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인용]#4. 한 번도 정신이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돌을 던져라

개마두리 2024. 2. 15. 21:49

 

- 시리즈 :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 ‘책인사님이 서기 2021년 양력 17일에 네이버에 올리신 글

 

이 사회는 거대한 빙하 같았다.

차가운 시선과 냉대 속에서,

이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었다.

어떤 어울림도 맺음도 가질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어떤 미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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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째, 일주일(1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에 한 번씩 정신장애인(‘정신병자정신병 환자는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한다고 해서, 오늘날에는 그 두 용어 대신 이 용어를 쓰는 것을 권장한다 옮긴이) 자조(自助. [자기를] 스스로[] 도움[] - 옮긴이)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 회원은 약 30명 정도이며, 거의 정신장애인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정신건강복지센터 회의실이나 조용한 찻집에서 자기들만이 모여 커피(올바른 이름은 ‘분나’/‘분첨 - 옮긴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검은 빗발이 내리치는 듯한 암흑 속에서 헤쳐 나온 과거에 대해서 서로의 숨결을 섞으며 위안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질병(그러니까, 오늘날에는 정신질환이라고 부르는 정신병’ - 옮긴이)이 어떤 경로로 발생했고, 그때 당했던 굴욕과 잔혹함, 슬픔, 절망,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초기 정신질환이 발병(發病. []이 남[] - 옮긴이)했을 때, 수용소 같은 곳에서 나를 밧줄로 묶고 구둣발길로 짓밟는 것 같아서, 내가 죽어야 이 삶을 벗어날 수 있다고 느꼈어요.”

 

방 안의 선풍기 날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칼날로 변하면서 저에게 달려드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머리[이성]로는 옮긴이) 그것이 착각인 줄은 알지만, (가슴[감성]으로는 그것을 옮긴이) 감내하기가 힘들어요.”

 

때로는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혐오의 눈길에 대해서 분노감을 표출하기도(드러내기도 옮긴이) 한다. 삭막하고 어두운 현실에서 자신들의 미래(앞날 옮긴이)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의지(옮긴이)대로 이 사회를 살아나가기에는 그 장벽이 너무 높은 까닭일 것이다.

 

언론들은 정신질환자들(정신장애인들 옮긴이)의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앞을 다투어 조현병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신병원이 세워지려는 곳의 근처에 걸린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동네 정신병원이 웬 말이냐? 정신질환, 중독증 환자 물러가라!”

 

이토록 (일반인[흔히 정상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옮긴이) 혐오/폭력과 차별과 냉대가 뒤섞인 세계를 (조현병 환자를 비롯한 정신장애인들이 옮긴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들은 어떻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꿈, 희망을 가져야 할까.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중략)

 

그들(이 글에 나오는 자조 모임의 회원이자, 정신장애인인 사람들 옮긴이)은 때로는 문학 모임을 갖고, 수필이나 소설에서 공감할 만한 대목을 추려서 낭독하고, 각자의 소감을 들으며 감상(느낀 점 옮긴이)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들의 감성과 정서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감하다. 그리고 천진하고 순수하기까지 하다.

 

, 요즘에 TV를 보기가 무서워요. 저 사람들(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치료를 제대로 안 받고 살다가, 범죄를 저질러 TV에 나온 사람들 옮긴이) 범죄가 우리(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조 모임의 회원인 정신장애인들 옮긴이)하고 무슨 상관이 있죠? (언론은 옮긴이)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 옮긴이)이 다 범죄자인 것처럼 보도하죠?”

 

길거리 다니기가 무서워요. (이른바 정신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은 범죄자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면 옮긴이) 사람들(일반인들 옮긴이)이 다 (나를 옮긴이) 쳐다보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옮긴이) 가뜩이나 주눅 들고 힘들어 죽겠는데 …….

 

(그런 그들은 이렇게 옮긴이) 얼굴에 홍조(紅潮. 부끄럽거나 취하여 얼굴이 붉어짐, 또는 그 빛 옮긴이)를 띠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신장애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단지 정신적 망상이나 환청, 우울 등의 증상 때문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의미(옮긴이) 있는 자기 일을 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간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변해버린(바뀌어버린 옮긴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비관한다는 것일 게다.

 

나는 망상, 환청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을 참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자조 모임의 옮긴이) 어느 장애 회원은 풀기(원래는 풀을 먹여 뻣뻣하게 된 기운을 일컫는 말이나, ‘사람의 씩씩한 활기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옮긴이) 없는 목소리로 혼자 말하듯이 중얼댔다.

 

나는 아이의 정신질환을 통해서 정신병의 특성은 단순한 개인적 질병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위와 사회의 인식과 편견이 곧 질환(정신질환 옮긴이)의 회복과 좌절로 연결되는(이어지는 옮긴이) 순환의 고리를 발견했다. 고립은 (더 강한 옮긴이) 고립을 불러왔고, 낙인은 (또 다른 옮긴이) 낙인을 불러왔고, 고립은 낙인으로 낙인은 고립으로 서로 부르고 응답했다.

 

정신질환이 장애로 굳어질 것인가, (아니면 옮긴이) 회복할 수 있는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달려 있었다. 정신적 혼란과 미로에 빠져 홀로 헤매며 구원의 빛을 찾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환청과 망상, 불안, 우울 등 기분장애 증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지닌 옮긴이) 감성 유전자의 기본적 속성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상인이라 할지라도 헛된 망상이나 순간적으로 환청과 환각을 경험할 때가 있다. 또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또는 극도로 기분이 저하되거나 우울, 불안 등으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다만 증상이 일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정신 질병(정신 질환 옮긴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DSM-5)에 의하면, 정신질환은 그 증상이 얼마나 지속되는가에 따라 질병으로서 진단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수많은 증상의 관찰에서 출발해서 사유의 종착점은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이 옮긴이) 짧은 것은 정상이고 긴 것은 비정상이었다. 그 결론은 우리 시대가 내린 정의(定意).

 

무수히 펼쳐진 내면세계의 공간 속에서 긴 것과 짧은 것은 한데 섞여 있었고, 그것들은 꼬리를 물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과연 어디서 어디까지 정상일까? 그 불가능한 정의 속에서 구별과 편견은 상식 위에 군림하면서 차별과 배제의 질서를 만들었다. 마음의 병이 뇌로 전이(轉移. 자리나 위치 따위를 다른 곳으로 옮김 옮긴이)된 것인지, (아니면 옮긴이) 두뇌 이상이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원인과 결과가 모호하고 분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병일 수도 있고 뇌의 병일 수도 있는 정신 질병은 어느 누군가에게만 오는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현상이라는, 그것은 길게도 짧게도 올 수 있다는, 또는 수시로(자주 옮긴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또렷이 다가온다.

 

늘 타인(他人. 다른[] 사람[] - 옮긴이)의 시선(視線. 눈길 옮긴이)을 의식하고,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정신 질병의 치유와 확산은 그 사회가 이 질병에 대해 얼마만큼의 포용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정신 질병과 사회 환경은 불가분(不可分. 나눌[] 수 없는[不可]/뗄 수 없는 옮긴이) 역학관계 속에서 회복과 좌절의 부침을 반복한다(되풀이한다 옮긴이). 어쩌면 망상과 환청, 불안을 극복하고(이겨내고 옮긴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할 일 옮긴이)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있어서 장애는 개인적 질병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 진입을 가로막는 편견이라는 장벽이 진짜 장애가 아닐까.

 

(중략)

 

오늘날에는 내성적인 사람들과 혼자 있으려는 성향 및 회피성 인격 장애 성향마저도 사회불안장애로서 경증([병의] 증세/증상이 가벼움 옮긴이) 정신질환자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은둔형 외톨이나, 1인 가구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옮긴이) 인구 절반이 정신질환자로 분류되고 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규범에 맞는 정상적 사회생활의 기준은 무엇인지, 인간 정신의 사회통념상 정상적인 사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규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신질환 진단만 무수하다(셀 수 없이 많다 옮긴이). (그야말로 옮긴이) 정신질환이 만연한 사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고민이나 정신적 아픔을 겪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아픔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상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을 뿐, 우리가 가진 지식(옮긴이)과 감성은 언제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깨지고 지워질 수도 있는 유약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언제까지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자라는 명칭으로 불러야 할까?

 

저자 소개 설운영(‘책인사님의 본명 : 옮긴이)

 

그는 조현병을 겪는 아들의 아버지다.

지난 20여 년간, 아들의 정신장애를 치유하기 위해

사회적 질타와 시선, 가족 간의(식구끼리의 옮긴이) 갈등,

당사자였던 아들과의 힘겨운 사투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나갔다.

 

보이지 않아서 잡히지 않고,

피할 수도 없어서 더 간절했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 불가능했던 병이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려 갔던 그와

그의 아들에 대한 이 이야기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는

수많은 정신장애자의 가족(식구 옮긴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가슴으로 토해내면서 이 책(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 이 글, 그러니까 한 번도 정신이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돌을 던져라 는 이 책에 실린 글이다 옮긴이)을 집필했다(썼다 옮긴이).

 

그는 아들이 아닌, 한 인간이 겪는 질병과 장애로 인하여

한 사람의 생애가 통째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응시하였다.

 

(중략)

 

그가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옮긴이) 보내는 메시지는,

정신의 아픔이 아픈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그 아픔을 감당하지(견뎌내지 옮긴이)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치유의 해답이다.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공동체, ‘정신건강 가족학교를 경기도 수원시와 함께 설립,

한 아들의 든든한 아버지를 넘어,

그들의 아버지로서, 대변인으로서 4년째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겪어온 이 삶이

이 사회에 조용하지만 묵직한 경종을 울리길 바라며,

정신장애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여생을 바치고 있다.

 

- 이메일(전자우편 : 옮긴이) : swy4956@hanmail.net

 

- 단기 4357년 음력 1월 6일에, 일반인들이 정신장애인을 악마화하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그리고 본인도 열다섯 해 전 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과에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신경안정제를 먹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