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해도(北海道)의 원주민인 야운쿠르(Yaunkur) 족을 다룬 한국 다큐멘터리.
“‘야운쿠르’란 아이누 민족이 자기네를 ‘레푼쿠르(Repunkur)’라고 한 이민족과 구별해서 일컫는 말이다. (원래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아이누’는 ‘사람’이라는 뜻이어서, 민족의 호칭일 수 없는데, 일본인(이른바 ‘야마토’ 민족 - 옮긴이)이 그렇게 사용했다.”
- 조동일,『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162~163쪽
-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조동일 지음,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서기 1997년)에서
“우리는 작은 초막(草幕)에서 함께 살아왔다./그러는 동안에 신(神)들이 싸우면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온 나라에서 들렸다./수많은 신이 죽고 또 죽으면서, 끊임없이 으르렁거렸다./내가 이제 좀 자라나니까, 그 소리가 우리 초막 지붕에서 들렸다./야운쿠르의 신(神)들이 이따금씩 와서 으르렁거렸다.”
→ 야운쿠르 족의 영웅인 ‘포이오운페(Poiyaunpe)’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웅서사시의 일부분
* 조동일 :
서기 1997년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 교수. 쓴 책으로는『한국문학통사』, 『동아시아 문학사 비교론』,『세계문학의 허실』,『우리 학문의 길』,『인문 학문의 사명』이 있다.
▶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Vno1yfDvq58
* 옮긴이(잉걸)의 말 1 :
이 다큐멘터리는 서기 199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스물일곱 해 전인 제 6 공화국(노태우 정부) 때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내가 유튜브에서 본 다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서기 1990년대 초에 왜국[倭國] 안에 살던 야운쿠르 족 젊은이들[당시 2~30대였던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은 4~50대가 된 사람들]이 야운쿠르 족의 문화와 말과 갈마[‘역사’]를 되살리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으므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 스물일곱 해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하여, 우익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늘어났으므로, 오늘날 왜국에는 [평화주의와 민주주의와 이성과 과학을 따르는] ‘일본인’이 아닌, [신국(神國) 사상에 절어 군국주의/침략전쟁/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왜인’들이 꽉 차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특히, 젊은 세대가 그렇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 여러분은 그 두 가지를 헤아리며 이 다큐멘터리를 봐야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왜국(倭國)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던 한국인(서기 1897년 이후, 그러니까 조선이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뒤에는 ‘조선인’ 대신 ‘한국인’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이 강제징용의 피해자가 되어 ‘북해도(北海道)’로 끌려간 사실과, 야운쿠르 족이 서기 19세기에 왜국 정부와 왜인(倭人)들 때문에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 된 사연과, 목숨 걸고 달아나서 야운쿠르 족을 만난(그리고 도움을 받은) 사실을 함께 다룬다.
나는 왜국의 한국인 노동자 강제 징용과 노동 3권 유린과 착취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나아가 배달민족의 왜국 건설이나, 삼한백제와 임나인의 왜[倭]열도 이주나, 삼국시대 말기에 남부여[南夫餘]와 고구리[高句麗] 유민들이 일본으로 달아난 사실이나,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에만 신경 쓰는 대다수 배달민족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여겨서) 여러분에게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이야기와, 일본열도의 원주민이자, ‘북해도’의 원주민인 야운쿠르 족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 이 움직그림을 소개하기로 했다.
(프랑스나 잉글랜드나 미군[美軍]이나 에스파냐 백인들[까스띠야 인]과 맞서 싸웠던 미국 원주민의 갈마를 재조명해야 한다면, 왜인이나 왜국 정부나 왜군[倭軍]과 맞서 싸웠던 야운쿠르 족의 갈마에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서기 1868년 이후에 들어선 왜국 정부는 야운쿠르 족과 유구[琉球]인에게 써 먹은 식민정책 - 내지는 동화 강요 - 을 한국인에게도 비슷하게 써먹었으므로, 그 때문에라도 왜국 제국주의에 짓밟혔던 야운쿠르 족의 갈마를 들여다보는 것은 배달민족이 자신이 겪은 일[근대사인 대일항전기]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에 담긴 이야기(한국인 노동자와 야운쿠르 족의 만남)는 제국주의 국가(왜국)의 폭력에 짓눌렸던 두 피해자(한국인과 야운쿠르 족)가 만나서, 어떻게 교류했고, 어떻게 공감했는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같은 가해자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설령 인종이나 민족이나 종교나 지역이나 나라가 다르더라도 서로 손을 잡고 도울 수 있다.’는 사례로 들기로 했다. 이것도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까닭들 가운데 하나다.
* 옮긴이의 말 2 :
북해도와 쿠릴 열도와 사할린(또 다른 이름은 ‘카라프토[Karapto]’) 섬과 캄차카에 살고 있는 (그리고 서기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에 브라실[영어 이름 ‘브라질’]로 쫓겨나거나, 서기 20세기에 미국 땅으로 이민한) 모든 야운쿠르 족에게 사랑과 존경을! 나는 그들의 말, 그들의 얼/넋/정신, 그들의 문화, 그들의 갈마(‘역사’)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며, 그들이 로시야와 왜국(倭國)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존엄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부디 로시야 정부가 쓰는 이름인 ‘사할린’ 대신, 원주민이 쓰던 이름인 ‘카라 푸토 모시르’가 되살아나기를! 왜인(倭人. 이른바 ‘야마토’ 민족)이 자신들이 바라본 방향을 바탕으로 지은 이름인 ‘북해도(北海道)’와 이른바 ‘북방 4도’라는 이름 대신, 야운쿠르 족이 붙인 진짜 이름인 ‘아이누 모시르(“모시리”)’라는 이름이 쓰이기를!
(단, 이 프로그램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왜인과 왜국 정부의 잘못은 지적/고발하지만, 서기 19세기에 로시야 백인들과 로시야 정부가 야운쿠르 족에게 휘두른 폭력은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서 가지고 있는 책인『샤먼의 코트』를 빼고, 나에게는 이렇다 할 자료도 없다.
로시야 백인들의 폭력도 이른바 ‘야마토’ 민족의 그것보다 못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왜 그 일을 다룬 자료를 거의 찾지 못한 걸까? 언젠가는 ‘올바르고 공평한 비판과 판정’을 위해, 로시야 쪽의 사료도 찾아보고, 로시야에서 살고 있는 야운쿠르 족도 만나서 취재하고 싶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학교와 한국 사회와 한국의 교사들은 지금이라도 『세계사』시간에 야운쿠르 족의 갈마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 2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을 도와주고, 숨겨준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
이분들이 겪으신 일[야요이 시대와 고분시대 이후 지금까지 배달민족의 후손인 ‘야마토’ 민족과 싸우신 일/서기 18세기 이후에는 로시야 제국주의에 짓밟히신 일]과, 이분들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7년 전쟁[서기 1592년 왜군의 조선 침략]과 서기 19세기 말 ~ 서기 1945년까지의 전쟁을 기억하며 왜국 우익과 싸우는 사람들이, 왜 왜국 정부와 우익과 옛 왜군[倭軍]과 왜국 재벌을 거스르면서 한국인들을 도와준 고마운 분들에게는 은혜를 갚지 않고 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감사하고 보답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은인들을 잊어버리고, 내버려 두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명치[明治]’? - 왜어[倭語]로는 ‘메이지’ - 차라리 ‘암치[暗治]’를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 ‘혈치[血治]’를 써도 되겠네! 무쓰히토[시호가 ‘메이지’인 왜왕[倭王]의 이름]가 옥좌에 앉아 있을 때, ‘야마토’ 민족끼리 내전을 벌여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유구[琉球] 사람들을 짓밟았고, 왜군이 동학군과 정미[丁未]의병 - 대한제국 의병 - 과 조선/한국 사람들과 대만 사람들을 죽였고, 요동반도[다롄]와 북경[北京]의 한족[漢族]들을 죽였고, 야운쿠르 족이 굴욕과 희생을 강요당했는데, 이게 왜 ‘밝은[明] 다스림[治]이 펼쳐지던 시대’야? ‘피[血]로 다스리던[治] 시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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