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소설『양 같은 늑대』의 인상 깊은 구절들

개마두리 2017. 2. 5. 23:26


“원래 사랑이라는 건 질척질척한 법이야.”


- 116쪽


[나, 해랑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가지 마요. 내 옆에 있어요.]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 뜨거운 고백을 늘어놓았다. 감정에 북받쳐 터져 나오는 고백은 제대로 된 미사여구도 없이, 그저 처절할 정도의 호소만 남았다. 그 고백은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래, 요즘은 이런 게 대세지. 이제는 독자들도 사랑을 꾸며대는 것에 지쳤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마음에 담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그냥 전부 털어놓으면 되는 거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그렇게.


그리고 그 고백에 여주인공은 감격하여 닫혀 있던 마음을 활짝 열고 이렇게 외치겠지.


‘닥쳐요.’


- 129쪽 (서율이 쓴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 ‘해랑’이라니, 갑자기 순우리말인 ‘해랑’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해와 함께 하는 사람” -> “해와 함께하는 밝고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해랑’ 말이다 : 인용자)


역시 남들 일할 때 퇴근하는 게 제일 신나지 않아요? 으, 그렇지만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 퇴근해도 퇴근한 것 같지 않은 찝찝함이 좀 있다니까요.”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야행성 작가들은 이쪽 사정 안 봐주고 수시로 메시지(문자 메시지/쪽글 - 인용자) 보내오지, 뭔가 일 터졌다 하면 당장 뛰쳐나와야 하지. 아주 폰(휴대전화/휴대폰/스마트폰 - 인용자) 알림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막 벌렁벌렁 뜁니다요.”


그 말에 주희가 웃었다. 꽤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 147 ~ 148쪽


“스마트폰 이거, 아주 족쇄야, 족쇄. 문명의 발달로 우린 시간제 노예에서 종일제(온종일 일하는 - 인용자) 노예로 전락한 거라고요.”


“뭐야, 왜 우울하게 그런 소릴 해요.”


“노예 ……. 노예의 인생 ……. 난 근로계약서에 사인한 게 아냐. 노예계약서에 사인한 거야.”


- 148쪽


“너 때문에 질투도 하고, 초조해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덜 미움받을까 밤새워 고민하고, 애쓰고 …….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귀찮고 피곤해. 사람과 알아간다는 건 진짜 거지같은 일이더군.”


(중략)


“거지같은데, 그래도 꼭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아.”


- 165쪽


대학 전공을 국어국문으로 선택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 ‘돈 안 되는 직업’이라며 뜯어말렸다. 그럼에도 그 전공을 선택했던 것은, 글이 좋았고, 더 많이 읽고 싶었고, 알고 싶었고,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209쪽(‘돈 안 되는 직업’, 아니 ‘돈 안 되는 학문’인 역사학을 골라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닌 사람으로서, 이 글에 100% 공감할 수 있었다. 이 글에 ‘국어국문’ 대신 ‘역사학’을, ‘글’ 대신 ‘역사’를 집어넣고, ‘더 많이 읽고 싶었고’의 앞에 “역사책을”을 덧붙인다면 - 나아가 ‘알고 싶었고’의 앞에 “역사를”을 덧붙이고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의 앞에 “역사를 다룬 글을”이라는 글을 집어넣는다면 이건 완벽하게 내 이야기가 된다 - 인용자)


“마음이 상처 입어서 글이 써지지 않았던 거라면, 마음을 먼저 치료해줬어야죠.”


- 211쪽


“율 선배, 사람이에요. 글 쓰는 기계 같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작품 못 읽어  봤어요? 그런 감정이, 사고가, 그냥 글이나 줄창 쓰라고 하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배는?”


- 212쪽


“나를 사랑해요?”


(중략)


“모르겠어.”


(중략)


“너를 향한 마음을 일개 단어로 묶어두는 건 너무 이상한 것 같아. 그저 네가 그립고, 간절하고, 보고 싶고 그래. 마음은 언제나 수만 가지의 색깔로 요동치는데, 그걸 정의할 단어가 ‘사랑’뿐이라면 그건 너무 아까워.”


- 226쪽


“어째서 이렇게나 고독한 사람들인 걸까요. 당신도, 나도.”


- 227쪽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들 둘 다 한없이 외롭고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 228쪽


작가가 독자를 고소한다는 건, 작가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해도 오히려 작가 쪽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남긴다.


- 240~241쪽


“인간이 왜 사회적 동물인 줄 아나? 내 부족한 부분을 타인이 채워주기 때문이야. 무리 지어 살 수밖에 없는 동물들이라는 거지. 혼자 다 잘난 놈은, 그게 인간이냐. 사이보그지.”


- 243쪽


“혹시 연재 사이트에서 판타지 소설 하나라도 읽어본 적 있어?”


“여성향 판타지라면 …….”


“그거 말고 남성향 말이야. 소설에 달린 댓글 보면 아주 난리도 아니야. 말 막 하는 놈들이 꼭 하나 이상씩은 붙어 있거든. 여기서 오래 살아남는 놈은 글 잘 쓰는 놈이 아니야. 멘탈(Mental. 정신 - 인용자)이 단단한 놈이지.


- 243쪽


“음 ……. 아니, 사람을 골로 보낼 방법을 알려달라는 게 아닌데요.”


“스토커를 만나면 무찌를 각오로 덤벼야지. 저쪽이 골로 안 가면 이쪽이 골로 가는데.”


“대표님은 대체 얼마나 험한 세상에서 살아오셨던 건가요.”


“자본주의 정글만큼 위험한 세상은 없어.”


- 245쪽


- 작가는 분량에 맞춰 글을 쓰지 않는다. 마감에 맞춰 글을 쓰지.


- 246쪽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밤공기는 피부에 스며들 듯 가벼웠다. 어디선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언덕 아래로는 불야성의 도시가 유리 상자 속의 장난감처럼 반짝인다.


도시는 이렇게나 아름답다. 그리고 모든 것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주희가 발견하기 전부터 계속 그대로였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에 넘쳐났다. 길가의 꽃도, 모퉁이의 작고 아담한 가게도, 담벼락 위의 고양이도.


- 250쪽


[그거 아냐. 주말 근무를 시키는 회사는 악덕 기업이야.]


- 256쪽


마음이라는 것은, 감정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알게 모르게 피어오르다가, 이렇게 갑자기 만개한 모습을 들이밀어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 258쪽


물론 편집자로서는 업무 잘하고, 눈치도 있고, 판단력도 빠른 점은 인정한다. 작품 보는 눈도 있고, 시장 분석력도 좋은 편이다. 마유라가 아니었더라도, 곁에 계속 두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야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잖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그런 나열된 ‘항목’만으로도 움직여지는 건가? 마치 게임의 점수판을 채우듯이?


- 259쪽


잘 맞을 것 같은 사람.
마치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물건 중 가장 기능 좋고 디자인 예쁜 물건을 고르는 사람 같다. 이만하면 괜찮겠지, 하는 느낌이었다.


- 264 ~ 265쪽


“이 책 말이야. 세계고전문학 시리즈에 끼어 있긴 한데, 과연 순문학(순수문학을 줄인 말 - 인용자)으로 봐야 할까, 장르문학(예 : 연애소설이나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 - 인용자)으로 봐야 할까?”


“세계 고전인데 당연히 순문학 아니에요?”


“그래? 스토리(이야기 - 인용자)는 딱 아침 드라마 느낌의 치정 소설인데, 눈 밑에 점만 안 찍었지, 연속극의 복수극이랑 뭐가 달라?”


- 272쪽


“데이트라는 건 엄청나게 전투적인 거로구나.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시간이 흘러가는 게 꼭 손가락 사이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쉬워.”


“로맨스 작가라면서 연애 초짜 같은 소릴 하네요.”


“쓰는 것과 체험하는 건 다른 거니까.”


- 280쪽


말은 서툴고, 행동은 어긋난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마음을 정제하여 가장 진심에 가까운 언어만을 선택했다.


- 281쪽


“아, 이 인간? 고질병이네, 진짜. 이야, 역시 인기 작가 악플(악성 댓글 - 인용자) 수준부터가 다르네. 이래서 SNS를 끊어야 해. 멘탈에 아주 안 좋아.”


“영호 씨네 작가 중에는 이런 걸로 골치 아픈 사람 없어요?”


“지금은 없고 …… 판타지 시절 작가 중엔 종종 있었어요. 근데 원래 남자 독자들이 말이 좀 거치니까, 어디까지가 흰소리(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 - 인용자)고 어디까지가 악플인지 구분하기 좀 모호하죠.”


“그러면 그런 건 어떻게 처리해요?”


“출판사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그냥 작가 혼자서 멘탈 추스르고 마는 거죠. 익숙해지든가, 못 버티면 그만두든가.”


“둘 다 우울한 선택지네요.”


- 295쪽


폭풍 전야는 끝났다.


이제, 폭풍이 다가올 시간이다.


- 298쪽


후드를 벗고 밝은 빛 아래서 본 남자는 생각보다 더 어렸다. 20대일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아직 초반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생김새도 상당히 평범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범죄자의 얼굴은 좀 더 무섭고 괴물 같고 흉폭할 거라 생각했다. 혹은 얍삽한 외모에 미친 사람의 눈 정도는 갖고 있을 줄 알았다. 퍼붓는 빗속에서 겁에 질려 쳐다보았던 남자의 얼굴은 그랬으니까. 그야말로 괴물 같았으니까.


설마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독약 같은 말을 쏟아 붓고, 협박하고, 뒤를 캐고, 폭행하리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까.


- 320쪽


주희는 오늘 용감하게 피의자의 머리채를 잡아 뜯었지만, 그게 공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혼자 걷는 길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로부터의 시선에 의심부터 하게 될 것이다. 잊고 살다가도 문득,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어떤 미친 인간의 면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 324쪽


당신의 글을 사랑했다.
당신의 언어를 사랑했다.
얇은 책장 아래 물들은 듯 스며있던 당신의 감성과, 비밀과, 가짜 이름으로 이루어진 그 모든 허망한 인생을 사랑했다.
누구에게도 배움 받지 못한 듯한 그 서툰 미소와 서툰 다정함을,
길들여지지 않아 거칠고 투박했던 진심을, 달콤했던 입술과, 부드러웠던 손길과, 속살거리던 목소리를.
그 따뜻했던 체온과 떨리던 호흡을.
당신의 사랑을 사랑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 326쪽


그렇게 길었던 밤은 지나고, 새벽이 찾아온다.


- 326쪽


살아 있다는 것은 왜 이렇게 아픈 것일까.


- 327쪽


상처밖에 남지 않은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 327쪽


깨지고, 다치고, 망가지고, 절망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겠지만 살아 있다는 건, 결국 그런 거다. 아픈 거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우고 숨기며 살아가는 이런 게 아니라.


- 333쪽


“글만 있으면 오케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런 시기에 그 사람 옆에 있어야 하는 건 ‘글’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 335쪽


“매번 이런 식으로 ‘극복’해 왔나요?”


주희가 싸늘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 말의 의미를 몰라, 지헌은 미간을 찌푸린다.


“싫은 일에는 눈을 돌리고, 상처 입으면 더 깊은 동굴에 들어가 틀어박히고, 늘 그런 식으로 덮고 회피하면서 그걸 ‘극복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나 봐요, 둘 다?”


“…… 둘 다?”


“공범이잖아요, ‘허니’도. ‘마유라는 글만 쓸 수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잖아요.”


“그럼, 아니야?”


“네, 아니에요.”


- 338 ~ 339쪽


“그래서 넌 뭐 어떻게 할 건데. 걔한테 네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는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눈으로, 주희가 지원을 돌아보았다.


“해주긴 뭘 해줘요. 멱살 잡고 끌어낼 건데.”


- 339쪽


두 사람의 말싸움으로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넘어지는 주희를 보고선 ‘아이고오’하는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물론, 가서 일으켜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 341쪽


악당을 물리쳤으니 이제는 행복한 미래만 설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율에게는 그럴 만한 면역이 없었다. 한 번 겪은 불행이 불안을 낳았고, 두 번 겪은 불행은 확신을 낳았다. 율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세 번째 불행뿐이다.


- 343쪽


과거는.
기억은.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고 방심하는 순간, 결정적인 때를 노려 발목을 붙잡는다.


- 344쪽


그래도 발버둥 치면, 노력하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깨지고, 넘어지고, 망가져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뭔가 변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 제대로 된 인간이 되지 못했어.”
잔뜩 잠긴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 344 ~ 345쪽


“그래, 모든 인간은 이렇게 아픔을 겪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 단계 성장하는 법이지. 그런 네 녀석을 아직까지 데리고 있어주는 이 사장님께 존경심이 마구 들지 않냐.”


- 346쪽


거지같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거지같은 건 자신이다.


- 347쪽


“대표님 ……. 제가, 용기가 좀 필요합니다 …….”
“종업원한테 빈 용기 하나 달라고 할까.”
“그 용기 말고요 ……. 아, 진짜 분위기 파악 못하고 …….”
사실 지헌은 주희가 이번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며 조용히 물러나주길 바랐다. 자신 때문에 율이 다쳤다며 죄책감에 무너져주길 바랐다. 그렇게 그녀가 무대에서 사라진다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율은 그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세상에 상처받지 않는 그대로, 자신은 그런 율을 돌봐주며 마음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죄책감을 지워가는 그대로.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장면에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은 없다. 행복한 척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좁은 세계 속에 갇혀서.


지금껏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과 같이.


- 347 ~ 348쪽


“완벽하려고 애쓰지 마. 넌 그게 문제야. 사탕도 너무 많이 먹으면 이 상하고 텁텁해지거든. 기억해라. 인생이라는 건 말이야, 딱 그 정도의 달달함이 맞는 법이다.”


- 348쪽


“……제가 꽃을 한 송이 키운단 말이에요.”


“……?”


“그런데 내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아부어도 꽃은 결국 시들고 말 거거든요. 그건 기정사실이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못 바꿔요. 얜 기껏해야 1년 지나면 시들어요.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꽃?”


“예를 들어서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손사래를 치며 주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선배, 내가 그 꽃을 키우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 354쪽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살아 있는 모두는 어딘가 결여되고 망가지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 355쪽


“『시간 언덕』마지막 문장 말이에요. ‘그는 울지 않는 것으로 복수하기로 했다.’라는 거요.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땐, 그 말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은 죽은 여자에게 복수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어요.”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율이 미간을 찌푸렸다. 주희가 그런 율을 향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취기에 뺨이 붉다.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는 울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복수한 거야.”


- 357쪽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 때문에 떠나보냈다. 그 죄책감에서 율은 벗어나지 못했다. 울지 않는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율은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고 망가뜨리면서 스스로에게 복수했다.


- 357 ~ 358쪽


“그게 뭐 중요해요?”


“중요하지. 난 네가 뭐든 다 처음인데, 나도 하나쯤은 네 처음이어야지.”


“걱정 마요. 다른 건 몰라도 내 모든 마지막은 다 당신과 함께일 테니까.”


- 369쪽


이 여자는 자신과 사귀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원고와 사귀고 있는 것인가. 살다 살다 자신의 창작품을 질투해야 하는 순간이 올 줄은.


- 379쪽


* 작가 후기 :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후기를 쓰는 것이 언제나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383쪽


글을 통하여 결여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평생의 과제입니다. 결여된 부분이 있기에 비로소 인간은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384쪽


부디 독자분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그들을, 이 결여된 자들을 지켜봐주시고 오랫동안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