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전향의 심리학과 그에 대한 평가

개마두리 2012. 6. 10. 22:11

 

(전략)

 

전향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변신의 극단성은 보통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인 욕구’의 산물로 설명되곤 한다. 변신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을 메우려고 과거의 대극에 있는 신념·사상을 취하게 되고, 자신이 속했던 집단에 대해서도 한층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에 앞서 사회주의자들의 광범위한 전향을 경험한 일본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1930~40년대 일본 공산당 지도부의 다수는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포기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천황제 파시즘의 열광적 지지자가 됐다.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으로 꼽히는 라이어넬 트릴링, 어빙 크리스톨도 젊은 시절엔 극좌 트로츠키주의자였다. ‘네오콘의 한국판’이란 비아냥을 듣는 뉴라이트 역시 핵심 이데올로그들은 전향 주사파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이들 행위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고 꼬집는다. “사람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좋아하는 행위 자체다. 그 행위가 나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대상이 나에게 더 이상 쾌락을 주지 못할 때, 그 대상을 망설임 없이 버리고 다른 대상을 찾아나선다. 주저 없이 신념과 사상을 갈아치우는 사람들, 그들의 행위를 추동하는 것은 결국 ‘자기애’다.”

 

물론 이 교수는 주사파의 극적 변신을 전향으로 규정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이것은 주사파를 과연 ‘좌파’로 볼 수 있느냐는 논쟁적 주제와 관련된다. 그가 볼 때 ‘주사파=좌파’는 일종의 착시다. 한국에선 보수 우파가 민족·국가를 방기하다 보니, 민족주의자가 졸지에 좌파가 돼버렸다는 논리다. “그들이 희구한 것은 정상국가, 곧 민족국가였다.

 

자주적 통일국가는 결국 부강한 국가, 열강과 당당히 힘을 겨룰 수 있는 국가다. 그 가능성을 북한에서 찾았던 이들의 일부가 실상을 확인한 뒤 뉴라이트로 돌아섰다. 그들은 여전히 이상적 민족국가를 추구하고 있다. 뉴라이트의 선진화론이 대표적이다. 그게 과연 전향일까.”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주사파의 변신은 총체적 자기부정이라기보다 즉자적인 ‘노선 선회’에 가깝다.

 

하지만 ‘전향’에 대해 엄격한 ‘개념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전향을 “근대 세계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특성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 세계는 복수의 이데올로기가 각축하는 공간인데, 어느 것이 진리인지를 판별할 절대적 준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개인들이 상황과 인식 조건의 변화에 따라 신념 체계를 바꾸는 것은 예외적이기보다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전향을 대하는 시각이 어떻든, 타인에게 전향을 강요하는 행위가 심각한 반인간적 폭력이란 점에는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이택광 교수는 “전향하라는 것은 사실상 주체성을 바꾸라는 것으로 결코 용인돼선 안 될 행위”라고 말한다. 특정 사상이나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의 인격 구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만큼, 억압이나 강요로 그것을 바꾸려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홍중 교수는 전향 논란에 자리잡은 ‘(나의) 진정성 대 (너의) 비진정성’의 대립 도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전향자든 비전향자든 자신의 태도만이 진실되고 순정한 것이란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진정성의 폭력’은 언제든 타인의 인격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략)

 

출처 :「‘주사파 출신’ 하태경이 종북 논란 올인 까닭은?」(『한겨레』서기 2012년 6월 10일자 기사, 이세영 기자의 기사)