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게르만 인이나 한니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 때문에 무너지리라.”
- 호라티우스
* 호라티우스 :
본명은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락쿠스(Quintus Horatius Flaccus). 고대 로마의 시인이다. 서기전 65년 이탈리아 반도의 남부인 ‘베누시아’에서 해방노예의 아들로 태어났고, 서기전 8년에 세상을 떠났다. 쓴 책으로는『서정시집』과『시론(Ars poetica)』이 있다.
로마에서 교육을 받고 아테네로 건너가 아카데미아의 학원에서 공부하였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로마의 내란이 헬라스에도 파급되자 공화제(共和制) 옹호를 내세운 마르쿠스 브루투스 진영에 가담하여 필리피(Philippi) 군단사령관이 되어 싸웠으나 안토니우스군에 패하였다.
그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은사(恩赦.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죄인을 용서하고 풀어주는 일 - 옮긴이)를 받아 로마로 돌아온 뒤, 하급관리로 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시인 베르길리우스 등의 소개로 문인 보호자 마에케나스를 만났다.
이 때 그는 정치에 절망했으나, 악티움 해전무렵부터 차차 옥타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책에 공명(共鳴. [남과] 함께[共] 소리를 내다[鳴] → 남의 사상이나 느낌이나 하는 일에 공감하여 그것을 따르다 : 옮긴이)해 갔다. BC 17년의 세기제(世紀祭)에는 그가 지은 합창가가 봉납(奉納)되어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비서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거절한 것으로 전한다.
작품으로는 먼저 아르킬로쿠스를 모방한 반항과 비판의 시 《에포디》와 루키리우스의 전통을 계승한 《풍자시》 2권이 있는데, 그의 공격은 특정 개인보다 전형(典型)을 향한 문명비평적인 것이 되었으며, 또 에피쿠로스적인 슬기에 바탕을 둔 충족자(充足者)의 행복이 거론되었다.
알카이오스를 모방한 《서정시집》 4권은 최고의 기교와 정선된 언어를 동원, 여러 신(神)과 아우구스투스/친구들/주연(酒宴)/여성/전원생활 등 다채로운 주제를 노래한 대표작이다. 《서간시(書簡詩)》 2권은 인생철학이나 문학문제를 풍자시 형식으로 다룬 수상시(隨想詩)이며, 근세까지 작시법(作詩法)의 성전(聖典)이 되었던 《시론 Ars poetica》은 그 중 1편이다.
→ <두산백과>/<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옮긴이(잉걸)의 말 :
들으면 들을수록 진지해지는 말이다. 만약 “로마” 대신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을 집어넣고 “게르만 인이나 한니발” 대신 ‘라틴아메리카 인’과 ‘이슬람주의자’라는 말을 집어넣으면 딱 오늘날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될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뒤흔드는 난민 유입도 유럽연합이 수리야 내전을 부추겨 “자신의 힘”을 드러낸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고, 브렉시트도 영국 국민들 “자신의 힘”을 드러낸 투표로 결정된 것이었고, 도널드 트럼프를 새 대통령으로 찍은 것은 미국 시민들 “자신의 힘”을 드러낸 것이니까.
결국 문제는 다른 나라(또는 인종이나 민족)이 쳐들어오느냐가 아니라 나라(또는 사회)가 무너질 만큼 큰 모순을 안고 있느냐, 아니냐는 것이고, 자신이 지닌 “힘”을 똑바로 쓰느냐, 아니냐는 것인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사회)가 있기는 있을까?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덧붙이는 말 : 내가 글 이름에 “예언”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호라티우스 시인이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484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서로마가 무너지기 수백년 전에 “로마는 … 무너지리라.”고 말했다면, 일부러 그랬건 안 그랬건 그 말을 예언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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