상 술의 티브이 광고는 금지되어 있으나, 아이피티브이(IPTV), 인터넷(누리그물 - 옮긴이), 유튜브 등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술 판매는 허가제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모든 식당은 물론 휴게소에서도 가능하다. 편의점에서는 하루 24시간 맥주는 물론, 위스키도 살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도수가 높은 술은 전문판매점에서만 시간을 정해서 판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술 규제의 후진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의 술 판매 규제완화 정책 시행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민, 특히 청소년과 청년의 술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한 폭력 등 사회문제, 건강문제가 더 커질 것이다. 현재 미성년자의 술 구입은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으나, 고등학생의 절반 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술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음식배달 때 술 판매를 허용하면 미성년자의 나이 확인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청소년의 음주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경기장에서의 음주 증가는 폭력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브라질(브라‘실’ - 옮긴이)에서는 축구 경기장에서의 술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술 규제정책은 이미 지나치게 느슨하다. 규제완화란 이름 아래 이를 더 완화하려는 시도를 그만두라. 이는 술 회사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의사 출신인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묻고 싶다. 보건복지부에는 국민건강증진법상 술 소비를 줄여서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런 반(反)건강정책에 대해 한마디도 못 한다면 왜 그 자리에 있는가.


―『한겨레』서기 2016년 7월 12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