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는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마두리 2016. 7. 8. 14:41


- 패트릭 콕번(『인디펜던트』 중동 전문기자)의 글 


- 날짜 : 2016.07.08

  
- 신자유주의, 군사 개입, 자원의 저주, 그리고 파편화된 세계


아래는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서西아시아 - 옮긴이) 지역 전문기자 패트릭 콕번이 미국의 진보 성향 웹사이트인 <톰 디스패치>에 최근 기고한 글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해체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통합의 지향을 담은 '하나의 유럽'은 유럽연합의 중심국인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함으로써 해체의 징표가 되었다. 이민자들과 난민 문제 때문이라고들 한다.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난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돌게 된 이유 역시 국가와 사회의 해체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중동이다. 20세기에 쟁쟁했던 나라들이 끝도 없고 승자와 패자도 없는 전쟁에 휘말려있다. 중동 국가들의 몰락은 서방의 군사 개입과 함께 밀려든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은 탓이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정치 엘리트들, 그에 기생하는 기업가들이 국부를 착취하는 사이, 보통사람들의 빈곤은 더해갔다. 


서방이 개입한 전쟁과 자유시장 경제가 몰고 온 빈부 갈등을 토양 삼아 자라난 테러 집단은 부메랑이 되어 전세계 민간인들을 노린다. 이 괴물들을 누가 키웠나? 2003년부터 시작된 이라크전은, 참전의 동기도 빈약했고, 목적도 달성하지 못해 오히려 이라크 정세의 악화만 야기했다고 결론지은 영국의 '칠콧 보고서(이라크전 조사보고서)'에 일말의 답이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함께 한 이 사실상의 전쟁 범죄는 이라크와 중동을 넘어 영국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후과를 남긴다. 


냉전의 종식 이후, 지구상의 유일한 진로처럼 여겨졌던 신자유주의가 임계점에 처한 징후는, 브렉시트가 벌어진 영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활개 치는 미국에서도 나타난다. 정치와 경제를 다스리는 엘리트들이 국민들 이익을 배반했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국가의 실패다. 몇몇 경제 관료들이 골방에 모여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에 세금을 퍼붓기로 결정한 우리는 크게 다른가? 


콕번은 '해체의 시대', '불안정성의 시대'가 세계적 현상이라고 본다. 불행하게도, 널리 확산되고 있는 이 악순환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해체의 시대


우리는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보다 명백한 곳은 없다. 파키스탄에서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을 가로질러 적어도 7개 국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그리고 남(南)수단이 그곳이다.


이 전쟁들은 유난히 파괴적이다. 훗날 회복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라를 허물어버리고 있다. 시리아의 알레포, 이라크의 라마디, 예멘의 타이즈, 그리고 리비아의 벵가지 같은 도시들은 일부가, 혹은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이밖에도 적어도 세 곳에선 심각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쿠르드계 게릴라들이 터키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터키 남동부, 거의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게릴라전이 진행되고 있는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그리고 보코하람(이슬람 무장단체)이 살인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북동부와 그 인접국들이다.


이들에겐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전쟁 종식의 가능성도 없고 종국적인 승자나 패자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아프가니스탄은 사실상 1979년부터, 소말리아는 1991년부터 전쟁을 해오고 있다). 대규모 인구 이동과 격변에 처한 이 나라들은 통일 국가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데에 휘말려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24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남수단 같은 사례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유사점을 추가하자면 이 모든 나라들에서 이슬람이 지배적 종교이며, 나아가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탈레반 등을 포함한 극단적 근본주의 운동세력이 저항이나 반란의 유일한 주체라는 점이다. 현재 이들은 20세기에 이 지역에서 지배적이었던 (이집트의 나세르, 이라크의 후세인, 시리아의 아사드 등)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운동을 완전히 대체했다. 그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종교적, 민족적, 부족적 정체성으로의 회귀가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운동을 완전히 대체했고, 이들은 소수파를 박해하고 추방해 자신의 배타적인 영역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그런 과정과 (미국 주도의) 외부 군사개입에 의해 이 광활한 지역은 해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이 과정을 거의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이는 최근 미 국무부 소속 외교관 51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한 시리아 정책에 대한 항의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휴전협정을 따르게 하려면 시리아 정권을 공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교관들은 엄청나게 복잡한 갈등을 매우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아사드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즉 시리아 정부의 자국 국민들에 대한 통폭탄(barrel-bombing : 드럼통이나 원형 철제 용기에 폭발물을 채우고 공업용 베어링 등 각종 쇠붙이 조각 등을 넣은 살상무기) 투하 등 무자비한 행동이 "시리아와 주변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불안정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외교관들의 사고방식은 마치 지금도 냉전 시대이며, 여전히 소련 및 그 동맹들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지난 5년 동안 드러난 모든 증거들을 외면한 채, 아사드 정권이 몰락하면,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온건 반대파가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리아 내의 반군 대부분이 IS나 알카에다 분파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이 실패였다는 점이 지금은 폭넓게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에 걸쳐 계속된 미국과 서방 동맹군의 중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군사개입이 폭력 대결을 악화시키고 국가의 해체만 가속화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독립 국가의 대규모 소멸


최근 국가 창설 2주년을 자축하고 있는 IS는 혼돈과 갈등의 시대가 낳은 기괴한 산물이다. 이 괴물 같은 존재들은 결국 부패하고 신뢰할 수 없는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대중동 지역의 심각한 사회 분열의 징후다. IS의 봉기,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다양한 변종들의 창궐은 이른바 온건 반대 세력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라크 군대와 경찰을 예로 들어 보자. 지난 2014년 6월, 수 천 명의 IS 전사들이 이라크에서 제2의 도시인 모술을 장악했다. 공식적으로 군인 35만 명과 경찰 66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라크 정부는 변변한 전투 한 번 치르지 못한 채 수 천 명의 IS 전사들에게 모술을 내주었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재 미국의 막강 화력과 동맹군의 공습 지원을 받고 있는 이라크 군대와 경찰, 약 2만 명의 시아파 민병대는 바그다드 서쪽으로 40마일 거리에 위치한 도시 팔루자 탈환 적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맞서는 IS 전사들은 겨우 900명에 불과하다. 나아가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정적으로 격퇴된 듯 했던 탈레반이 재창궐한 이유도 그들이 인기 있어서라기보다는 아프간 국민들이 카불의 부패한 정부를 더 경멸하기 때문이다.


민족 국가가 약화되거나 붕괴한 모든 곳에선 독재적인 지도자가 내외부의 거대한 압력에 직면해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인다. 이는 그 지역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에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나라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통합될 것으로 여겨졌다.


1950년에서 1975년 사이, 과거 식민 통치를 받던 많은 곳에선 민족주의적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자원을 집중해 강력한 독립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민족 자결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이 정권들 중 다수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나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처럼 믿기 어려운 부를 축적한 소수 일가와 그들에게 선을 댄 기업가 집단에 의해 통제되는 경찰국가로 변모했다.


최근 몇 년간 그 나라들 역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개방됐으며, 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존재했던 기존의 사회적 계약을 파괴했다. 시리아(공식 국호 ‘수리야’ - 옮긴이)를 보자. 시리아 지방 도시와 시골 마을들이 한때 알 아사드 일가의 바트당 정권을 지지했던 이유는 그들이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필품 가격을 낮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즉 비록 독재정권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했기 때문에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그 시골 마을들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는 시장의 힘 앞에 버려졌다. 그런 지역들이 2011년 시리아 민중 봉기의 근간이 되었다. 이와 함께 1970년대에 지역 산유국들의 부와 위세를 증진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기관들은 단결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질문을 해보자. 왜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그 너머로 독립 국가의 "대규모 소멸"이 발생하는가? 서방 정치인들과 언론은 그 나라들을 "실패한 국가"라고 말한다. 이 용어에 내포된 뜻은 과정이 자멸적이라는 것이다. 즉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를 비롯해 지금 "실패"라는 꼬리표가 붙은 많은 나라들의 기존 정권이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가다피 등) 붕괴한 것은 서방이 지원하는 반대운동들이 워싱턴과 나토의 군사적 개입에 힘입어 정권을 타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반정부세력이 권력을 잡고 난 후 이들 세력은 중앙집권적 정부를 구성하거나 통치 영역 내에서 폭력을 독점하기에는(즉 국가를 안정화하기에는) 너무 허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과정은 2003년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을 타도하고 집권 바트당 및 그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시작됐다.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건 후세인과 가다피는 실제 이상으로 악마화됐으며 그들이 통치한 나라의 모든 부족, 종파,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이들의 제거 이후 본격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독재정부에 반대하고 서구의 개입에 반대하는 세력은 왜 이슬람주의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며,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반군을 장악한 이슬람주의 운동은 왜 유난히도 폭력적이고 퇴행적이고 종파적인가? 바꿔 말하자면, (미국 등 서방에 고분고분한) 이른바 온건 반대 세력은 추종자들을 거의 확보하기 못한 반면, IS 등 과격 집단들은 어떻게 조직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걸까? 2014년 여름 IS 군대가 이라크 북부를 휩쓸었을 때, 군복과 무기를 버리고 북부 도시에서 도망친 이라크 병사들은 자기들의 탈영을 이런 비웃음으로 정당화했다. "(당시 총리였던) 알 말리키를 위해 죽으라고? 내가 미쳤냐!"


이슬람 저항운동의 봉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사회주의자, 세속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의 저항 운동이 (후세인, 아사드 등) 구체제 군대에 의해 분쇄된 반면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와 시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 역시 야만적인 핍박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지배적인 저항세력이다. 이 종교적 저항운동은 정부를 반대할 만큼 강하지만, 정부를 대체할 정도로 (즉 스스로 독립국가를 유지할 정도로) 강한 것 같지는 않다.


▶ 승리하기엔 너무 약하고 패배하기엔 너무 강하다


국가의 붕괴에 대한 많은 이유가 존재하고 지역마다 이유가 다소 다르기도 하지만, 한 가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현상은 그자체로서 세계 곳곳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현 시대에 국가가 실패한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25년 전에 발생한 냉전의 종식이 그 출발점이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뿐만 아니라 소련의 해체로 출현한 신생 러시아 역시 "실패한 국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자기편의 현지 대리 권력을 지키고 상대방편을 전복시키려 했다. 그것이 수퍼 파워의 위신을 지키는 방편이었다. 이에 따라 냉전 시기 중동 지역의 국가 지도자들은 모스크바와 워싱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자국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면서 이는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경제의 승리는 혼란스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이 됐다. 그것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시리아를 살펴보자. 민주적 책임성도 없고 법에 의한 지배조차 없던 이 나라에서 자유 시장의 확산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 나라를 지배하는 일가와 연결된 금권정치가들은 잠재적 수익이 예상되는 모든 것을 점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반면, 시리아의 가난한 마을과 지방 소도시, 도시의 빈민가에 사는 거주민들은 고통에 신음하며 일자리와 싸구려 음식을 찾아 헤맸다. 이 지역들이 2011년 시리아 민중 봉기의 본거지가 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심지어 무크하바라트(시리아 정보기관) 기관원이나 비밀경찰조차 한 달에 200~300달러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반면, 국가는 국부 착취의 도구로 전락했다.


국가 재산을 약탈하거나 팔아치우는 일들이 최근 이 지역을 관통해 확산되고 있다.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전횡을 일삼아온 이집트(공식 국호 ‘미스르’ - 옮긴이)의 새 대통령 압델 파타 알 시시 장군이 전형적이다. 한때 (나세르라는) 세계의 모범적인 민족주의 지도자가 이끌었던 이 나라에서, 시시는 올해 4월 (자국 영토인) 홍해의 두 섬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양도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집트 법원은 시시의 이런 결정을 최근 기각했다.) 이집트는 사우디에 자금 지원과 원조를 의존하고 있다.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집트인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그런 정책은 중동의 권력 균형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세속적, 민족주의적 국가들이 퇴행적, 봉건적인 왕정국가들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는 세속적 민족주의 정부였으며 한때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정부)였다. 이들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나 걸프만의 왕정국가에 대응해 균형점을 잡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속적 지배자들이 힘을 잃으면서 수니파 근본주의 독재자들의 권력과 영향력이 증가했다. 지난 2011년 중동 지역 전역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 혁명이 일어난 이면에는 석유 부국인 걸프의 절대왕정들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반혁명도 있었다. 사우디 등 왕정국가들은 시리아, 리비아 등이 민주적 세속 정권으로 교체되는 걸 결코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이에 더해 이 나라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석유와 가스, 광물 등 천연 자원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 및 이에 기생하는 세력들에 의한) 상습적인 도둑질이 일어난다. 이 나라들은 이 같은 "자원의 저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즉 국가는 천연 자원을 팔아 얻는 수익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론적으로 이는 전체 국민들에게 상당히 품위 있는 생활수준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금전적 이득에 눈이 먼 독재 정권들은 국민들의 생활은 외면한 채 기괴할 정도로 부패해 가고 있다. 국가 권력의 목표는 오직 하나, 국부를 최대한 착복하는 것이다. 이 나라들에선 현재 정권과 커넥션이 있는 지역 부호들의 요트가 오염물 넘실대는 빈민가로 둘러싸인 항구에 떠다닌다. 이런 나라에서 정치의 초점은 국가 수입을 착복하고 그걸 가능한 한 빨리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엘리트들 간의 싸움과 모략에 맞춰진다.


이는 앙골라에서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많은 나라들에서 경제적, 정치적으로 일상적인 패턴이 됐다. 그러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선 다소 다른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외부 세계는 이 차이를 잘 모르고 있다.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하고 약탈적 엘리트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국민들이 최소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권력을 지지하는 대가로 공공 영역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후원국가(patronage states)로 기능하고 있다.


인구가 3300만 명인 이라크의 경우, 무려 700만 명이 공무원 급여 명단에 올라 있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라크 정부는 임금과 연금 명목으로 한 달에 4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석유자원 수입을 국민들에게 분배하는 이 투박한 방식에 대해 서구 평론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종종 부정하다고 비난한다. 그들은 보통 이런 일자리 수를 줄이라고 권고하지만, 이는 엘리트들이 착복하는 엄청난 자원 수익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즉 지배 엘리트들이 모든 자원 수익을 독점하지 않고 일부는 국민들의 생활 안정에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가격이 바닥을 치면 이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최근 (세계 최대의 석유 자원 부국이라는) 사우디 왕가가 국민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삭감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이 같은 사례들은 증가하는 추세다. 


신자유주의는 한때 세속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로 가는 첩경이라고 믿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자원의 저주, 그리고 워싱턴과 동맹국들에 의한 반복적인 군사개입이 결합되어 자유시장 경제는 중동을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독려한 21세기 신자유주의는 불평등한 사회를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었으며 이미 부패한 정권을 약탈 기계가 되도록 부추겼다. 당연히 이것이 IS나 다른 급진적 반대세력들이 현상 유지에 성공하도록 만드는 공식이다. 이 세력들은 시리아 동부나 리비아 동부 같은 가난하고 방치된 지역에서 지지 세력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불안정성의 진행 과정이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불안정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 현재는 (유럽연합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는) 발칸 지역과 동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유럽 통합을 말하지 않고 영국의 탈퇴로 인한 유럽 연합의 완전한 붕괴를 어떻게 막을지를 얘기한다.


영국인들의 다수가 브렉시트(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나가는 일 - 옮긴이)에 투표한 이유는 중동과 유사하다. 마가렛 대처 총리 이래 정부가 추진한 자유시장 경제 정책이 빈부 격차를 벌렸고 부자 도시와 나머지 지역의 차이를 벌려놓았다. 영국은 잘 나갔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영국인들은 번영을 나누어 갖지 못했다. 영국 기득권층이 거의 대부분 주장한 유럽 연합의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자는 선택지는 현상 유지에 항거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탈퇴"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분노는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보다 보편적이다.


미국은 수퍼 파워로 남아있지만, 과거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미국 역시 세계적 국면의 긴장을 느끼고 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정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강하지만, 시리아에서처럼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거나, 리비아에서처럼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몰락시킨 정권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한 이라크 정치인은 자기 나라의 문제에 대해 정치와 (저항)운동이 서로 "승리하기엔 너무 약하고 패배하기엔 너무 강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모든 지역에서 증가하는 패턴이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여기엔 승패 없는 전쟁이 끝없이 순환할 가능성과 이미 시작된 불안정성도 더불어 전파된다.


(번역 = 임경구 기자)


* 퍼온 곳(나온 곳)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786


(<프레시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