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깨비는 6세기 전(그러니까, 『 석보상절[釋譜詳節] 』 이 인쇄된 서기 1447년)에는 ‘돗가비’로 불리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돗가비’가 ‘도까비’로 발음이 바뀌었고, ‘도까비’의 발음이 바뀌어서 ‘도깨비’가 되었다.
- 지역에 따라 도깨비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그런 낱말들로는 ‘도채비’/‘도까비’/‘돛찌비’/‘토째비’/‘토개비’가 있다.
- ‘돗가비’는 ‘돗’과 ‘아비’가 함께 모여 만들어진 말인데, ‘돗’은 불(한자로는 ‘화[火]’)이나 곡식의 씨앗을 말하는 ‘종자(種子)’를 뜻하고, ‘아비’는 ‘아버지’를 뜻하는 남자를 말한다. 이는 돗가비, 그러니까 도깨비가 ‘불이나 곡식 씨앗처럼 생산 능력이나 부를 늘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 아주 먼 옛날에는 도깨비가 신격화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서기 2000년에도 도깨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신으로 모셔진 도깨비는 ‘병을 불러오는 역신(疫神)’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 옛 사람들은 도깨비가 기왓장을 뒤지고 모래를 뿌리는 짓을 한다고 믿었다(그래서 “도깨비 기왓장 뒤지듯이”라는 속담도 나온 것이고).
- 옛 사람들은 도깨비가 횃불처럼 빛을 내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장작개비로 두드리거나, 모래로 솥을 씻거나 신(신발)을 땅바닥에 두드리며 소리를 내거나 방망이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 옛 사람들의 믿음에 따르면, 도깨비는 심술 맞고 장난기가 심하며, 도깨비불로 나타나 사람들을 홀리고, 돌림병을 가져오는 존재이기도 했다.
- 배달민족의 도깨비와 ‘중화권’ 한족(漢族)들의 귀(鬼)와 왜국(倭國)의 요괴는 서로 다른 것이다.
- 배달민족의 도깨비는 상위(上位. 높은 위치나 지위)에 있던 신(神)이 영락(零落. 세력이나 살림이 줄어서, 아주 보잘것없게 됨 – 옮긴이)한 하위(下位. 낮은 지위)의 신이다. 귀신도 사람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 ‘중화권’ 한족들의 귀는 ‘사람이 죽어서 되는 귀신’과 ‘뭔가 인간과는 다른 존재’ 전체를 통틀어 일컫는다.
- 왜국의 요괴는 신도, 귀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를 일컫는다.
- 도깨비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고 밤에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 보통 도깨비는 숲이 우거진 곳에서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숲뿐 아니라 바다와 가람(강)과 같이 물이 있는 곳에서도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숲속이나 외딴집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며, 그 다음으로는 물가나 바다다. 그밖에 공동묘지에서도 나타나고, 집안에서도 나타난다. 만약 도깨비가 뫼(산)에서 나타난다면, 주로 마을의 뒷산에서 나타나고, 물에서 나타난다면 마을 앞에 있는 물에서 나타난다.
- 배달민족의 민간 신앙에 따르면, 도깨비가 나타나는 뫼(山)는 수풀이 우거진 곳이어야 한다. “덤불이 커야 도깨비가 난다.”나, “도깨비도 수풀이 있어야 재주를 피운다.”나, “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는 속담이 생긴 건 그것 때문이다. 한마디로, 도깨비가 사는 곳은 덤불 같은 수풀이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오가기가 힘든 곳이다.
- 덤불로 우거진 숲에 산다는 것은 도깨비가 사람들의 드나듦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이는 도깨비불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나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주로 나타나는 데서도 입증된다. 이로써 도깨비는 어두침침한 것을 좋아함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민중에게 전해지는 도깨비 이야기를 보면, 도깨비가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애쓰는 것이 드러나는데, ‘도깨비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나, ‘도깨비가 인간 여자와 부부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나, ‘도깨비가 인간 남자와 동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 증거다. 하지만 대체로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쫓겨가는 어리숙한 존재로 그려진다. 어쩌면 그 때문에 도깨비는 사람들의 드나듦이 별로 없는 덤불 속에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어떤 민담에서는 도깨비의 나이가 “삼백 살”을 넘는다는 말도 나온다.
- 옛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고개에 나타나 사람에게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존재로 나온다.
- 도깨비는 ‘산꼭대기에 사는, 지위가 높은 신’이 아니라, 뫼의 연장선상인 고개에 나타나는 ‘지위가 낮은 신’으로 여겨졌다. 먼 옛날에는 도깨비가 신으로 모셔지고 공경할 대상이었으나, 새롭게 들어온 신들, 그러니까 불교/도교 계통의 신들이 민간신앙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면서 도깨비는 ‘하위 신’으로 쫓겨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의 신격적 속성이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 산꼭대기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 도깨비는 바다에도 나타나며, 옛 사람들 가운데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도깨비를 신으로 모셨다(전라남도 무안 지방에는 “갯벌에 도깨비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데, 그곳에서는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나는 ‘뿅뿅뿅’하는 소리를 ‘도깨비가 걸어가면서 내는 소리’라고 일컫는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깨비가 사는 곳은 물 깊은 바다가 아니라 ‘갯벌이 있는 얕은 바다’인 것이다.
- 바다에 사는 도깨비는 어부들에게 고기(물고기)가 많은 곳을 알려 주거나, 음식을 주는 사람에게 고기를 몰아다주어 부자가 되게 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민간 신앙에 따르면) 바다에 사는 도깨비에게 잘못하거나, 음식 대접을 소홀히 하면 순식간에 망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호남 서해안(황해안) 지방에서 많이 전해지며,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도깨비불이 뱃길을 이끌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 옛 어부들은 도깨비불은 풍어(豐漁. 물고기가 많이 잡힘)를 가져다준다고 믿어서, 그것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다.
- 도깨비불은 노란 불꽃을 내는 불이 아니라, 파르스름한 불꽃이다.
- 뭍(육지)에서는 “도깨비불이 꺼진 곳이나 도깨비가 노는 곳에 집을 짓고 살면 부자가 된다.”는 믿음이 이어져 내려왔고, 바다에서는 “도깨비불이 꺼진 곳에 어장을 설치하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 도깨비불은 공동묘지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풍수와 관계가 있으며, ‘도깨비가 묏자리를 잘 잡아주어서 부자가 되었다.’는 옛 이야기가 많다.
- 옛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명당을 잘 아는 존재’이자 일종의 ‘지관(地官. 풍수설에 따라 집터/묏자리를 잘 잡는 사람)’이기도 하다.
- 옛 사람들은 “도깨비가 명당 자리를 잘 안다.”거나, “도깨비가 사는 터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 도깨비는 본래의 속성이 ‘재물을 불러오는 신’인데, 후대에 와서 ‘돌림병을 가져다주는 역신(疫神)’이라는 성격이 덧붙여졌다.
- 도깨비는 장난질이 심하며, 심술도 부리고, 변덕스럽기도 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모래를 뿌리거나 돌멩이를 던져 장독을 깨기도 한다. 또한 솥뚜껑을 솥 안에 집어넣어 솥을 쓸모 없게 만들기도 한다.
- 배달민족의 구비문학에 따르면, 도깨비는 상복을 입고 마루 위로 이리저리 막 걸어다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볼 때는 도깨비는 안 보이고 상복이 움직이는 모습만으로 보이며, 도깨비가 사람이 도마 위에 놔둔 칼을 쥐고 그것을 문 사이로 넣었다 빼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볼 때는 도깨비가 안 보이고 칼이 문 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만 보이며, 도깨비가 솥뚜껑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공중으로 내던졌다가 솥 안으로 집어넣는 장난을 치면 그 때도 도깨비는 안 보이고 솥 뚜껑이 움직이는 모습만 보인다고 한다.
- 배달민족은 해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을 ‘도깨비의 장난’으로 생각한다(적어도 서기 2000년까지는 그랬다).
- 도깨비의 장난은 원래 도깨비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곳에 도깨비는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장난으로써) 알리는 것이다.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서는 정월 보름에 집안에서 도깨비를 위해 메밀떡으로 고사를 지내는데(서기 2000년까지는 그랬다), 그렇게 해야만 도깨비가 장난을 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 도깨비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장난을 치거나 심술을 부리는 행동을 하진 않는다. 사람이 먼저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예를 들어, 사람이 도깨비가 사는 곳을 망가뜨리면) 장난을 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역이나 공간을 알려줄 뿐이다.
- 코리아(Corea) 반도 곳곳에서는 ‘밤중에 고개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 도깨비를 만나 씨름하는 곳은 대개 고개를 넘어오는 곳이며, 씨름을 하는 시간은 밤중이고, 특이하게도 이 일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먹거나 고기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고개를 지나는 사람에게 도깨비가 다른 것도 아니고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것이다.
-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것이 고대(또는 중세)부터 배달민족이 씨름을 좋아하고 즐긴 사실을 반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예전에는 씨름이 남성들의 놀이였으므로, 옛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는 어른 남자임을 알 수 있다(따라서, ‘어른 여자인 도깨비’나 ‘어린아이인 도깨비’는 없다).
- 도깨비는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 민담에서 도깨비가 주로 찾는 여인은 과부다.
- 도깨비는 음식 가운데 메밀과 술을 좋아하며, 개고기와 돼지고기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깨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도깨비에게 메밀묵과 돼지머리와 술을 바친다.
- 민담에 따르면 사람이 도깨비와 씨름하는 까닭은 돼지고기 때문이다. (민담의) 주인공이 장에 갔다가 돼지고기를 샀는데, 돼지고기를 달라고 하는 도깨비의 요구 때문에 집에 오는 도중 싸움을 벌이게 된다. 처음에 주인공은 돼지고기를 달라고 하는 도깨비의 부탁을 거절한다. 도깨비는 씨름을 해서 이기는 사람이 돼지고기를 차지하자고 제안을 하고, 이를 주인공이 받아들여서 씨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씨름을 해서 지는 쪽은 늘상 도깨비이기 때문에, 도깨비는 돼지고기를 얻지 못한다.
- 메밀은 구황식물(救荒植物. 흉년에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식물)로서 기근이나 흉년이 길어지면 많이 심는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들이 기근에 허덕일 때 메밀을 심었던 것이다. 이런 궁핍한 때 민중들이 먹는 음식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도깨비에 대한 신앙이 민중들에 의해서 주도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메밀이 제물로 정착된 시대를 보면, 도깨비 신앙의 출발기는 대략 신라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메밀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 도깨비 이야기나 신앙을 보면, 도깨비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내려와 살고 싶어한다. 왜 그럴까?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고, 사람들과 친구가 되거나 부부가 되어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깨비는) 사람들을 극도의 공포 속에서 떨게 하거나 죽게 만들기도 한다. 도깨비가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식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도깨비의 성격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내려와 동화되어 살기를 바라는 것이 도깨비 본래의 속성이라면, 사람을 죽이거나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이후 귀신이 가진 속성이 도깨비에게 부가된 것이라 볼 수 있다.
- 도깨비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주로 밤에만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 도깨비는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접촉하기보다는 한 개인과 접촉한다.
- 옛 이야기에 따르면 도깨비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데, 도깨비가 사람을 찾아올 때마다 돈을 갖다주기 때문이다.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보고 ‘도깨비 만났다.’고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민간의 믿음에 따르면 도깨비가 가져다준 돈으로는 꼭 땅을 사야 하는데, 만약 땅을 사지 않고 그냥 보관하면 도깨비와 헤어지게 될 때 도깨비가 그 돈들을 모두 나뭇잎이나 모래로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 도깨비가 사람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람이 자신과 관계를 맺어준 데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 인간 남자가 도깨비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면, 그는 도깨비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며, 어떤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도깨비를 직접 찾아가 부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도깨비가 부탁을 그냥 들어주었다고도 한다.
- 옛 이야기와 민간신앙에 따르면, 도깨비는 재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도깨비는 너무 순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깨비를 이용해서 부자가 된 다음에는 도깨비를 떼어낼 궁리를 한다. 그 방법은 주로 이웃집에 사는 경험 많은 할머니가 이야기해 준다.
- 도깨비가 나름의 방법으로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에게서 쫓겨난다. 흥미로운 것은 도깨비를 쫓아낼 때 쓰는 것이 말머리와 말피라는 것이다(기마 민족은 보통 말을 신성한 동물로 생각한다).
- 도깨비는 사람에게 쫓겨나게 되면 앙갚음을 하는데, 그 앙갚음이라는 것이 고작 논에 자갈을 뿌려 놓거나 동네방네 다니면서 여자를 욕하는 정도다. 사람들의 배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도깨비의 본성이 그다지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람이 도깨비에게 홀리게 되면 크게 두 가지 결과가 있다. 홀리는 상황에서 깨어나 일상생활로 되돌아오는 결과와, 홀린 채 죽음에 이르는 결과다. 바다에서 도깨비에게 홀리면 죽을 가능성이 크다. 도깨비에게 홀리는 것은 도깨비와 만났기 때문이지만, 그냥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불에 홀리는 일도 있다.
- 도깨비는 선택된 사람에게만, 그리고 선택된 사람과 친분관계를 맺어야 부를 준다. 이런 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이기보다는 인간 관계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깨비는 신적인 면보다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이기는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더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도깨비는 ‘풍어나 풍년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도깨비를 전염병, 그러니까 ‘돌림병을 옮기는 역신’으로 생각한다.
- 하지만 도깨비가 역신으로 나온 것은 도깨비 본래의 속성과는 다른 것이다. 조선시대(근세조선 시대)에 들어와 귀신의 속성이 도깨비에게 부가되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이야기 속에서는 (도깨비가 해를 끼치는 일보다) 도깨비의 ‘부를 가져다주는 존재로서 지닌 속성’이 더 강조된다. 특히, 신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도깨비는 명당을 잘 알거나 크게 될 인물을 알아보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존엄한 신’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도깨비가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 충주의 옛 기록에서는 도깨비가 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가마꾼 정도로 나타나며, 그 도깨비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을 미리 알아보고 보좌하는 존재다. ‘유명한 인물이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도깨비도 알아본다.’는 것이며, 또한 그 사람을 도와 큰 인물이 되도록 만드는 데 도깨비가 주도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다.
- ‘도깨비를 만났다.’는 사람이 하는 말에 따르면 자신과 씨름을 했던 도깨비를 쓰러뜨려 나무에 묶어놓고 집으로 돌아온 뒤, 다음날 그 자리에 가보았더니, 쓰다가 버린 빗자루 몽둥이가 묶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도깨비에게 홀려 씨름을 한 것이다.
- 도깨비와 만나 씨름한 이야기는 코리아(Corea)반도 곳곳에서 전승되는데, 어떤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씨름을 했다고 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사람이 도깨비와 씨름을 하다가 허리춤에 있는 칼로 도깨비를 찌르고 나무에 묶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도깨비의 ‘정체’로 빗자루 몽둥이가 나오기도 하고, 도리깨 같은 농기구가 나오기도 한다.
- 재미있는 것은 도깨비가 씨름을 하자고 덤빈 사람은 대개 힘이 센 장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는 늘 씨름에 지곤 한다. 만약 (흔히 사람들에게 – 옮긴이) 알려진 것처럼 도깨비가 철퇴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도깨비가 이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도깨비는 철퇴 같은 병기(兵器)는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도깨비 이야기에서 사람과 씨름하던 도깨비가 씨름에 지면 빗자루 몽둥이로 바뀐다는 것은, - 씨름은 보통 새벽이 오면서 끝나므로 – 도깨비가 귀신과 마찬가지로 밝은 시간이 되면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도깨비와 씨름을 할 때 도깨비의 한쪽 다리가 썩은 나무라든가, 다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다리를 넘어뜨리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제하[諸夏])의 귀(鬼)인, 다리가 하나뿐인 독각귀(獨脚鬼)가 전파되어 만들어진(또는 도깨비에 대한 배달민족의 관념에 접붙여진)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 도깨비는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놀림당하는 순진한 존재며, 도깨비 때문에 부자가 된 과부에게서 쫓겨나는 어리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 (도깨비가 불임 체질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도깨비와 인간 여성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 도깨비가 인간과 맺는 관계는 일종의 교환 관계다. 인간은 도깨비에게 호의를 베풀고 도깨비는 보답을 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물을 차지한 사람은 도깨비를 매정하게 쫓아버리고,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순진한 도깨비는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쫓겨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신통력을 갖고 있는 도깨비지만 사람만큼 영리하지는 못한 것이다. 반면에 도깨비는 관계를 맺은 이를 도와 부자로 만들어주어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존재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의리나 신의를 헌 신 버리듯 하는 행동을 한다.
- 도깨비불은 밤중이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슴푸레한 날씨에 잘 나타난다.
- 도깨비불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으며, 마치 비행접시처럼 왔다갔다 날아다니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그 불이 하나였다가 여러 개로 바뀌는 등 변화 무쌍하다고 한다.
- 도깨비불을 직접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도깨비불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반짝반짝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된다. 그것들이 삽시간에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다가, 물웅덩이를 두고 빙 돌고는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 충청남도에서 경상남도의 바닷가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어촌에서는 도깨비불을 보고 그 해의 흉/풍어를 점치는 풍습인 ‘산망(山望)’이 내려져 왔는데, ‘산망’은 직역하자면 뫼(山)에서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 바다의 도깨비불이 풍어를 예견했듯이, 육지의 도깨비불은 여름지이(‘농사’)가 잘 될지 안 될지를 예견했다.
- 육지 사람들은 도깨비불이 나타난 뫼(山)쪽에 자리한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 도깨비불은 보통 어슴푸레한 저녁때도 나타나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 혹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날이 어두침침할 때도 나타난다. 이를 보고 도깨비가 습기, 즉 비를 몰고 온다고 여겼다.
- 도깨비불은 비가 내리거나 내리려고 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도깨비불이 비를 상징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도깨비불이 많이 그리고 자주 나타나는 마을은 곧 비가 많이 내리는 마을이므로, 당연히 풍년이 들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 도깨비의 신통력 가운데는 크게 이름을 떨칠 사람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본다는 것이 있다.
- 옛 서민들은 도깨비가 나타난 자리, 그러니까 도깨비가 노는 자리를 ‘명당’으로 여겼고, 또한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살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 옛 이야기 가운데는 도깨비를 우연히 만나 명당자리를 얻게 되어 부자가 되거나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도깨비 이야기에서 명당자리가 나오는 것은 아마도 풍수지리적인 요소가 도깨비 이야기에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제 도깨비는 명당을 잘 보는 천재적인 지관이 된 것이다.
- 어느 옛이야기에서, 도깨비는 청빈한 벼슬아치를 도와 그가 아버지를 명당에 모실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로 나온다.
- 명당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원래 도깨비의 능력은 아니었다.
- 도깨비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과 화목을 이끌어내거나, 또는 노름 같은 과거의 나쁜 버릇을 고친다. 그러니까 도깨비가 아무나 도와주는 것은 아니고, 고쳐질 수 있는 사람만 도와준다는 이야기다.
-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씨름에 지고, 화를 낸다는 것이 고작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욕을 하는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도깨비방망이 얻기’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을 심판하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옛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불효자를 야단치고 징벌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 도깨비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재물도 가져다주고, 장난도 치지만, 또한 효를 실천하도록 만드는 신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에도 역시 유교가 전래되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 충효 사상은 도깨비의 성격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도깨비 이야기의 주제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것은 현실의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로 도깨비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깨비와 상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층민들(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들)이고, 사대부나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와 부를 차지한 사람들은 도깨비의 상대로 나오지 않는다.
- 도깨비를 상대한 사람들이 하층민이었던 까닭은, 도깨비가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아왔던 계층의 현실적인 불만을 대리만족시켜 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도깨비를 위해 지내는 고사에는 “메밀떡”이 올라간다. 이는 도깨비가 메밀떡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도깨비를 위해 지내는 고사에는 메밀범벅이 올라가기도 한다.
-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도깨비가 역신(疫神. 역병을 불러오는 귀신)적인 존재로 자리잡은 시기는 조선(근세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로 짐작된다. 그리고 도깨비가 ‘역신 그 자체’로 마을 제의에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로 보인다.
- 도깨비를 ‘병을 불러오는 귀신’으로 여기고, 그것들을 내쫓는 행사인 진도의 도깨비굿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 게 아니라, 세종 19년 이후에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고려(후기 고리) 말에서 조선(근세조선) 초 사이에는 왜구들의 침탈 때문에 섬을 비워 두는 정책을 실시하였고, 그래서 약 87년 동안 진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별초의 항쟁이나 진도가 비어 있는 동안 왜구들이 들어와 살면서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귀신들이 많이 떠돌았고, 그래서 진도에서는 귀신을 쫓는 굿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 도깨비굿의 기원 대상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격들이기보다는 역신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도깨비이며, 이들을 잘 먹여 보냄으로서 병 없이 한 해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한다.
- 내륙 지방에서는 도깨비불의 조화 때문에 집에 불이 난다고 믿었는데, 이는 과거에는 시골집의 지붕을 초가로 얹었기 때문에 불이 나기 쉬웠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도깨비 고사의 중요한 제물은 메밀로 만든 묵이나 떡이다.
- 도깨비를 위해 지내는 제사에는 돼지머리와 팥시루, 팥죽이 올라가기도 한다.
- 어느 지역에서 치르는 도깨비굿은 겨울에 도깨비불이 내려와 집에 불을 내며, 그 불이 이웃으로 번지기 때문에 도깨비를 달래 준다는 의미로 고사를 지내는 것이지만, 요즘(서기 2000년 현재)은 지붕을 개량하여 초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제의의 목적이 줄어들고 있고, 이것이 제의의 전승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 이상 『 저기 도깨비가 간다 』( ‘김종대’ 지음, ‘도서출판 다른세상’ 펴냄, 서기 2000년 )에서 뽑음('발췌')
▣ 김종대 : 서기 2000년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과장
- 단기 4357년 음력 10월 30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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